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주말텃밭에서 만난 한국의 정

경고판 넘어 펼쳐진 이색 풍경, 해외 텃밭에 깃든 고국 향수

by김종섭

매일 걷던 호수공원 대신 오늘은 산바카라 코스를 바꿔보았다. 집에서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광활한 늪지공원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길을 나섰다. 여름철엔 그늘이 없어 뙤약볕이 내리쬐는 곳이지만, 오늘처럼 흐리고 선선한 날씨는 이곳을 걷기에 더없이 완벽하다. 넓은 수로와 늪지가 어우러진 이곳은 원래 원주민의 터전이었던 까닭에, 몇 년 전 원주민 언어를 함께 표기하는 명칭으로 공원 이름이 바뀐 곳이기도 하다.

공원 입구 주차장 건너편으로는 지역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넓은 주말 텃밭이 펼쳐져 있다. 가끔 이곳으로 산바카라을 나올 때마다 텃밭 안에 들어가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혹여 농사짓는 분들에게 민폐가 될까 싶어 늘 겉으로만 가볍게 살펴보고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모처럼 텃밭 입구 안내판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경고문에 '작물이 심어진 밭 구역에 들어가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문구도 함께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작물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단순히 구경하는 외부인 출입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닌 듯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텃밭 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보안 경고판과 출입 규칙, 곰 출몰 경고 표지판, 축제 일정이 명시된 안내판

텃밭 입구에 들어서니 지역 커뮤니티 텃밭임을 알림과 코요테 출몰 입간판과 함께 곰의 출몰을 알리는 별도의 경고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한쪽에는 수확 축제(Harvest Festival)와 작업 파티(Work Party)를 연다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처럼 작업 파티 안내판이 게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곳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끼리 별도의 훈훈한 정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입구 안내판 기둥 꼭대기에 설치된 CCTV를 보고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는 공공장소에서 CCTV를 설치한 곳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 당연히 이곳에도 없을 줄 알았다. 사방 군데군데 설치된 것은 아니고 초입에 전방을 향한 작동 카메라가 하나인 것을 보아서는 아마 외부인 출입 경고나 도난 방지 용도로 최소한 설치해 둔 모양이었다.

케일과 대파가 자라는 이랑, 비닐하우스, 나무 벤치 휴식 공간과 텃밭 입구 산바카라로 전경

텃밭을 들러보니 꽃부터 시작하여 채소, 과일 등 다양한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특히 도로변, 공원, 강 주변 등 어딜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 블랙베리까지도 텃밭에서 특별하게 키우고 있었고 작물들 또한 매우 다채로웠다.

특히 한국의 텃밭과는 달리 이색적인 것은 우스꽝스럽게 허수아비 대용으로 연출된 캐네디언들 독창성에 맞게 데코레이션을 한 작품들이 각각의 텃밭에 랜드마크처럼 이색적인 텃밭 이미지를 한층 더 연출해 놓았다. 텃밭에는 채소나 과일이 아닌 화원처럼 꽃을 가꾸는 사람이 많았고, 일반적인 공통점으로는 토마토, 그중에서도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텃밭이 많았다.

각종 장식물로 텃밭을 허수아비 대용으로 장식해 두었다

한참을 텃밭 주변을 아내와 둘러보다가 어느 텃밭 현장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머루처럼 알이 자잘한 포도나무가 한 집 텃밭의 울타리가 되어 있었는데, 포도에는 예쁜 망으로 선물 꾸러미를 싸듯 열매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 자체가 선물 같아 보였고, 아마도 나중에 가까운 지인에게 선물할 용도인 듯했다.

바로 그 옆 텃밭에서 일하던 아저씨가 "한국 분이세요?" 하고 말을 건네왔다. 마침 이것저것 궁금하던 차여서 더욱 반가웠다.

포도송이를 예쁜 망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감싸 둔 모습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포도 텃밭의 주인은 중국인 할머니인데, 이곳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할머니가 바로 이 구역의 방장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다. 아저씨는 포도를 따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포도 한 알을 따서 맛을 보니 달콤하고 당도가 높았다. 사실 취미 활동으로 하는 텃밭이었지만 텃밭 주인의 정성이 깃든 포도를 차마 더 이상 따 먹을 수 없어 손을 멈추고 눈으로 보는 것에만 집중했다.

아저씨에게 궁금했던 것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60대인 나에게는 아저씨로 호칭이 불러지지만, 사실 70대 초·중반쯤의 할아버지이다.

제일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텃밭 분양과 이용에 관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지금 쓰는 텃밭을 분양받기 위해 신청 후 3년을 기다렸다고 했다. 일 년 회비가 50달러에 불과하다니, 사실상 온여름 밭에 대는 물값도 안 되는 셈이다.

지역에는 각종 커뮤니티가 있지만 이민자들에게 텃밭을 취미로 가지기에는 퇴직 후 노후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농장을 둘러보면서 어떤 텃밭에는 깨를 집중적으로 심었던가 아니면 마늘, 상추, 고추로 텃밭을 가득 메운 곳도 있었다. 이런 채소류를 보아서는 한국인 텃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래도 한국인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양념과도 같은 채소들이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캐네디언들은 채소류보다는 화원처럼 꽃을 가꾸는 데 더 공을 들이고 있었다. 밭 한구석에는 빨갛게 익은 토마토 같은 과일들이 수확되지 않은 채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모습도 흔히 보였다. 아저씨 말에 따르면 캐네디언들은 과일을 수확해서 먹는 목적보다는, 열매가 열리고 익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즐기는 관상용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알뜰하게 수확을 거두는 우리네 농사짓기 문화와는 사뭇 다른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해외에 있는 텃밭이지만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밭마다 풍경이 제각각이었다. 한국인의 텃밭에는 깻잎과 상추 같은 밥상의 익숙한 채소들이 정갈하게 자라고 있었다. 만리 타향 땅에서도 가꾸는 작물 하나에 고국의 삶과 정서가 그대로 깃드는 모습을 보며, 텃밭은 단순히 채소를 키우는 공간을 넘어 마음의 고향을 일구는 자리임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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