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무는 마을, 센토브

25km를 걷고, 결국 길을 잃었다

by파르밧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무언가를 ‘보는’ 여행보다, 천천히 ‘지나는’ 시간이 더 오래 남는다.


누라타우 산맥 아래 센토브 마을 입구

사마르칸트에서였다. 화려한 실크로드 유적과 북적이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다음 여정을 고민하고 있었다. 무작정 들른 여행정보센터에서 한 직원의 말을 듣게 되었다.


“누라타우 산맥에 작은 마을이 있어요. 트레킹하기 좋은 곳이에요”


누라타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이라고 하면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같은 도시들만 떠올렸다. 산을 간다는 생각은 못했다. 도시의 화려함 뒤에 진짜 우즈베키스탄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화려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은 곳. 사막과 초원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낮은 산맥. 나는 그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누라타우 산맥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서쪽으로 330km 떨어져 있다. 건조한 사막과 돌산, 초원과 습지가 이어지고 산맥 북쪽으로는 청록빛 아이다쿨 호수가 펼쳐진다. 산자락과 협곡에는 타지크족과 우즈베크족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들이 흩어져 있다. 그중 하나가 센토브였다.


센토브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자리를 채워 출발하는 공유 택시를 흥정해야 했고. 택시는 지자흐까지만 가는 택시여서 다시 차를 구해야 했다. 흥정은 반복됐고 약속은 쉽게 어긋났다. 그런데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낯선 여정이 재미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흙먼지 날리던 길 위로 빗물이 내려앉고, 와이퍼는 빠르게 움직였다. 차는 점점 더 깊숙한 시골로 들어갔다. 흐릿한 산을 향해.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센토브가 있었다.


해 질 무렵 도착한 마을은 조용했다. 흙벽으로 지어진 집들과 낮은 담장이 이어졌다, 학교 운동장 근처의 민박집을 찾아갔다. 넓은 마당이 있는 2층 집.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게스트 하우스였다.


센토브 마을 홈스테이 가족


저녁상이 차려졌다. 김이 오르는 플로브, 둥근 전통 빵 논(Non), 채소와 양고기. 그리고 차.

사실 플로브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기름진 맛이 늘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날의 플로브는 달랐다. 밥은 고슬했고,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거의 없었다. 새콤한 오이 절임을 곁들이니 이상할 만큼 편안한 맛이었다.

주인 아저씨는 맞은편에 앉아 내가 먹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이라서 먼저 먹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배려가 고마웠다. 객실 벽에는 전통 직물이,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누라타우에서 홈스테이는 단순한 숙박이 아니다. 산속 마을의 생활 속에 잠시 머무는 시간이다.


다음 날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떴다.


센토브 릿지 능선의 햇살
톨탑과 황량한 산지

첫날은 센토브 리지 루프(Sentob Ridge Loop)를 걸었다. 마을 위쪽 능선을 따라 도는 약 9km의 코스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오르막이 꾸준히 이어졌다. 능선에 오르니 센토브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멀리 아이다르쿨 호수(Lake Aydarkul)가 흐릿하게 보였다. 키질쿰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랄해 다음으로 큰 호수. 1969년 홍수가 만들어낸 거대한 물줄기는 지금도 사막 속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건 바람뿐이었다. 나무가 거의 없는 산에는 날카로운 돌들이 많았다. 바람에 깍인 듯 거칠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조심해야 했다. 길을 걷다 돌로 만든 오래된 움막들이 나타났다. 무너진 지붕과 이끼로 덮은 마당,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남아 방치된 곳들이 많았다.



센토브의 하루는 빠르지 않았다. 아침은 조용히 시작되고 해가 기울면 마을은 금세 고요해졌다. 휴대전화 신호는 약하고, 대신 바람 소리가 또렷했다. 마을 주변의 계곡에는 또 다른 풍경이 숨어 있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따라 나무와 풀이 우거졌고 작은 폭포와 웅덩이가 나타났다. 오래된 물레방앗간과 요새의 흔적, 바위에 남겨진 문자들. 도시의 우즈베키스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다음날은 더 긴 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고원의 파질만 호수(Fazilman Lake)


센토브를 출발해 고지대의 파질만 호수를 지나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약 25km의 순환 코스다. 누적 상승과 하강은 각각 1,100m가 넘는다. 누라타우에서도 긴 하루를 각오해야 하는 길이다.


가파른 경사면에 방목된 말


마을을 벗어나자 계곡이 이어졌다. 물길을 따라 전통가옥들이 나타났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천천히 고도를 높였다. 능선에 오르자 시야가 갑자기 열렸다. 넓은 평원과 그 한가운데 자리한 파질만 호수. 초원에는 말과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파질만 고원 방목지를 관리하는 현지인

너무 여유를 가졌던것일까. 25km 길은 생각보다 길고 힘들었다. 시간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 돌을 쌓은 케른을 따라 걸었다. 하산을 시작할 무렵 이미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몇 갈래로 나뉘었다. 잠시 망설였다.


고원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파질만 호


‘방향만 맞으면 되겠지.’


물길의 흔적이 남은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그 선택이 틀렸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곡 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눈으로는 마을이 바로 아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려갈수록 길은 끊겼고 경사는 가팔라졌다. 발끝을 디딜 때마다 작은 자갈들이 낭떠러지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서비스 없음’


어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빛이 사라지자 조금 전까지 평화롭던 산은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었다. 서두를수록 위험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가 떠올랐다. 늦으면 분명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한 걸음씩,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것. 한참을 더 내려왔을 때, 멀리 희미한 불빛 하나가 보였다.


‘아, 돌아왔구나.’


마을 입구, 희미한 불빛 아래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게스트하우스 아저씨였다. 내가 오지 않자 집 밖으로 나와 길목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무사히 들어서는 나를 보자 아저씨는 나무라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어둠 속에서 날 기다리던 마당의 불빛과 그의 손길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능선에서 내려다본 센토브 마을


센토브에서 걷고, 먹고, 머물렀다. 돌아보면 여행에서 오래 남는 것은 유명한 장소만이 아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작은 친절,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순간들이 시간이 흐른 뒤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도 센토브는 가끔 떠오른다.


나무하나 없는 바람의 능선.

저녁상을 차려주던 가족.

그리고 밤길 끝에서 나를 기다리던 사람.

바람이 불 때마다 문득 생각나는 곳.


센토브는 내게 그런 마을로 남았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난다. 키질쿰 사막을 지나 아이다쿨 호수로. 그리고 실크로드의 오래된 도시, 부하라로 향한다.


글·사진 김진홍

톨탑과 황량한 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