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

살아 보려고 건 게 아니라, 걸기 위해 살았다

by응시

이야기

그 남자는 처음엔 재미였다고 했다.


친구 따라 처음 건 날, 잃었다. 그런데 그다음 판에서 땄다. 잃은 것보다 더. 손바닥에 들어온 돈보다, 딸 듯 말 듯하던 그 몇 초가 오래 남았다. 심장이 그렇게 뛴 게 얼마 만이었는지 몰랐다.


그날 이후 그 남자는 자꾸 그 몇 초를 찾아갔다.


처음엔 주말에만. 다음엔 퇴근길에. 나중엔 일하는 중에도 화면을 들여다봤다. 딴 날은 더 걸었고, 잃은 날은 잃은 걸 메우려 더 걸었다. 따도 멈추지 못하고, 잃어도 멈추지 못했다. 멈추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사이 사람들이 떠나갔다. 약속에 나가지 않았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연락을 피했다. 친구가, 형제가, 마지막엔 식구가 등을 돌렸다. 곁에 남은 건 화면 하나였다.


이윽고 다 무너졌다. 모아둔 것을 잃고, 빌린 것을 잃고, 빌릴 데마저 잃었다. 통장은 비고 사람도 없었다. 남은 건 빚과, 또 한 번이면 다 되찾을 것 같은 그 마음뿐이었다.


들여다보기

그 남자에게 흔한 말이 따라붙는다. 한탕 노리는 사람. 요행이나 바라는 사람.


틀렸다. 이건 욕심의 문제가 아니다. 이름이 있는 병이다. 따려는 게 아니라 거는 행위 자체를 멈추지 못하는 이 상태를,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라 부른다. 쇼핑과 달리, 게임과 함께 의학이 정식으로 인정한 행위 중독이다.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멈추는 회로가 망가진 것이다.


이제 두 번 들어가야 한다.


먼저 한 겹. 그 남자가 좇은 건 돈이 아니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딴 날 멈췄어야 한다. 그런데 딴 날에 더 걸었다. 그러니 그가 좇은 건 딴 돈이 아니라, 거는 그 순간이었다. 정직하게 벌어선 닿을 수 없는 것이, 한 번의 베팅으로 손에 잡힐 것 같던 그 몇 초.


세상은 더디다. 일해도 더디게 오르고, 모아도 더디게 쌓인다. 성실히 살아선 평생 못 닿을 것 같은 자리가 있다. 그 막막함 앞에서 도박은 다른 말을 건넨다. 기다리지 마라. 한 번에 뒤집어라.


그래서 도박꾼이 산 건 요행이 아니라, 과정을 건너뛴 결과였다. 씨 뿌리고 기다려 거두는 그 더딘 과정 없이, 단번에 결과만 가지려는 것. 살아 보려고 건 게 아니라, 걸기 위해 살았다.


여기서 한 겹 더 내려가야 한다. 그 몇 초가 그렇게 좋았다면, 왜 따고도 멈추지 못했나.


과정을 건너뛰는 데 길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 번 한 방의 짜릿함을 맛보면, 더딘 것이 견딜 수 없어진다. 일해서 더디게 버는 돈이 시시해지고, 천천히 쌓는 관계가 답답해지고, 오래 걸리는 모든 것이 우습게 보인다. 도박은 삶의 대체물이 아니다. 삶을 못 견디게 만드는 기준이다.


돈부터 무게를 잃는다. 한 달을 일해 번 삼백만 원과 한 판에 오가는 삼백만 원은 같은 돈이 아니다. 돈의 무게는 그것을 버는 데 든 시간에서 오는데, 판 위의 돈은 과정 없이 오가니 무게가 없다. 그래서 그 남자는 마트에서 만 원을 아끼면서, 판에서는 백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잃은 돈도 잃은 게 아니었다. 되찾아야 할 내 돈이었다. 그러니 잃을수록 물러나는 게 아니라, 잃을수록 더 깊이 들어갔다.


