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걷다, 인생의 가을을 마주하다

숲의 강인한 생명력 속에서 발견한 인생 가을의 소박한 바람

by김종섭

늘 걷는 산바카라길에는 나무와 숲, 그리고 사람들이 오가며 만들어낸 길의 온기가 어우러져 있다.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산바카라 도중 길에서 짐승이 남긴 배설물 흔적을 발견할 때면, 이곳 숲 속에도 수많은 짐승이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반가운 증거로 다가온다.

숲 속은 조용하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현장이다. 말라죽은 고목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목에는 무수한 버섯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세월의 풍파를 견딘 거대한 그루터기에는 그것을 둥지 삼아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또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죽어간 그루터기의 품에 의지해 뿌리를 내리고 몸을 기대어 성장하는 나무의 모습을 본다. 이것이 단순히 다른 생명에 더부살이하는 기생일지, 아니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숲 속 생태계의 경이로운 생존 법칙일지 생각해 보며 숲이 품은 생명력의 깊이를 실감한다.

오늘 산바카라길에서는 생명의 집념이 느껴지는 또 다른 장면이 있었다. 죽은 나무 한쪽에 오목하게 파인 작은 틈새로 도토리나무 싹이 돋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도토리 형태가 그대로 보존된 채, 도토리 껍질을 뚫고 연약한 새순으로 고개를 내밀며 생명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떻게 도토리가 이 좁은 나무 틈에 떨어져 싹을 틔웠는지, 자연의 조화를 볼 때마다 신기하고 경이롭다.

집 화단에 정성을 다해 물을 주고 날마다 손길을 가해도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에 비하면 숲 속의 식물들은 누구의 손길 하나 없이도 척박한 환경을 제 힘으로 견뎌내며 자생한다. 흔히 보호받으며 자란 꽃을 '온실 속 화초'라 부르지만, 숲의 생명들은 정해진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스스로 삶을 일궈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숲길에서 마음에 따뜻한 위안을 얻는다.

계절의 변화를 숲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기에 산바카라길을 더 자주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늘 푸른 침엽수와 달리, 가을을 맞이한 활엽수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푸른 옷을 갈아입는다.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모습은 쓸쓸하기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해마다 그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산으로 몰려드는 이유일 것이다.

산바카라 도중에 함께 걷던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2030대는 화장을 안 해도 꽃처럼 예쁜데 다들 열심히 치장을 할 필요가 있을까? 화장은 사실 꽃다운 젊은 나이보다는 주름살이나 피부 트러블이 늘어가는 우리 같은 나이에 더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러자 아내는 "그래도 젊을 때 화장을 해야 더 예쁘지, 나이 들어서 하면 뭐 그리 예쁘겠어요?"라며 웃는다. 소소한 대화 속에 가을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어느덧 60대에 접어들어, 인생의 계절로 치면 가을 한복판에 서 있다.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봄날 같은 2030 대도 아름답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은은함 역시 그에 못지않게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 산을 찾아 많은 이들이 오가듯, 60대라는 나이 역시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깊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계절이 아닐까 하는 위안을 산바카라길에서 얻어간다.

산바카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숲 속 생명들이 전해주는 순리가 마음속에 묵직하게 남는다.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의지하는 삶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만, 자연 속에 서로를 품어주며 순환하는 생명들은 그 자체로 건강하다. 인생의 가을길을 걸어가는 지금, 화려한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그저 숲길을 걸으며 소박한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자 소망이다. 오늘도 숲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를 낙엽 밟듯 사뿐히 밟으며 산바카라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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