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낸 세월이 알맹이가 되었다
얼마전.
아침에 눈을 뜨고 온라인카지노 통계를 열었다.
아직 글 한 편 올리지 않았는데, 오전 9시도 되기 전에 조회수가 80에 가까웠다.
오늘은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는데.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잠든 사이에도 지난 글들은 누군가에게 가 닿고 있었다.
그때 고향 친구에게서 긴 답장이 왔다.
“답장이 늦었네. 게으른 내 삶만큼 늦은 것 같구나.”
친구는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면서도 시댁 식구들에게 살뜰히 시간을 내는 사람이다. 그런 친구가 자신을 게으르다 하니 웃음이 났다.
‘뭔 소리 하시는 거임. ㅎㅎ’
내가 보기에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친구야말로 삶을 단단히 꾸려가고 있었다.
친구는 내가 늘 바쁘게 산다고 했다. 내 열정과 부지런함이 반은 부럽고 반은 질투가 난다며 웃었다.
“항상 도전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내 친구.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친구.”
얼마 전 쓴 「뜨거운 태양 아래 나무 한 그루」 이야기도 꺼냈다.
“너무 긴 여운이 남네. 여러 번 보고 또 봐도 매번 다른 감동을 주더라.”
내 글을 여러 번 읽었다는 말에 마음이 머물렀다.
한 번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다시 찾아 읽었다니.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내 글 앞에 여러 번 머물렀다는 사실이 뭉클했다.
마지막 말은 더 오래 남았다.
“이제 너의 글에 알맹이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알맹이.
그 단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내 글에 알맹이가 생겼다면, 어디에서 온 걸까.
살아온 시간이 떠올랐다.
내게도 쉽게 건너온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살아왔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앞에서 속을 끓였고, 참고 견디며 하루하루를 건넜다.
그때는 그저 살아내느라 몰랐다.
지나온 세월이 어느 날 글 쓰는 힘이 되어 돌아올 줄은.
주름이 늘듯 마음속에도 이야기가 쌓인다. 기뻤던 날도, 서러웠던 날도, 견뎌야 했던 날도 지나고 나면 저마다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겉으로는 별일 없이 살아온 듯 보여도, 한 사람의 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내게 글쓰기는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바라보는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잖아. 살아낸 세월이 네가 말한 ‘알맹이 있는 글’을 쓸 힘을 내게 준 건지도 모르지. 쉽지 않은 결혼생활 잘 버텨낸 선물로. ㅎㅎ”
답장을 보내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아침에는 조회수 79를 보며 기분이 좋았다. 친구의 답장을 읽고 나니, 숫자보다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이제 너의 글에 알맹이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얼른 지나가버렸으면 했던 시간이 있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었던 날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어느 것 하나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기뻤던 날은 기쁨대로,
서러웠던 날은 서러움대로,
견뎌낸 날은 견딘 만큼
내 안에 남았다.
이제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글로 쓴다.
친구가 말한 알맹이는
잘 쓰려고 애써서 생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잘 살아내려고 애쓴 시간 속에서
조금씩 여물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는 그냥 먹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하나둘 여물어
이제 내 글의 알맹이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