그래서 도박꾼이 끝내 잃는 건 돈이 아니다. 과정으로 이뤄지는 삶 전체다. 더디게 일하고, 더디게 사랑하고, 더디게 늙어 가는 그 보통의 삶이, 그에겐 이제 너무 느려서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사람이 떠나간 것도 그래서다. 관계란 본래 가장 더딘 과정이다. 시간을 들여야 쌓이고, 공을 들여야 깊어진다. 한 방을 좇는 사람에게 그 더딘 것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과정을 잃으면 사람을 잃는다. 판만 남고, 곁이 사라진다.


슬롯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이 마음을 멀리서 비춘다. 그는 사람이 두 가지 길로 산다고 보았다. 무언가를 가져서 자기를 증명하는 길과, 무언가로 살아서 자기가 되는 길. 가지는 데 매달리면 사는 일을 잃는다고 그는 말했다. 결과를 손에 쥐려다, 살아가는 과정 자체를 놓치는 것이다.


도박꾼이 꼭 그렇다. 한 번에 거머쥘 결과에 매달리다, 더디게 살아가는 삶을 통째로 놓쳤다. 가지려다, 사는 법을 잃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여기서 물러서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도박은 아무 때나 번지지 않는다. 격차가 벌어진 시대에 번진다.


성실히 일해선 집 한 채 못 산다고 느낄 때. 사다리가 치워졌다고, 정직한 길은 막혔다고 느낄 때. 바로 그때 사람들은 확률에 건다. 노력이 배신당한 자리에서, 한 방이 유일한 희망의 얼굴로 들어온다. 그러니 도박이 유난히 번지는 시대가 따로 있다. 한 사람의 악덕이라기엔,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은 시기에 같은 곳으로 간다.


게다가 시대가 온통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코인으로 몇 배를 벌었다는 이야기, 집값이 앉은자리에서 몇 억 올랐다는 이야기. 일해서 모으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이야기들. 쉽게 벌자는 꿈은 그 남자 혼자 꾼 게 아니다. 온 시대가 같은 꿈을 꾸었다. 다만 같은 꿈이라도 어떤 것은 투자라 불리고, 어떤 것은 도박이라 불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한 방은, 누가 그의 손에 쥐여 주었나. 복권은 길모퉁이 가게마다 있었다. 경마도, 카지노도 멀지 않았다. 정직한 노력으로는 못 오른다고 느끼게 만든 바로 그 자리에, 요행을 살 곳은 늘 가까이 있었다. 잠 못 드는 밤이면, 손 안의 화면에서 판이 쉬지 않고 돌아갔다.


상처는 한쪽에서 내고, 약은 다른 쪽에서 판다. 사다리를 치운 슬롯가, 사다리 대신 복권을 판다. 그러니 그 남자가 거기에 손을 뻗은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도록 깔아 둔 길 위에 서 있었을 뿐이다.


당신도 어쩌면 알 것이다. 더디게 사는 일이 막막해, 한 번에 뒤집고 싶던 그 마음을.


그건 당신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정직한 길이 막혔다고 느끼게 만든 자리에서, 손 닿는 유일한 희망을 쥐었을 뿐이다.


다만 이 편만은 한 가지를 더 말해야겠다. 옛말에 도박은 손모가지를 잘라도 발로 한다 했다. 우스개가 아니다. 결심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결심으로 안 되는 병이라는 걸 옛사람들도 알았던 것이다. 멈추는 회로가 망가진 몸은, 마음이 아무리 끊어도 몸이 다시 간다. 그러니 혼자 지지 마시라. 도박 문제로 힘들 때 기댈 곳이 있다. 국번 없이 1336,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다. 부끄러운 전화가 아니다. 더딘 삶으로 돌아오는,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그 손이 정말 쥐려던 건 돈이 아니었다. 한 방이 아니라, 더디게 쌓여 가는 삶이었다. 그 손은 다른 것을 쥘 수도 있다. 단번에 오는 것 말고, 오래 걸려 오는 까닭에 오래 남는, 다른 무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