흰 빵과 검은 빵 사이, 무엇이 우리를 배부르게 하는가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③
제목 : 하이디가 내게 가르쳐준 가장 맛있는 음식
부제 : 흰 빵과 검은 빵 사이, 무엇이 우리를 배부르게 하는가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동화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였다.
바카라장을 넘기며 머릿속으로 알프스를 그리던 즐거움은 지금도 또렷하다.
아직도 이야기의 첫 장면이 생생하다. 도시에서 살던 어린 하이디가 이모 손에 이끌려 알프스로 향하던 길.
짐을 줄이겠다며 어린아이에게 옷을 몇 겹씩 껴입혀 데려가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안쓰러웠다. 낯선 산으로 버려지는 것 같아 괜히 내가 더 속상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심술궂기만 하던 할아버지는 하이디 덕분에 웃기 시작했고, 황량해 보이던 산장은 금세 따뜻한 집이 되었다. 염소를 몰고 다니는 피터와 뛰어다니고, 꽃이 핀 언덕을 마음껏 달리는 하이디를 보면서 나는 바카라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글은 풍경에도 냄새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하이디가 낮잠을 자던 풀침대의 폭신함과 햇볕에 말린 풀 냄새는 나조차 누워보고 싶게 만들었다. 특히 그곳에서 ‘맛나게’ 잘 잤다는 표현을 읽으며, 잠도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신기해했던지.
거칠고 검은 빵은 더없이 먹음직스러웠고, 갓 짜낸 염소젖에서는 금새라도 김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할아버지가 모닥불에 올려 녹여 먹던 치즈는 상상만으로도 어떤 맛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하이디가 도회지 부잣집 클라라의 집으로 가게 되면서, 생기 넘치던 아이는 점점 웃음을 잃어갔다. 클라라의 집은 알프스와는 정반대의 세상이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깨끗하고, 풍족했다. 식탁에는 하얀 빵이 올라왔고, 은식기는 반짝였으며,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하이디는 그곳에서 마음의 병을 얻고 말았다. 밤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몽유병을 앓았다.
그리고 하이디는 클라라 집 식탁에서 매일 나오는 희고 부드러운 빵을 먹지 않고 옷장 속에 차곡차곡 숨겨두었다. 알프스에 두고 온 피터의 할머니에게 가져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치아가 약해 거친 검은 빵을 드시기 힘들어하던 할머니 생각이 났던 것이다. 클라라 집에서 맛보는 부드러운 빵을, 할머니에게도 꼭 맛보게 해드리고 싶었던 어린 하이디의 다정한 마음이 함께 전해졌다.
그리고 이후 마침내 알프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하이디는 다시 웃기 시작한다.
그때 하이디가 먹었던 것은 갓 짜낸 우유, 거친 검은 빵, 모닥불에 녹인 치즈. 특별할 것 없는 식단이었다. 그러나 그 식탁에는 영양성분표에 적히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았다.
마음껏 뛰어놀던 숲과 산이 있었고, 햇살이 있었고, 맑은 공기가 있었다. 함께 뛰노는 친구와 이웃, 그리고 할아버지가 있었다. 하이디가 다시 돌아온 것은 단순히 산장이 아니었다. 자신이 살아가던 삶이었다.
그제야 음식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우리는 흔히 음식을 통해 영양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영양소 그 이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음식은 그것을 함께 먹던 장소를 선명하게 기억하게 하고, 어떤 음식은 그리운 사람의 온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음식에는 영양소나 칼로리로 환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이제야 안다.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건강이란 영양소의 합이 아니라 삶을 둘러싼 환경과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하이디에게는 알프스의 산과 햇살, 친구와 이웃, 그리고 할아버지가 함께하는 식탁이 있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만날 때 비로소 진짜 의미를 갖게 된다.
어쩌면 내가 음식의 진짜 힘을 처음으로 배운 것은 두꺼운 영양학 교과서가 아니라 《알프스 소녀 하이디》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