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건 사랑이 깊어서가 아니었다

by응시

이야기

처음엔 운명 같았다.


그 남자는 빠르고 깊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그 여자를 깊이 이해했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오래 외로웠겠다고, 아무도 너를 몰라줬겠다고 했다. 그 여자가 평생 듣고 싶던 말이었다. 이렇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그 여자는 생각했다.


그 남자는 그 여자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알았다. 글을 쓰고 싶어 하면 글을 봐주는 사람이 되었고, 인정받고 싶어 하면 누구보다 먼저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되었다. 네 재능을 내가 키워 주겠다고, 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 여자에게 그 남자는 사랑인 동시에, 꿈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


그러고는 자기 상처를 보여 주었다. 외롭게 자랐다고, 너만은 다르다고. 그 여자 안에서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깨어났다. 내가 아니면 이 사람은 무너지겠다.


이해받아서 머물고, 꿈을 맡겨서 떠나지 못하고, 가여워서 놓지 못했다. 세 겹으로 묶인 줄도 모르고, 그 여자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그다음부터 다정이 모양을 바꿨다. 어디 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다 알고 싶어 했다. 친구를 만나면 표정이 굳었고, 옷차림을 두고 한 마디씩 했다. 그 여자는 그가 불편해할 일을 줄여 갔다. 친구를 덜 만나고, 옷을 바꾸고, 더 빨리 답했다. 그렇게 세상이 좁아졌다. 어느새 곁에는 그 남자뿐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꺼낸 날, 그 남자는 무너졌다. 너 없으면 죽어 버리겠다고 했다. 그 여자는 무서웠고, 또 가여웠다. 그래서 또 한 번 마음을 접었다.


그러나 한번 떠나려 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시 헤어지자 했을 때, 그 남자는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따라오기 시작했다.


집 앞에 서 있었다.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찍혔다. 가는 곳마다 그가 있었다. 그제야 그 여자는 알았다. 헤어지자 말한 그 순간부터, 가장 위험한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들여다보기

흔히들 말한다. 오죽 사랑하면 저럴까. 떠나니까 저러는 거지.


틀렸다. 처음의 그 다정부터 다시 봐야 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수법이었다.


그가 그 여자의 아픈 곳을 정확히 짚을 수 있었던 건, 마음이 깊어서가 아니다. 어디를 짚어야 사람이 열리는지 아는 감각 때문이다. 이해해서 읽은 게 아니라, 열고 들어오려고 읽은 것이다. 어떤 가해자는 상대의 마음을 놀랄 만큼 잘 읽는다. 공감해서가 아니라, 조종하려고 읽기 때문이다.


그가 겨눈 세 곳을 보라. 이해받고 싶은 마음, 무언가 되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돌보고 싶은 마음. 전부 그 여자에게 가장 소중하고 정당한 마음들이다. 약점이 아니라 미덕이다. 무서운 건, 그가 바로 그 미덕을 무기로 썼다는 것이다. 따뜻한 사람을 알아보고, 그 따뜻함을 덫으로 되돌린 것이다. 그러니 걸려든 건 그 여자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이해받고 싶은 그 마음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다.


그가 약속한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정말 글을 쓰게 해 주면, 그 여자가 자립하면, 떠날 수 있게 되니까. 그래서 늘 문턱에서 멈췄다. 넌 아직 부족하다고, 나 없이는 안 된다고. 키워 주는 척하며, 떠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제 핵심이다. 그는 왜 떠남을 견디지 못했나.


처음부터 그가 원한 건 그 여자의 마음이 아니라, 그 여자를 가지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가지려는 사람은 상대가 자기 것이기를 바란다. 그러니 헤어지자는 말은 그에게 이별이 아니었다. 내 것이라 믿은 사람이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따라다니는 것은 미련이 아니다. 아직 끝내지 못한 지배다. 사랑을 확인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 손안에 있는지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여기서 이 편이 다른 중독과 만난다. 그도 못 멈춘다. 확인하면 잠시 안심하고, 곧 다시 불안해져 또 확인한다. 쇼핑하던 사람이 결제를 멈추지 못하고, 도박하던 사람이 베팅을 멈추지 못했듯, 그는 통제를 멈추지 못한다. 다른 점은 하나뿐이다. 그가 거머쥐려는 게 물건도 판돈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분명히 해 두자. 그도 갇힌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갇혔다고 해서, 그 감옥에 다른 사람까지 끌어넣을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의 상처가 진짜라도, 상처가 있다고 남을 가둘 권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한 걸음 물러서서

여기서 물러서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우리는 이런 집착을 오래도록 사랑이라 불러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가르쳤다.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남자를 드라마는 순정으로 그렸다. 따라다니고 매달리는 것을 사랑의 깊이로 미화했다. 그렇게 자란 사람에게, 떠나는 상대를 붙드는 일은 사랑의 증거였다. 그래서 주변도 그 길을 끊지 못했다. 네가 잘 달래 보라 했고, 그만한 사람 없다 했다.


법이 이것을 범죄라 부른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스토킹처벌법이 생긴 건 2021년, 첫 법안이 나오고도 스물두 해가 걸렸다. 그동안 따라다니고 집 앞을 지키는 일은 기껏 벌금 십만 원의 경범죄였다. 왜 이토록 늦었나. 우리가 그것을 너무 오래 사랑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사랑이라 부르는 것을 범죄로 보기까지 그만큼이 걸렸고, 그사이 너무 많은 사람이 그 길 끝에서 목숨을 잃었다. 법은 자주, 누군가 죽고 난 뒤에야 왔다.


이 일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다만 무게는 기울어 있다. 따라다니다 끝내 목숨까지 빼앗기는 쪽은 대개 여자다. 그리고 이제는 도망칠 곳마저 줄었다. 손 안의 기기가 위치를 알리고 흔적을 남긴다. 숨을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무서워하라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알아보라고 쓴다. 이 수법은 늘 비슷하다. 너무 빠르고 깊은 사랑, 너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는 호소, 네 꿈은 나를 통해야 한다는 약속, 그리고 조금씩 좁아지는 세상. 패턴이 보이면, 막을 수 있다.


그러니 혹시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다면. 다정이 단속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모질지 못해서가 아니다. 사랑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것에, 사랑인 줄 알고 머문 것뿐이다.


그리고 이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당신을 가두는 것은, 아무리 다정한 얼굴을 해도 사랑이 아니다. 혼자 판단하기 어렵고 떠나기가 두렵다면, 기댈 곳이 있다. 여성긴급전화 1366은 밤낮없이 연결된다.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망설이지 말고 112다. 떠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니, 부디 혼자 떠나려 하지 마라. 도움을 받으며 떠나라.


당신은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던 적이 없다. 그 사람이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떠나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당신을 당신에게 돌려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