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을 악성 민원인(?)과 살았다.
바로 우리 아버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떤 지점에서 화가 났는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아버지였다.
만약 악성민원인으로 정의 내린다면 우리 아버지는 탑(?)급이다.
집안을 온통 전쟁의 불바다(?)로 만드는 아버지와 장장 20여 년을 살았다.
근데 슬프게도 나는 평화주의자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생각해 보라. 전쟁유발자와 평화주의자의 동거라니...
나는 늘 집안의 평화를 원하고 또한 평화롭기 위해 희생하기도 했다.
결혼해서는 어떤가.
민원인의 수가 늘었다. 나 빼고 다섯 명이다. 남편과 네 자녀다.
남편이 신혼 초에 한동안 속 썩였으니 평화주의자인 나는 그 평화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희생을 했다. 애들과의 갈등에서도 평화주의자인 내가 많이 양보한다.
이거는 타고난 거라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평생을 악성 민원인들과 사니 말이다.
어쩌다 어떤 동아리든 온라인 게임이든 말이다. 내가 속한 그룹에서 가장 어려운 민원인들을 상대하게 된다. 다들 두 손 두 발 들고 도망가는데 나는 그 민원인들을 분석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그런 행동을 하지?'
마음속으로 아주 심리분석 수준으로 논문을 쓸 지경이다.
조직의 평화를 해치는 그들이 못마땅하니 꼭~~ 나서서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공황이 있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자꾸 주변 사람을 신경 쓰고 있다.
나만 잘살면 되는데 말이다.
내속은 썩어 문드러지는데 조직의 평화가 깨지는걸 눈감고 있지 못하겠는 것이다.
이제 공황이니 제발 눈감고 참길 바란다.
가는 곳마다 문제 있는 인간, 갈등 있는 인간들을 해결하고 도와주려 애를 쓴다.
그것은 마치 큰 자석을 가지고 다니면서 더러운 때들을 척척 붙이고 다니는 것과 같다. 때를 컬렉션 하고 다니는 거다.
이것은 노력이 아니라 저절로 그런다. 안테나를 접어야 하는데 너무 발달해 있다.
이건 평화주의자의 저주라 해도 무방하다.
타인의 고통의 때를 붙이고 다니느라 정작 나의 힘듦을 외면하는 악순환이다.
그러다가 번아웃이 오고 공황까지 온 것이다.
이게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나도 살아야 되는데 말이다.
나도 좀 살자.
타인에게 향해있던 안테나를 끄고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
그들은 그들 데로 잘 산다. 어쩌면 그들은 나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다.
공황도 아니고 나보다 살만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불평을 다 해결해 줄 수 없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길 바란다.
악성 민원인에 대한 인류애는 걷어버리고 단지 똥(?)이라 생각해야 내가 살 수 있다.
아. 똥이라 생각한것은 주변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주니 똥이라 명명한 것이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튀길까 봐 피하는 것이다. 나는 그 똥을 주무르고 다닌 꼴이다.
평화주의자를 그만두기로 한다.
모두의 평화를 내가 해결 못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런 생각과 행동은 오만이고 교만이다.
노력만 가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