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칼라에서 만난 오래된 골목과 사람들
인도에서 처음 야간열차를 탔던 밤이 떠올랐다. 슬리퍼 객실 천장의 선풍기. 사람들과 좁은 공간을 나누며 느꼈던 긴장과 설렘, 창밖으로 스쳐가던 이름 모를 역들. 익숙한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 같았다. 부하라에서 히바로 가는 야간열차에 오르자 오래전 인도의 밤이 겹쳐졌다.
기차는 부하라를 벗어나 키질쿰 사막을 향해 달렸다. 밤이라 사막은 보이지 않았다. 창밖에는 가끔 이름 모를 역의 불빛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둠 너머로 실크로드의 대상들도 건넜을 길이 펼쳐져 있을 터였다.
오래된 성벽, 살아 있는 도시
얼마나 지났을까. 기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히바였다.
택시를 타고 어둠 속을 달리자 어느 순간 거대한 흙빛 성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된 시간으로 들어가는 경계처럼 보였다. 숙소는 성 안에 있었다. 히바에 막 도착한 새벽의 이찬칼라가 궁금했다. 남문 쪽으로 걸었다.
관광객이 몰려오기 전이었다. 골목에는 간간이 빗자루를 든 사람들이 보였다. 황토빛 성벽과 집들이 새벽빛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거대한 미니어처 마을에 들어온 듯했다. 흙빛 담장 사이로 좁은 골목이 이어지고, 그 너머로 푸른 돔과 미나레트가 불쑥 솟아 있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 성벽 위로 올라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이찬칼라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마드라사와 모스크 사이로 집들이 이어지고, 골목에서는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여행자에게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은, 시간이 멈춘 도시처럼 보였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어느새 햇빛이 황토빛 성벽 위로 번지고 있었다. 히바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성벽에서 내려와 다시 골목으로 들어섰다. 황토빛 건물들 사이로 푸른 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타 미노르였다. 청록과 푸른빛 타일로 뒤덮인 육중한 탑은 주변의 흙빛 건물들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위로 뻗어 올라가던 탑은 어느 순간 잘려나간 듯 멈춰 있었다.
칼타 미노르는 완성되지 못한 미나레트다. 19세기 중반 무함마드 아민 칸이 거대한 미나레트를 세우기 시작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탑의 아래 부분만 남은 독특한 모습이다. 완성되지 않은 탑인데도 이상하게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완벽하게 끝난 것보다 중간에 멈춰버린 것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남는지도 모른다.
성벽 안은 생각보다 작았다. 천천히 걸어도 한 바퀴를 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길을 두 번, 세 번 걷게 되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양이 다시 걸을 때 눈에 들어왔고, 지나쳤던 작은 문과 골목이 그다음에는 발걸음을 붙잡았다.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건축물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유난히 자주 마주친 풍경이 있었다. 웨딩 촬영을 나온 신랑과 신부였다. 화려한 드레스와 정장을 차려입은 두 사람 곁에는 사진사와 친구들이 함께했다.
일행은 유적과 골목 사이를 함께 걸어 다녔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축하를 건네면 웃으며 화답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자연스럽게 그 흥겨움 속으로 들어왔다. 작은 거리 축제 같았다. 오래된 성벽과 마드라사 사이로 신랑과 신부가 걸어갔다. 웃음소리와 음악이 골목에 번졌다. 수백 년 된 도시와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한 풍경 안에 있었다.
골목을 조금 더 걷자 작은 호텔 앞이 부산했다.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솥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양고기와 채소를 손질하고 있었다. 무슨 잔치라도 준비하는 걸까 싶었다.
“플로브(Plov)를 만들어요.”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며 여러 번 먹었던 음식이지만, 이렇게 커다란 솥을 걸어놓고 여러 사람이 함께 준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플로브는 쌀에 양고기와 당근, 양파 등을 넣어 만드는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날이면 큰 솥에 넉넉하게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는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작은 가게와 좌판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전통 털모자와 수공예품, 나무를 깎아 만든 물건과 색색의 천들이 놓여 있었다. 상인들은 지나가는 여행자를 붙잡지 않았다. 물건을 들여다봐도 굳이 말을 걸거나 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마음이 가면 멈춰 서서 구경하고, 아니면 그대로 지나가면 그뿐이었다. 관광지만을 걷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성벽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오래된 건축물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사랑하고, 음식을 만들고, 물건을 팔고, 골목을 거닐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성벽 안에는 그렇게 오늘의 삶도 함께 있었다.
주마 모스크에 들어갔을 때는 수많은 나무 기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공간 안에 기둥들이 숲처럼 서 있었다.
저마다 다른 문양이 새겨진 기둥들이 오랜 세월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천천히 걷다 한 기둥에 손을 대보았다. 차가웠다. 사람은 사라지고 시간은 흘렀지만, 누군가 손으로 깎아 만든 흔적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어떻게 이런 도시가 만들어졌을까? 히바는 오래된 오아시스 도시였다. 물을 찾아 사람들이 모였고, 사막을 건너던 대상과 상인들이 머물렀다. 그렇게 작은 오아시스는 물자와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로 성장했다. 훗날 히바 칸국의 수도가 되면서 성벽 안에는 궁전과 마드라사, 모스크와 미나레트가 들어섰다.
그러나 푸른 타일과 황토빛 성벽 뒤에는 어두운 시간도 있었다. 히바는 한때 중앙아시아 노예무역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대상이 오가고 부가 쌓였던 길 위에서 사람 또한 상품처럼 거래되었다. 역사에는 아름다운 장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번영과 영광 뒤에는 인간의 욕망과 잔혹함도 있다.
골목을 한참 걷다 남문에 닿았다.
자동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걷고 있던 골목이 바로 문 하나 너머에 있다는 것이 묘하게 느껴졌다.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황토빛 성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처음 이 문을 지날 때만 해도 과거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 골목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히바의 시간은 멈춰 있지 않았다. 사람들의 웃음과 일상 속에서 과거와 오늘이 나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성문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지금도 흐르고 있는 히바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글·사진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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