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받으려 살았다
이야기
그 여자는 늘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떠나면, 오래 비어 있지 못했다. 빈자리가 견딜 수 없어, 곧 다른 사람으로 채웠다. 매달리고, 맞추고, 다 내어주고, 그러다 버림받을까 봐 더 매달렸다.
사랑할 때 그 여자는 살아 있었다.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고, 그 사람의 기분을 살피고, 그 사람에게 맞춰 하루를 짰다.
이상한 건 그 여자의 방이었다. 등산을 좋아하던 사람을 만날 땐 현관에 등산화가 놓였고,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을 만날 땐 바카라장이 디브이디로 채워졌다. 사람이 바뀔 때마다 방이 바뀌었다. 그런데 그 방 어디에도, 그 여자 자신의 것이라 할 만한 건 없었다.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그 여자는 점점 떠올리지 못했다. 상관없었다. 그 사람이 좋아하면 됐으니까.
그런데 매번 끝은 비슷했다. 다 내어줄수록 그 사람은 멀어졌다. 더 잘하려 할수록 더 빨리 떠나갔다. 그 여자는 자기가 부족해서라고 여겼다. 더 사랑하면, 더 맞추면 이번엔 다를 거라고.
그렇게 한 사람이 또 떠난 밤, 그 여자는 견디지 못했다. 혼자 있는 그 방이, 자기가 사라지는 자리 같았다.
들여다보기
그 여자에게 흔한 말이 따라붙는다. 사랑에 목매는 사람. 사람 없이 못 사는 사람.
틀렸다. 이건 사랑이 헤픈 게 아니다. 사람들은 이를 관계 중독이라 부른다. 의학이 공인한 진단명은 아직 아니지만, 상담실에서는 오래전부터 쓰여 온 이름이다. 사랑이 많아서가 아니라, 혼자를 견디지 못해 사람을 놓지 못하는 것.
이제 두 번 들어가야 한다.
먼저 한 겹. 그 여자가 붙든 건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을 사랑했다면, 그 사람이 떠난 자리가 다른 누구로 그렇게 빨리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채워졌다. 상대가 누구인지보다, 자리가 비지 않는 게 더 급했다. 그러니 그 여자가 붙든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빈자리 그 자체였다. 사랑은 그 사람을 원하지만, 두려움은 아무나 원한다.
여기서 한 겹 더 내려가야 한다. 그 여자는 왜 빈자리를 그렇게 못 견뎠나.
혼자 있으면 자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곁에 누가 있을 때만 그 여자는 자기가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 자기를 불러 주고, 기다려 주고, 필요로 할 때. 그 시선이 비춰 줄 때만 자기가 또렷했다. 그래서 혼자가 되면 불빛이 꺼지듯 자기도 꺼졌다. 사람이 바뀔 때마다 방이 통째로 바뀐 것도 그래서다. 제 취향이라 할 게 없으니, 곁에 있는 사람의 것으로 자기를 채운 것이다.
그 여자가 매달린 건 사랑이 아니라, 자기 존재였다. 그 사람이 없으면 사랑을 잃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사라졌다. 그러니 다 내어준 것도 사랑이 아니었다. 자기를 비워 그 사람을 붙드는, 생존이었다. 살려고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받으려 살았다.
심리학자 하인츠 코헛(Heinz Kohut)이 이 마음을 비춘다. 그는 어떤 사람은 곁에서 비춰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자기로 선다고 보았다. 그 누군가를 자기 대상이라 불렀다. 내 안의 빈 곳을 대신 채워 주는 바깥의 존재. 그가 사라지면 자기도 함께 흐려진다.
쇼핑하던 그 여자가 상자로 빈 데를 메우려 했듯, 이 여자는 사람으로 메우려 했다. 다만 상자보다 잔인하다. 상자는 말이 없지만, 사람은 떠나가니까.
그리고 혼자를 견디지 못해 사람에 매달리면, 그 관계 하나가 모든 것 위에 올라선다.
떠나지만 않는다면, 그 여자는 무엇이든 했다. 거짓말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모욕을 들어도 웃었고, 부당한 일을 시켜도 따랐다. 옳고 그른 것, 지켜야 할 선, 자기 존엄. 본래 사람을 사람으로 세워 주는 것들이, 관계를 잃지 않는다는 한 가지 앞에서 다 뒤로 밀렸다. 관계가 그 모든 것 위에 서 버린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함부로 대해져도 괜찮아진다. 그 관계만 이어진다면 견딘다. 관계를 지키려고, 자기를 지키는 일을 그만둔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여기서 물러서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왜 사람이 기댈 곳을 관계 하나에 다 걸게 되었나.
사람은 본래 여러 자리에서 자기를 확인한다. 일하는 자리, 무언가에 보탬이 되는 자리, 한 사람의 시민으로 선 자리. 그 자리들이 자기를 떠받치면, 사랑 하나가 끝나도 자기가 통째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자리들에서 밀려난 사람에게는, 기댈 기둥이 관계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관계가 목적이 된 게 아니라, 목적이 될 수밖에 없게 떠밀린 것이다.
여자에게 이 일이 흔한 까닭이 거기 있다.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여자는 오래도록 관계 안에서만 값이 매겨졌고, 혼자인 너는 누구냐고 세상은 묻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 남자라고 다르지 않다. 다만 매달리는 모습을 못난 일로 여기는 세상에서, 남자의 그 두려움은 더 깊이 숨고 더 곪는다. 뿌리는 같다. 혼자가 되면 자기가 사라진다는 두려움.
다만 그 두려움이 상대를 옭아매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떠나지 못하게 가두고, 따라다니고, 무너지겠다 위협하는 것. 그건 더는 이 글이 말하는 중독이 아니다. 그건 폭력이고, 다음 편에서 따로 이야기하려 한다.
그래 놓고 세상은, 그 빈자리에 대고 판다. 운명의 한 사람을 만나라고, 화면을 넘기면 다음 인연이 있다고. 사람을 학벌과 연봉과 사진 몇 장의 목록으로 진열해 놓고, 고르고 버리게 한다.
상처는 한쪽에서 내고, 약은 다른 쪽에서 판다. 그러니 그 여자가 사람을 놓지 못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혼자 서는 법을 한 번도 배우지 못한 자리에서, 그저 사라지지 않으려 손을 뻗었을 뿐이다.
당신도 어쩌면 알 것이다. 혼자인 밤이 무서워, 떠난 사람을 붙들던 그 마음을.
그건 당신이 사랑이 헤퍼서가 아니다. 혼자인 너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이, 그래도 사라지지 않으려 버텨 온 사람의, 안간힘이었을 뿐이다.
다만 하나만 같이 보고 싶다. 그 손이 붙들려던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사라질까 두려운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곁에 누가 없어도 꺼지지 않는 자기가,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그 손은 다른 것을 쥘 수도 있다. 떠나갈 사람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 자기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