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배움은 가장 우아한 도피다

와인의 세계에 빠지다

by이상옥
와인03-1.jpg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해야 한다.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행해야 한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나이 들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철없는 무모함이 아니다. 그것은 세월의 무게에 눌려 잊고 지내던 호기심을 다시 깨우려는 의지이자,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명확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고요한 선언이다.


사실 가끔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동안 살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는데, 이제 와서 무언가를 또 배운다는 게 무의미한 사치는 아닐까?' 어쩌면 살아온 세월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을 텐데, 새로운 공부를 하기보다 그저 시간과 여유가 없어 미뤄두었던 일을 하며 한가롭게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무언가를 배우려 배움터의 문을 두드리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요즘 나는 와인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돌아보면 지난날 내 삶은 늘 치열함의 연속이었다. 낮과 밤이 불분명하고, 주말과 휴일조차 구분 없는 끝없는 경쟁이 온몸을 옥죄어올 때마다 나는 현실 도피를 꿈꿨다. 일상의 피로가 정서를 하얗게 얼려버릴 때, 내가 찾은 유일한 탈출구는 스스로 택한 '고독'이었다. 서재 구석에 콕 박혀 바카라 속에 몰입하거나, 게임과 음악감상이라는 나만의 동굴 속에서 얼어붙은 마음을 가만히 녹여내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나 혼자'만의 고립된 세계였다.


그러다 문득 변화를 갈망하게 되었다. 온라인 게임이나 업무라는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들과, 아무런 조건과 제약 없이 단지 그 분위기와 시간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졌다. 그렇게 내 삶의 지평에 들어온 것이 바로 와인이다.


와인01-2.jpg[초중급 테스팅반 97기 / 와인 아카데미 / 신사동 띠엘로]


처음엔 혼자서 그저 홀짝이던 와인이 어느 순간 깊이가 궁금해졌다. 함께 마시는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어 용기를 내어 '와인 클래스'의 문을 열었다. 매주 한 차례씩 총 네 번의 수업을 들으며 나는 와인의 아득한 세계로 입문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가장 큰 자산은,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기울이는 와인이 그 어떤 명주보다 깊은 맛과 풍미를 선사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 와인은 단순한 음용을 넘어,
취향을 찾아가며 와인이 매개하는 분위기와
대화 속에서 삶의 보람과 만족을 누리는 우아한 축제다.


여전히 품종의 미묘한 차이나 정교한 맛의 결을 단번에 알아채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그저 내 취향에 맞는 종류를 찾아내고, 와인의 이름 하나를 기억해 가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그릇은 충분히 풍요로워진다. 사실 나에게 '와인을 마신다'는 물리적 행위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와인을 신중하게 고르고, 각자 가져온 와인을 잔에 나누어 기울이며, 입안에 감도는 저마다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그 시간. 음식과의 조화(마리아주)를 음미하고, 그 자리를 채운 풍경과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 그 자체로 와인에 대한 나의 철학과 행복은 완성되어 간다. 나에게 와인을 배우는 과정은 바로 그 '삶의 보람과 만족'을 배우는 가장 우아한 축제다.


와인02-2.jpg[클래스 동기 1차 정기 모임 / 모나크 비스트로 / 서초구 잠원동]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개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드레스코드나, 어떤 사람들과 만나 어떤 와인을 마실까 하는 설렘일 것이다. 내게 인생의 후반전은 매일 아침 새로운 초대장이 날아오는 거대한 파티장과 같다. 그리고 이 파티의 이름은 바로 '배움'이다.


인생을 풀어야 할 '시험문제'로 보면 삶은 피곤한 '노동'이 되지만, 인생을 경험해야 할 '신비'로 보면 삶은 '축제'가 된다.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배움이 끝났다고 믿는 사람들은 평생 정답을 맞히는 '지식의 시험장'에 갇혀 산다. 그러나 진짜 배움은 정답이 없는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가장 우아한 파티다. 이 파티에는 합격과 불합격이 없다. 어떤 와인이 열릴지 모르는 미지의 병을 앞에 둔 것처럼, 오늘 내 그릇을 비우고 타인의 지혜와 세상의 오묘함을 채워 넣는 황홀한 프로세싱만 존재할 뿐이다. 배움이라는 드레스코드를 입는 순간, 삶은 이토록 근사한 연회가 된다. 배우는 자는 늙지 않는다. 매 순간 새로운 주파수로 주위를 조율하며 파티를 즐길 뿐이다.




와인은 단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통제와 효율만을 따지던 굳어버린 자아를 해체하고, 내면의 순수한 존재를 대면하게 만드는 철학적 매개체다. 니체가 말했듯, 계산하는 이성(아폴론)의 머리를 끄고 뜨거운 가슴(디오니소스)의 야성을 깨우는 힘이 와인 잔 안에 들어있다.와인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테루아(Terroir)'는 토양, 기후, 바람, 강수량 등 포도가 자란 자연환경 전체를 뜻한다. 햇볕이 눈부셨던 해에는 달콤한 와인이, 비바람이 몰아치고 척박했던 해에는 산미가 강하고 떫은 와인이 만들어진다. 정통 와이너리들은 기후가 나빴다고 해서 그해의 빈티지(생산 연도)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거친 풍랑을 견뎌낸 포도만의 씁쓸하고 깊은 맛을 '그해의 진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삶의 시련을 온전히 끌어안으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때,
흘러가는 시간은 와인처럼 숙성되어
내 삶의 빈티지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이는 법상 스님의 "잘못되는 일은 없다, 괴롭다는 해석이 있을 뿐"이라는 사유와 깊게 닿아 있다. 돌아보면 내 삶에 찾아왔던 시련과 씁쓸했던 순간들(나쁜 빈티지)조차, 지금 내 인생의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낸 필연의 테루아였다. 그것을 그대로 껴안는 것이 바로 아모르파티(운명애)다. 그저 덧없이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크로노스) 속에서 모든 생명은 낡고 소멸한다. 하지만 와인은 그 흘러가는 시간을 자신 속에 품어 안아 '숙성'이라는 질적 시간(카이로스)으로 바꾸어 놓는다. 코르크를 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만 온전한 향을 선사하는 와인의 본질은, 오쇼가 그토록 강조했던 "모든 순간 인생은 지금이다"라는 실존적 진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내 인생에서 내일의 잔에 또 어떤 향과 맛을 지닌 와인이 채워질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배움이라는 우아한 파티장에서 잔을 들고 서 있는 한, 내 삶의 빈티지는 매 순간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peterman07-1.jpg





이전 21화[태도] 진리는 단순하고, 삶은 이토록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