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편 (06)
도쿄의 겨울은 바람이 매서웠다. YMCA 강당의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두꺼운 코트의 깃을 세우고 있었다. 그중 몇은 조선인이었지만 겉모습으로는 구분되지 않았다. 조선인이 조선인의 얼굴을 잃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승만을 포함한 대표들이 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신문을 통해 일본 도쿄 유학생들에게까지 전해졌다. 도쿄 YMCA 총무 잭 데이비스의 비서인 라이언 부인은 그의 제자이자 치호의 사촌동생인 치영에게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신문기사만큼 영어공부에 도움이 되는 재료가 없지요. 오늘은 마침 조선인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네요. 한번 읽어볼까요?”
라이언 부인으로부터 신문을 건네받은 치영은 어색한 발음으로 한 자 한 자 신문을 읽어나갔다. 윌슨의 포틴 포인트, 네이선의 셀프 디터미네이션 등 낯선 영단어들이 치영의 입을 빌어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중에도 익숙한 단어가 있었다. 승만. 내용에 대해 정확히는 몰라도 전쟁의 종식에 발맞추어 지도자들이 무언가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게 무슨 내용입니까?”
일본어로 되묻는 치영에게 라이언 부인도 일본어로 답해주었다.
“윌슨 대통령이 14개조 원칙을 발표했다고 하는군요. 발표된 내용 중 민족자결주의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조선인을 포함한 약소국 민족들을 크게 자극한 모양입니다. 당신이 아는 이승만 군이 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행을 확정지었다고 하네요.”
치영은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그대로 인사하고 나와 조선 유학생들에게 이 소식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치영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승만은 워싱턴의 어느 호텔 방에서 파리행이 좌절된 채로 앉아있다는 사실. 오직 치영의 손에 들린 며칠 지난 신문만이 이승만의 이름을 아직 파리 가는 배 위에 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강대국 중 하나인 미국이 소수민족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다는 소문은 유학생들의 입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일생일대의 기회에 가만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일본에서 차별을 받아온 조선인 유학생들은 각오를 다잡았다.
여운형의 사촌동생인 여운홍도 귀국 이전에 일본을 들러 조선인 유학생들을 만났다. 그는 중국과 미국, 그리고 만주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세히 전해주었다. 특히나 조소앙이 주도하여 이승만, 박은식, 이동휘, 이동녕, 김규식 등이 해외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일본에 있는 본인들도 이 분위기에 절대 소외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치영이 운홍에게 말했다.
“우리도 무언가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치영의 눈에는 열의가 가득했지만 운홍은 되려 그런 모습이 걱정이 되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에서 독립을 청원하는 순간 경찰에게 체포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요. 그럼에도 행동을 취하겠다는 말입니까?”
주변 조선 유학생들과 눈빛을 교환한 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독립선언서만 만들어주십시오. 우리는 행동에 옮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청년들의 눈동자엔 결의가 가득했다. 운홍은 머뭇거렸다. 이들을 도와주는 길은 곧 이들의 앞날을 막는 길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운홍이었기에 섣불리 도와주겠다고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청년들의 결기에는 자신의 미래를 담보잡는 각오마저 담겨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운홍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운홍은 와세다 대학을 찾아갔다. 신한청년당 소속이자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평가받던 이광수가 재학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광수를 힘들게 만나 입을 열었다.
“조선 유학생들이 이번에 거사를 치르고자 합니다. 도와주시지요.”
광수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계신겁니까?”
운홍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모두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저도 그들의 열기를 꺾을 수는 없었구요.”
강한 의지를 확인한 광수는 옅게 웃음을 띄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서울에서 독립운동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백성들의 강력한 의지였지요. 가져오신 전보를 제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운홍은 대한독립선언서를 광수에게 건네주었다. 이를 모두 읽은 광수는 운홍에게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사람을 통해 거사 일정을 전하도록 하지요. 그때까지 몸조심 하십시오”
신한청년당의 국외파 대표로서 일본에 와있던 장덕수는 이광수와 만나 구체적인 독립선언서의 얼개를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언서가 완성되자 최팔용은 이광수와 장덕수에게 도피를 제안했다.
이광수가 상해로 도피한 뒤에 팔용은 운홍을 만나 거사일정을 전해주었다. 운홍은 이를 치영을 통해 일본 유학생들에게 전했고, 마침내 2월 8일. 도쿄 YMCA 강당에서 예정되었던 조선 유학생 학우회 총회에서 백관수가 나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2.8 독립 선언서 결의문. 하나, 본 단은 한일 합병이 오족의 자유 의사에 출치 아니하고 오족의 생존 발전을 위협하고 동양의 평화를 요란케 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관수의 낭독과 함께 대회장을 감시하던 일본 제국 경찰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당일 오전 이미 각국 대사관과 각 지역 신문사, 그리고 조선총독부에 독립선언문을 발송해 놓았기 때문에 경찰의 급습은 예견된 일이었다.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강당 뒤편에서 들려왔다. 관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가 손에 든 종이는 아직 반도 낭독되지 않았다.
그가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둘, 본 단은 일본 의회 및 정부에…
경찰의 발자국이 강당의 통로를 따라 다가왔다. 유학생들이 자기 자리에서 몸을 굳혔다. 몇 명이 자기 옆의 친구의 손을 잡았다. 관수는 계속 읽었다. 그의 목소리가 강당의 천장에 부딪히고 다시 그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팔용과 함께 약 60여명의 유학생들이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유학생들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는 사이 덕수는 상해로, 운홍은 조선으로 몰래 빠져나갔다. 일본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소식은 빠져나간 이들을 통해 조선인들에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