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누구에게나 정직하게 하루 24시간을 배분한다지만, 그 흐름의 결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어떤 날은 한 주 전체가 찰나의 순간처럼 스쳐 지나가 월요일에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금요일의 문턱에 서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주는 시곗바늘 끝에 무거운 추라도 달린 듯 둔탁하게 멈춰 서 있다. 일을 해도, 놀아도, 그저 우두커니 서 있어도 묘하게 시간이 흐르지 않는 주. 지루함과 피로가 눅눅하게 엉켜 붙어 세상을 통째로 멈춰 세운 듯한 고요 속에서, 문득 이것이 정말 물리적인 시간의 법칙인가 하는 의문이 피어오른다.
어쩌면 내 삶은 영화 <트루먼 쇼>의 거대한 세트장 안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해둔 시나리오에 따라 각본대로 움직이고,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나의 시간마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삶의 주권을 온전히 내가 쥐고 있지 않다는 헛헛한 예감이 든다.
아침이면 출근길에 오르고, 낮 동안 타인의 요구에 부응하며 일터를 견뎌낸다. 퇴근길을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노동의 영역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을 쳐내고, 가족들의 따뜻한 밥상을 챙기며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마친다.
그 팍팍한 하루의 끝자락, 일주일에 고작 50분.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 내어 주었던 필라테스 수업 시간마저 이제는 스르륵 사라져 버린다. 처음에 그 작은 운동실을 찾아갈 때만 해도 스스로를 돌보겠다는 야심 찬 의지가 있었다. 밤 9시, 세상이 슬슬 잠에 들 준비를 할 때 주 2회씩 꼬박꼬박 운동화 끈을 매던 그 단단했던 마음. 하지만 거듭되는 일상의 과부하 앞에서 그 자그마한 의지조차 점차 마모되어 간다. 나를 위한 최소한의 시도조차 유지하기 힘겨워질 때, 나는 스스로의 무력함에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창밖을 내려다본다. 낮의 북쩍되던 세상은 밤이 되자 고요히 내려앉았다.
억지로 당겨지지 않는 시간을 견디며, 이 밤에도 하늘의 달과 별은 아무런 말 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빛을 발한다.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 것은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무겁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온전히 바라봐 줄 여유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쏜살같든, 멈춘 듯 더디든, 저 빛나는 별처럼 나 역시 이 과부하의 계절을 거쳐 마침내 나만의 속도를 되찾게 되기를 조용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