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임시정부 편 (08)

by로크

고하 송진우는 한성에서 민족 운동을 거행할 것임을 비밀리에 알렸다. 거사일은 3월 1일. 이 소식은 여러 지하조직과 사발통문 등을 통해 청년과 민족지도자들에게 전해졌고 손병희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신자로 이루어진 민족대표 33인을 구성하였다. 그중 기독교 대표 16인을 천거하는 일에는 당시 큰 어르신으로서 존경받던 월남 이상재가 깊이 관여하였다.


손병희를 필두로 한 민족대표들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다는 소식이 백성들에게 전해졌다. 당시 청년들을 이끌고 3·1운동을 초기부터 주도했던 보성전문학교 법학과 재학생 강기덕은 각 중등학교 대표자들을 만나러 바쁘게 돌아다니며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위한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임을 전파했다.


“광무태황제의 장례 이틀 전이네.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직후 소요를 지휘할 것이야. 그러니 당일 아침 동맹휴학을 결의하고 공원에 모여주시게. 학생들이 많이 모일수록 나라의 독립에 큰 힘이 될걸세.”


기덕의 말에 중등학교 대표 하나가 조심히 물었다.


“이번 소요에 참여하는 민족대표가 누구입니까?”


기덕은 목소리를 낮추며 대표들의 귀에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을 전했다. 입과 입을 통해 명망있는 민족지도자들의 이름들이 오고 갔다. 하나같이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었다. 용기를 얻은 학생들은 기꺼이 참여하겠다 말하며 거사까지 건강하게 지내라는 덕담을 서로 건넸다.


1919년 3월 1일의 아침. 고종의 승하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중등학교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한 채 행적을 감추자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일본 경찰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종로 탑골공원으로 몸을 움직였다.


탑골공원은 독립운동을 위해 모인 학생과 백성들로 금세 북적였다. 멀리서 공원 주변을 지켜보고 있던 최린은 예상보다 많은 학생이 참석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이대로라면 일본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그는 현재의 공원 상황을 알리기 위해 숨 가쁘게 가회동 손병희 자택으로 달려갔다.


“의암 선생, 종로가 학생과 백성들로 가득찼습니다!”


최린의 말을 들은 병희가 물었다.


“일본 순사들의 동태는 어떠하오?”

“서울 시내 전역을 돌아다니며 순찰중입니다. 당장 종로에 집결하지는 않았으나 공원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그들도 조만간 낌새를 눈치챌 것입니다.”


순사들의 소식을 들은 병희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뒤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 민족대표들이 탑골공원에 모이면 학생과 민중이 흥분하여 폭력시위가 전개될지도 모르오. 아무래도 장소를 바꾸는 것이 좋겠소.”

“갑자기 말입니까? 어디로요?”

“백성들과 충분히 떨어져 민족대표들이 안전히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좋겠소. 이를테면…”


병희는 지도 위에 올린 검지를 탑골골원에서 서쪽으로 옮겼다. 손가락이 멈춘 곳에는 기생요릿집으로 유명한 명월관의 지점, 태화관이 있었다. 방이 많고 아무나 출입할 수 없어 비밀스러운 일을 진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한편 탑골공원 주변을 가득 메운 인파는 민족대표들의 지시를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었다. 오 분, 십 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갔다.


약속된 시간을 넘기자 학생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가장 심각하게 여긴 사람은 강기덕이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 대표 김원벽에게 현장을 맡아달라 부탁한 뒤 오지 않는 민족대표를 찾아 떠났다.

같은 시각, 일본순사들이 황성 YMCA 회관에 들이닥쳤다. 치호는 그들을 막아서며 말했다.


“이곳은 미국 소유의 회관이오! 이렇게 영장도 없이 함부로 들어올 수는 없소!”

“민족대표라 불리는 불령선인들을 찾고 있소. 아는 바가 있으면 당장 실토하시오.”


둘이 대치하는 사이 순사들은 회관의 사무실과 서랍을 샅샅이 뒤지며 실마리가 될만한 문건들을 찾아 헤멨다. 회관은 순사들이 집어던진 물건들로 인해 삽시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치호는 마음대로 물건을 들었다 놓는 순사들을 저지하며 당장 밖으로 나가라 소리쳤다.


태화관 가장 안쪽 구석에 자리한 매화 방. 손병희를 필두로 한 33인의 민족대표들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들 스스로는 모두 체포를 각오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고문이 만연했던 감옥의 여건상 이는 죽음까지도 각오한 셈이었다. 병희는 민족대표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참석을 확인한 뒤에 입을 열었다.


“갑작스런 장소 변경 공지에도 이렇게 자리에 함께해주신 민족대표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개인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4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여주셨군요. 지금부터는-”

“선생님, 잠깐 나와주셔야겠습니다.”


태화관의 주인 안순환이 허둥지둥 달려와 병희를 불러냈다. 은밀히 주인과 귓속말을 나누던 병희가 참석자들을 진정시킨 뒤 가게를 나오려는 순간, 기덕이 직원들의 방해를 뿌리치고 난입하여 소란을 피웠다.


“파고다 공원에 수천명의 학생들이 모여 선생들이 나타나기만을 고대하고 있는데 지금 무엇들 하고 계신 겁니까? 민족대표들이 태연히 요정에 앉아있는 것을 보면 민중들이 응원해주겠습니까? 당장 나와 대중 앞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백성들이 격분할 것입니다.”


최린이 격분한 강기덕을 막아 세우며 말했다.


