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아이가 아니었다

잠은 게으름이 아니라 생존전략이었다

by그레이스 그레이트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가 따로 있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오래도록 그 질문 앞에 멈춰 있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분은 아니었다. 말수가 적었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어머니는 생활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디는 사람이었다. 두 분의 다툼은 어린 내게 전쟁처럼 느껴졌다.


집 안의 공기는 자주 불안했다.


나는 그 불안 속에서 너무 일찍 눈치를 배웠다. 사람의 표정을 읽는 법을 배웠고, 분위기를 살피는 법을 배웠고, 위험을 예측하는 법을 배웠다.


내 생애 첫 기억은 방 안에 홀로 남겨져 크게 울고 있던 장면이다. 또 하나의 기억은 밤늦도록 베란다에 서 있던 장면이다. 정확히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어린 마음이 만든 그림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기억들이 내 안에 오래 남아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자주 두려웠고 자주 부끄러웠다. 이유를 모른 채 벌을 받는 일은 어린 마음에 깊은 수치심을 남겼다. 그 상처는 오래도록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얼마 전 동생에게 물었다.


“너는 어릴 때 나를 어떻게 기억해?”


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공부도 못하고 늘 잠만 자는 언니.”


순간 웃음이 났다. 그리고 조금 억울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는 정말 많이 잤다. 학교를 다녀와서도 잤고, 주말에도 잤고, 방에 들어가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게으름이라고 생각했다. 의지가 약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게으른 아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무서운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언제 분위기가 바뀔지 몰랐고, 언제 누군가 화를 낼지 몰랐고, 언제 또 다툼이 시작될지 몰랐다.


어린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살았다.


그러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잠은 게으름이 아니라 피난처였는지도 모른다.


이불 속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그 안에서는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았고, 아무도 다투지 않았다.


최근의 나도 비슷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다.


병원에 다니고, 좋지 않은 음식은 피하고, 몸에 좋다는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아픈 줄도 모르고 더 버텼을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열심히 사는 것이 답이라고 믿었다.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먼저 멈추었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는 그만.”


어린 시절에는 잠으로 숨었다.


지금의 나는 아픔으로 멈추었다.


둘 다 나를 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둘 다 나를 살리기 위한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부모님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각자의 결핍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낸 연약한 사람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부모를 원망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 원망이 가장 깊이 상처 입히고 있는 사람은 부모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용서는 부모님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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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오늘도 나를 연구합니다.고치려 하기보다 이해하기.비난하기보다 관찰하기.판단하기보다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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