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부기를 빼는 중입니다

몸을 접으러 갔다가 마음을 폈다

by해루아 healua

월, 수 오전 요가실에는 거대한 '비공식 자리배치'가 존재한다.


선생님의 오른쪽 명당 두 자리에는 늘 60대쯤 보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숙련자 선배님들이 이미 도착해 시원하게 다리를 찢고 계신다. 연령대로 치면 내가 제일 막내인 것 같지만, 몸의 유연함과 내공만큼은 감히 그분들을 따라갈 수 없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두 분 중 한 분은 요가를 10년 넘게 배우셨단다. 고정 불변의 오른쪽 자리와 달리, 왼쪽 자리는 늘 주인이 바뀐다.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고 공기마저 썰렁하다.


내 최애 자리는 모두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창가 자리'다. 유리창 너머로 초록 초록한 나무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망하며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동작을 견딜 수 있고, 적당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제법 맘에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작을 살짝 틀려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완벽한 은신처인가.


하지만 지정 좌석이 아니기에 창가 자리를 사수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어느 날, 5분 일찍 도착했다. 앞자리 요가 선배님들과 선생님께 눈인사를 슬쩍 건네고 잽싸게 창가 자리로 스며들려던 찰나, 요가 선생님의 걸걸한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뒤로 숨지 말고 앞으로 오세요~!"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바로 그 마의 '왼쪽 앞자리'였다. 아…… 오른쪽 고수 분들과 실시간으로 비교당하면 곤란한데. 수강생 모두가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었기에 감히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선생님 바로 옆, 맨 앞자리에 요가 매트를 깔고 말았다.


내가 앞자리를 그토록 피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첫째, 날것의 부은 얼굴과 몸을 직시해야 한다. 머리를 질끈 묶고 거울 앞에 서면, 가끔 나조차 내 얼굴에 놀란다. 특히 주말에 맛있는 음식을 과하게 먹고 온 월요일 아침엔 십중팔구 얼굴이 부어있다. 효소 작용으로 부풀어 오른 빵 반죽처럼 얼굴은 탱탱해져 있고, 볼 안쪽엔 붕어 한 마리가 뻐끔거리는 것 같다. 거울 속 나만 아는 미세한 주름과 얼룩이 바로 눈에 들어오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둘째, 의도치 않은 '사명감'과 '시범 대상'이 된다. 오른쪽 60대 고수님들과 옆자리의 요가 선생님 사이에 끼어있으면 편안하게 따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내가 조금만 동작을 삐끗하면 뒤에 있는 분들이 나를 보고 헷갈려하기 때문에, 얼떨결에 '올바른 예시'가 되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따른다. 게다가 물구나무서기 같은 고난도 동작이 나오면 매를 먼저 맞듯 맨 앞자리부터 시범 대상이 된다. 피할 수 있을 때 피하는 것이 심신 건강에 좋은 법이거늘.


셋째, 중간 탈출이 어렵다. 혹시라도 급한 일이 있어 먼저 나가야 할 때, 맨 앞자리는 요가실 전체의 흐름을 깨뜨리는 민폐의 중심이 된다. 요가도 엄연한 '호흡과 흐름의 예술'인데, 나 혼자 허둥지둥 매트를 말아 쥐고 나가는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매트 위로 긴장감이 감돌던 그때였다. 어떤 회원분이 다리를 슬쩍 문지르며 선생님께 밑밥을 던졌다.


"강사님, 오늘은 좀 쉬운 동작으로 해주세요. 다리 근육이 아직 덜 풀린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단호박 요가 선생님, 눈 하나 까딱 않고 찰진 한 마디를 날리셨다.


"여러분, 다리가 부은 거랑 근육 있는 건 엄연히 달라요!"



순간 우리는 말없이 각자 코끼리 같은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았고, 이내 교실 여기저기서 빵 터지는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피할 수 없어 억지로 앉았던 앞자리였지만, 1시간 30분의 사투가 끝나고 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경락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땡땡하게 부어있던 얼굴과 몸의 붓기가 싹 빠져나간 것이다. 거울 속 붕어 같던 얼굴은 어디 가고, 제법 맑아진 피부와 눈빛이 나를 맞이한다. 이 맛을 보았으니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요가를 멈출 수가 없다.


어쩌면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요가를 계속하다 보면 내 몸의 부기가 빠지듯, 인생에 잔뜩 들어가 있던 허세와 불안의 붓기도 조금씩 빠져나갈지 모른다.


이제는 앞자리에도 몇 번 앉아보니 도가 텄다. 부끄러움도 서서히 옅어지고, '그러려니' 하고 나를 온전히 내던지는 용기도 생겼다. 처음부터 쉬운 적응이란 없다. 저마다 낯선 공간과 동작에 익숙해지기까지 필요한 시간의 속도가 다를 뿐이다.


확실한 건, 자리가 어디든 간에 내가 매트를 깔고 호흡을 시작하는 순간, 그곳이 바로 나만의 진짜 명당이 된다는 사실이다.




해루아의 세 번째 온라인카지노북 《몸을 접으러 갔다가 마음을 폈다》는 매주 화, 목 요가 매트 위에서 배운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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