“학생, 진정하시게. 파고다에서 선언식을 하면 휘말리는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 걸세 그러니-”

“공원의 학생들은 모두 여기 계신 선생님들의 지도를 바라고 모여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리 말씀도 없이 이리 독자적으로 행동하시면 어떡합니까? 저 분노한 군중들에게는 무어라 말씀하실 겁니까!”


기덕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를 진정시키고자 노력하던 최린을 병희가 물러 세우며 말했다.


“상황이 급하여 미리 알릴 수가 없었네. 내 직접 사과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파고다에 갈 수 없네. 그것이 유혈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병희의 완고한 태도에 기덕은 민족대표를 파고다로 부르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매화 방 뒤 편에 쌓여있던 독립선언문 여러 장을 손에 쥐고 태화관을 빠르게 벗어나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공원 학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계속 밟혔다.


기덕이 떠난 태화관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주인이 문을 열고 요리를 들여보내지 않았다면 영원히 침묵이 유지될 것만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주인은 조심스럽게 그 침묵을 깨뜨렸고, 마지막으로 먹게 될지도 모를 음식이 앞에 놓였다.


33인의 시선이 음식 위에 잠시 놓였다. 어느 자리에서는 두 손이 무릎 위에 놓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자리에서는 손끝이 젓가락의 그림자를 잠시 짚었다가 다시 물러났다. 그 누구도 맘 편히 수저를 들지 못했다.

병희의 지시에 따라 참석자들은 잔 위에 술을 따랐다. 불교 대표 한용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독립선언서를 꺼내 들었고 나머지들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그의 입에 집중했다. 용운은 눈을 감은 뒤 깊게 호흡을 들이쉬었다. 숨소리가 온 방 안에 울리는 듯했다. 숨을 다시 내뱉은 그는 꺼내 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탑골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행방이 묘연해진 민족대표와 그들을 찾아 나서고는 돌아오지 않는 기덕으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더 많이 모여들었고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사람들이 모인 것을 확인한 순사들은 그 주변에 열을 갖추어 소요사태에 대비했다. 순사와 청년이 서로 분위기를 살피는 어색한 상황이 펼쳐졌다. 팽팽히 당기어진 긴장의 끈. 그 끈을 끊어낼 불씨가 돌아오기만을 양측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벽은 공원에 모인 백성과 학생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민족대표가 도망쳐버렸다느니 독립선언문이 유실되었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돌았다. 분노한 군중들 사이에서 기덕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원벽은 드디어 저 멀리에 익숙한 얼굴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소? 학생들을 진정시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오?”

“늦어서 미안하네. 민족대표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네. 그들은 여기에 오지 않을 걸세. 그러니 우리끼리라도 거사를 치뤄야만 하네.”


기덕은 품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독립선언문을 꺼내 경신학교의 학생인 정재용에게 건넸다. 벅찬 숨을 내쉬며 재용에게 낭독을 부탁하자 재용은 숨을 고른 뒤에 단상 위로 올라갔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인파가 오직 정재용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재용이 낭독을 하는 사이 원벽과 재용은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여분의 독립선언문을 나눠주고 다녔다. 재용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목소리는 점차 옅어졌지만 그럼에도 그가, 민족대표가, 조선의 삼천만 백성이 소구하는 독립의지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단기 4252년 3월 1일.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낭독이 끝나자 기덕이 단상 위로 뛰어올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의 선창이 시작되자 공원에 모인 학생과 백성들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만세의 물결은 민족의 정기를 이어받아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종로의 어느 골목의 노인이 자기 손자의 손을 잡고 만세를 외쳤다. 파고다의 어느 자리에서는 어린 소녀가 자기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만세라는 어구를 처음 배웠다. 거사 소식을 모르던 이들도 공원에서부터 들려오는 군중들의 만세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종로로 달려가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백성들의 목소리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하나의 결로 하늘로 올라갔다. 일제강점기 십 년 동안 쌓아 올려진 민족의 울분이 일순간 터져 나오고 있었다.


조선인들이 저항하며 만세를 외치자 주변에 열을 갖추고 서 있던 순사들은 소요사태를 진압하기 위한 강압적인 체포를 시작했다. 백성들은 순사의 체포를 피하면서도 멀리 도망치지 않고 삼삼오오 다시 모여 만세를 외쳤다.


태화관 앞에 일본 종로 경찰차들이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순사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민족대표들을 잡아 차에 태워 연행해갔고 이를 지켜보던 백성들은 순사들에게 야유를 내뱉으며 만세를 외쳤다. 기마경찰은 야유를 내뱉은 이들을 위협하며 주동자를 찾아 나섰다.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기덕과 원벽은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며 학생들을 이끌었다.


YMCA 회관에서 일본 순사들에 의해 잔뜩 엎질러진 서류들을 정리하던 치호는 군중들의 함성이 들려오자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학생과 시민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종로 광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린 소년과 소녀들은 모자와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군중에게 호응했다. 치호는 독립협회를 지도하며 만민공동회를 이끌던 자신의 과거 모습이 떠올랐다.


“저토록 순진한 젊은이들이 애국심이라는 미명 아래 불보듯 훤한 위험을 향해 자진해서 달려가고 있다. 자신의 희생이 강대국들의 야합 앞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저 이상 가득한 위정자들의 장기 말로 소모될 뿐이지. 어린 생명들이 이토록 허무하게…”


치호는 눈물을 흘리며 회관의 문을 완전히 봉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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