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내 마음이 품고있는 것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발생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해 우리가 내리는 해석이다."
— 에픽테토스 (스토아 철학자) -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되어간다는 말이 있다. 고집은 세어지고, 세련되지 못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는 뜻이다. 삶을 진정으로 완성해 가려면 내면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가식이나 스스로를 속이는 부정직함이 아니다. 내 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차분히 인정하되, 그 감정이 내 삶의 키를 쥐지 못하도록 주도권을 지켜내는 일이다. 즉, 감정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결을 따라 항해하는 법이다.
살다 보면 분노나 좌절, 짜증을 유발하는 무수한 상황과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외부의 자극도 나에게 '반드시 그 감정을 느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화를 낼 수도 있지만, 한 템포 멈추어 서서 평정을 유지할 수도 있다. 타인의 말과 행동은 대개 나를 배려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욕망과 상태를 반영할 뿐이다. 그 타자의 일에 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혹은 '대응'할 것인가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탁월한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으로 수많은 이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신뢰할 수 없거나 '유연한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면 결코 요직에 앉히지 않았다. 카네기가 말한 유연함이란, "어떤 거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거나 분노하지 않고, 은연중에 적응해 내는 삶의 태도"였다.
우리에게는 들을 수 있는 귀와 말할 수 있는 입이 주어진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굳이 입을 열어 맞설 필요는 없다. 때로는 정적이 그 어떤 항변보다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삶의 지혜를 아는 이는 불필요한 언쟁을 즐기는 사람이나 불쾌한 상황을 마주할 때, 침묵이라는 가장 깊고 우아한 대응을 선택한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일화는 이러한 유연한 대응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탁월한 기획력으로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행사를 성공시켰던 그였지만, 여론의 비난과 오해 속에서 '밑천이 다 드러났다'는 자괴감을 느끼고 사표를 던지려 했다. 그때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불러 조용히 식사를 대접했고, 신발을 신고 황급히 떠나려는 그에게 그저 단 한 마디를 건넸다고 한다.
탁 비서관, 힘들면 인터넷 검색창에 '문재인'이라고 쳐봐.
길고 복잡한 변명 대신 건넨 그 짧은 한마디에는 쏟아지는 비난과 시련을 품어 안는 깊은 인내와 유연함이 담겨 있었다.
현실의 시련과 마주했을 때 유연한 자세로 상황을 능동적으로 바라보면, 두려움이나 자바카라, 분노에 빠져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다. 비로소 냉정한 시각을 회복하여 '이 시련이 나에게 가져다줄 삶의 숙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유연함은 내 마음이 품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 마침내 성취해 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시간이 모든 절망을 다듬어주는 가장 좋은 묘약임을 알게 하며,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 순간조차 내면의 그릇을 한 층 더 깊고 단단하게 키워내는 지혜이자 용기를 선물한다.
그럴 기분이 아닌 상황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행동을 하는 건 진정성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감정은 행동을 뒤따라올 때가 많다. 당장은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더라도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을 하면 놀랍게도 금세 그런 마음이 뒤따라온다. 감정은 곧 돌아올테니 기다리면서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