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캐나다로 떠난다

by함지연

내가 자유인이 되기 전, 막연하게 꿈꾸던 몇 군데의 여행지가 있다. 언젠가는 꼭 그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언젠가는 사막에 가서 별을 봐야지.

언젠가는 오로라를 보러 떠나야지.

그때의 나는 도무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게는 삼시 세 끼를 차려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고, 자녀 돌봄은 오직 내가 감당해야 했고, 더군다나 막내에게는 장애가 있었기에 더 특별한 돌봄이 필요했다. 전업주부였던 내게 경제적인 부분은 모두 자신의 소유라는 전남편이 있었다.

나는 일주일 이상 떠날 수 있는 자유도 없었고, 떠날 수 있는 돈도 없었다. 20년 이상을 무보수 노동자로 살면서 고작 일주일 휴가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 숨이 막혔다. 별도 오로라도 아득히 먼 곳에 있었고 그건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난해 가을에는 별을 보러 몽골에 갔고, 다음 달이면 캐나다로 여행을 떠난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캐나다 여행을 계획했던 건 작년이다. 둘 다 오로라를 직접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오로라 투어가 가능한 나라 몇 곳을 검색하다가 캐나다로 정한 것은 그곳에 친구의 남동생 가족과 딸이 거주하기 때문이었다. 비행시간만 열 시간 이상 되는 먼 나라의 공항에 둘만 툭 떨어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실제로 살고 있는 그들에게서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오로라를 보러 캐나다에 가기로 정한 우리는 여행 경비를 함께 모으기 시작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원래는 1월에 미리 항공권을 구매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터졌고 유가가 폭등했고 항공권 가격도 상승했다. 한국에서 캐나다까지의 이동과, 오로라 투어를 위해 캐나다 내에서 이동하는 항공권까지 구입하려니 예산이 초과되었다. 친구의 남동생이 사는 토론토와 딸이 사는 오타와를 일정에 넣었는데, 오로라 투어가 가능한 옐로우나이프 일정까지 맞추려면 비용과 이동 시간 등을 생각하면 강행군이 될 거였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로 잠정적으로 정했던 시기는 9월 말에서 10월 초. 캐나다에는 가을이 한창이고 단풍이 아름다운 시기이다. 전에 몇 번, 친구의 남동생 가족이 보내주었다던 가을의 풍경이 근사했다. 의논 끝에 우리는 오로라를 포기하고 단풍을 선택했다. 좀 더 느슨한 일정이 될 예정이다.


우리가 갈 도시는 토론토와 오타와 그리고 퀘벡이다. 여행의 주제는 오로라가 아니라 단풍이 될 것이다. 친구와 나는 아쉽지만 오로라를 포기했다. 그리고 약속했다. 오로라를 보러 아이슬란드에 가자!


지난주에 항공권과 기차표 예매를 완료했다. 가는 날과 오는 날이 정해지자, 갑자기 마음이 결연해졌다. 내가 누구인가. 성질 급하기로는 자타공인 일등. 이메일로 항공권과 기차표를 받자마자 여행 준비 모드에 돌입했다.

먼저 카지노톡 프로필에 디데이를 설정하고, 차츰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긴장한다. 지금 미리 해둘 일과 천천히 해도 되는 일,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계획한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노트를 한 권 펼친다. 준비해야 할 아우터 문제를 제미나이와 함께 고민한다. 2주간 혼자 지낼 아들의 일용할 양식을 냉동실과 냉장실에 어떻게 배치해 둘 것인가도 고민한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식물의 물 주기를 어머니에게 부탁할지 아니면 올케에게 부탁할지 생각한다. 친구의 남동생 가족과 딸에게 할 선물은 어떤 것들이 좋을까 품목을 적어본다.


소식을 전하자, 웬만해서는 잘했다 소리는 하지 않는 어머니가 잘했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방으로 들어가서는 팟팟한 새 파우치에 여행용 화장품 여러 개를 챙겨 건네주었다. 어머니 눈에도 수십 년 동안 발목이 잡혀 집안에 갇혀 꼼짝도 하지 않던 딸보다는 먼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인 딸이 더 좋아 보였나 보다. 나도 그렇다. 9월 28일의 나는 토론토의 거리를 걷고 있을 것이다. 10월 1일의 나는 오타와로 가는 기차 안에 있을 것이고, 10월 5일의 나는 퀘벡의 단풍을 눈에 가득 담고 있겠지. 그날의 색과 그날의 온도와 그날의 냄새까지 온몸으로 받아들이겠지. 떠나기 전과 조금은 달라진 내가 되어 돌아오겠지.

(새 신 신고 새로운 길 걸으라고 나의 올케 경화가 선물해 준 운동화 *^^*)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