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성채를 지나 다시 히바로 돌아온 하루
히바의 성벽을 벗어나 아무다리야 너머 사막으로 향했다. 무너진 성채 앞에 서면 수천 년의 시간과 여행자의 하루가 마주한다. 해가 기울 무렵 다시 히바로 돌아왔을 때, 이찬칼라의 모습은 다르게 보였다.
성 안쪽 이찬칼라는 풍화된 흙벽과 나무문, 작은 안뜰을 품은 예스러운 숙소들이 들어서 있다. 성벽 밖으로 나오면 풍경은 달라진다. 넓은 도로와 상점, 비교적 깨끗한 호텔들이 자리한다. 오래된 도시와 지금의 삶이 성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진다.
그 경계선 근처, 성 바깥쪽에 여장을 풀었다.
오래된 호레즘의 흔적을 찾아가기로 했다. 히바에 머물다 보면 ‘호레즘’이라는 이름을 자주 만나게 된다. 히바에 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여전히 호레즘이기도 했다. 아무다리야 하류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호레즘은 중앙아시아에서도 일찍 문명이 자리 잡은 땅이다. 사막과 강 사이에 도시가 생겨났고 여러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다. 실크로드의 북쪽 가장자리에서 독자적인 문명을 키워냈다. 오늘 우리가 보는 히바의 이찬칼라가 비교적 후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면, 아무다리야 너머 사막에는 그보다 훨씬 앞선 시대의 성채들이 남아 있다.
토프락칼라(Toprak-Kala), 키질칼라(Kyzyl-Kala), 아야즈칼라(Ayaz-Kala)를 찾아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차량은 우르겐치를 지났다. 호레즘주의 중심 도시다.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히바와 달리 넓은 도로와 현대적인 건물들이 이어졌다. 오늘 함께할 기사는 한국말이 능숙했다. 한국에서 몇 년 일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막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한국어로 이야기한다. 멀리 여행을 왔지만. 익숙함에 마음이 놓인다.
히바를 떠난 지 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아무다리야강을 건넜다.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강이다. 파미르에서 흘러와 메마른 땅을 적시며 호레즘 문명을 키워냈다. 사막 한가운데 도시와 왕국이 자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을 지나자 풍경이 달라졌다. 건물과 사람들이 줄었다. 도로 양쪽으로 메마른 땅이 낮은 덤불이 이어졌다. 하늘은 넓어졌고 지평선은 멀어졌다. 텅 빈 평원 너머로 거대한 흙 언덕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막과 강이 만든 문명, 호레즘
호레즘은 아무다리야 하류에서 성장한 오래된 문명권이다. 사막 한가운데였지만 강물을 이용한 관개 농업을 바탕으로 도시들이 번성했다. 지금도 사막 곳곳에 ‘칼라(Kala)’라 불리는 옛 성채와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멀리서 보니 산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것이 성채임을 알았다.
토프락칼라에 올라서자 고대 도시의 흔적이 펼쳐졌다. 벽은 대부분 무너졌다. 방과 방을 나누던 선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렴풋이 성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위에서 바라보니 거대한 흙의 미로를 이루고 있었다. 한때 왕이 머물던 궁전 자리, 지금은 바람뿐이었다.
키질칼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사막 위로 솟은 두꺼운 성벽은 먼발치에서도 눈에 들어왔다. 흙과 짚으로 쌓은 벽이 오랜 세월을 견디며 견고하게 서 있었다.
아야즈칼라는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언덕 위에 지은 성채다. 근처에 유목민 텐트들이 보인다. 여행자들을 위한 식당과 카페였다. 차를 세우고 성채를 향해 걸었다. 그때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우연히 같은 길을 가는 줄 알았다. 자연스럽게 뒤를 따라왔다. 성채에 도착하자 녀석은 걸음을 멈췄다. 길은 여기까지라는 듯했다. 뜻밖의 안내자였다. 성벽 너머로 끝없는 평원이 펼쳐졌다.
덤불 사이로 하얀 목화가 보였다. 손끝에 닿은 감촉이 부드러웠다. 설명으로만 듣던 목화를 사막의 성채 아래에서 처음 만져보았다.
제일 높은 곳에 섰다. 바람이 스친다. 산도 숲도 없다. 오직 흙과 하늘, 무너진 성터뿐이다. 감각의 기억이 살아난다. 남극 장보고기지 안전요원으로 빙원 위에 홀로 서있던 날들, 히말라야 고산 속에서 거대한 자연을 마주했을 때의 일이다. 순수의 끝에 서면, 사람은 한없이 작아진다.
찬란했던 왕국도, 수많은 이들의 삶도 지나갔다. 이제 몇 줄기 흙벽만 남았다. 내가 살아온 시간도 세월 앞에서는 순간에 불과했다.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길
다시 차에 올랐다. 배가 고팠다. 기사가 정말 좋아하는 삼사집으로 향했다. 현지인들이 찾는 곳이었다.
“한 번에 열 개도 먹어요.”
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야외 커다란 화덕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먹만 한 삼사들이 화덕 벽면에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갓 나온 삼사를 받아 들었다. 뜨거웠다. 겉은 바삭했고 안에는 고기와 양파의 육즙이 가득했다.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며 삼사를 여러 번 먹었지만 이날 먹은 것은 최고였다.
몇 시간 전까지 수천 년 전 왕국의 흔적을 걷고 있었다. 지금은 뜨거운 삼사를 손에 들고 앉아 있다. 과거에서 불쑥 현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여행자만이 느끼는 특권이다.
히바로 돌아오는 길, 바자르(시장)에 들렀다. 과일과 채소가 수북했고, 사람들은 추가달린 손저울억 무게를 달며 흥정했다. 도시의 역사는 평범한 하루가 이어지며 만들어진다.
해가 기울었다. 서둘러 이찬칼라의 쿤야 요새(Kunya Ark) 전망대로 올랐다. 노을이 내려앉는 히바를 보고 싶었다. 태양이 낮아지며 황토색 성벽에 붉은빛이 닿았다. 칼타 미노르와 미나레트, 모스크의 돔이 하나씩 빛을 받았다. 관리인의 배려로 해가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사막의 무너진 성채와 눈앞의 이찬칼라가 겹쳐졌다. 수천 년 전의 토프락칼라도 사람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지금의 히바처럼.
성벽에서 내려와 2층 테라스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바람이 선선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저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앉았다.
아침에 아무다리야를 건넜다. 사막을 달렸고 무너진 성벽을 걸었다. 개와 함께 언덕을 올랐고, 길가의 목화를 보았다. 뜨거운 삼사를 먹고 시장을 지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길고도 짧은 하루였다.
잔을 내려놓고 성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붉게 빛나던 건물들이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골목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히바의 하루도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글·사진 김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