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접으러 갔다가 마음을 폈다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보고 무릎을 쳤던 말이 하나 있다.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 잔소리는 들으면 기분이 나쁘고, 충고는 들으면 ‘더’ 기분이 나쁘다는 직관적인 정의였다.
결혼 후 내 삶은 조금씩 불협화음을 내며 변해갔다. 내 주관 하나만큼은 뚜렷해서 세상 어떤 색깔에도 쉽게 물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일 년에 바카라 100권을 거뜬히 해치우고 정해진 규칙대로 삶을 사는 지독한 '자기 계발러' 남편과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은근히 젖어들고 있었나 보다.
연애 시절, 단풍잎처럼 내 마음에 천천히 스며드는 사랑을 하고 싶다던 남편의 달콤한 고백은 결혼과 동시에 조금 다른 형태로 내 일상을 물들이기 시작했으니.
나는 사실 단풍잎처럼 예쁘게 물들어가는 온순한 사람이 아니다. 겉으로는 맞춰주는 척해도 속으로는 나만의 단단한 경계선을 지키고 싶은 청개구리 기질의 인간이었다.
커리어를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르는 공백의 시간, 남편은 나에게 다정한 권유를 건넸다.
"지금 쉴 때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는 게 어때?"
꿈을 찾으라고 주문하면 자판기처럼 꿈이 툭 튀어나오나. 생각한 대로 다 이루어지면 세상에 방황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다정한 권유는 어느새 내 귀에 묵직한 잔소리로 얹히기 시작했다.
그나마 내가 오랜 시간 좋아했던 일이 일기를 쓰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일이었기에, 남편의 권유를 수용해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바카라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 노력으론 남편의 촘촘한 기준을 채우기 부족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가 또 넌지시 말했다.
"시간을 좀 더 쪼개 쓰면 어떨까?"
대체 뭘 얼마나 더 쪼개라는 건지. 평일 두 끼, 주말엔 삼시 세끼를 정성스레 차려내고, 먹고 나면 청소하고, 돌아서면 다시 밥을 차리는 무한 반복의 궤도. 그 안에서 주부로 살아가는 나의 시간은 이미 파쇄기에 들어간 종이처럼 잘게 쪼개질 대로 쪼개져 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