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과 금요일, 강의를 위해 대구로 간다. 영어 트랙과 한국어 트랙에서 만나는 유학생들의 눈망울은 참 초롱초롱하다. 처음에는 공부보다는 한국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 아닐지 생각했다. 그런 내 선입견은 첫날부터 산산이 깨졌다. A4 용지 한 장을 빼곡하게 채운 영문 자기소개서를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이거 나보다 영어 작문을 더 잘하잖아?”
낯선 땅에 온 젊음이 저마다의 열정을 품고 강의실로 들어온다. 그들의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잠시 젊어진 듯하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몸짓도 커진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욕심에 준비한 것보다 많은 말을 쏟아낸다. 이럴 때는 젊음을 되찾으려고 악마와 거래한 파우스트가 되지 않아도 좋다. 이들 앞에 서 있는 동안만큼은 시간이 슬며시 거꾸로 흐른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붉은 벽돌 건물 위로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다. 처마 위에는 미처 떠나지 못한 흰 구름 몇 조각이 햇빛에 부서진다. 하늘은 물기를 모두 털어내고 투명하고 단정한 얼굴이다. 그저 말없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가만히 보니 파란색도 모두 같은 파랑은 아니었다. 켜켜이 서로 다른 파랑이 층을 이루고 있었다. 연한 파랑에서 짙은 파랑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빛깔이 가을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멀어질수록 하늘은 더 깊어졌다.
“이런 날에는 마음이 좀 다르지 않나요? 약간 고독하고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 말이죠.”
내 말을 들은 동료들이 멀뚱히 나를 쳐다본다. 날씨가 좋다는 생각 말고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했다. 가을이 왔다고 해서 외롭거나 쓸쓸할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아도 마음은 서로 달랐다. 누구에게는 그저 맑은 하늘이고, 누구에게는 까닭 모를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하늘인가 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맘때면 유난히 가을 앓이를 하곤 했다. 거리의 가로수 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떠올렸다.
오후 강의를 모두 마쳤다. 눈부셨던 하늘도 빛을 누그러뜨렸다. 하늘 끝에는 저녁의 엷은 회색이 번지고, 바람은 한층 서늘해졌다. 이틀의 강의를 모두 마쳤다는 홀가분함과 까닭 모를 허전함이 함께 밀려왔다. 학생들이 떠난 빈 강의실에 홀로 앉았다. 문득 낯선 고독이 찾아왔다.
대학 정문을 나서자,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차가워진 바람 끝에 전에는 없던 냉기가 묻어 있었다. 문득 낮에 들은 아픈 소식이 마음을 짓눌렀다. 애써 강의에 묻어두었던 일이 다시 마음 한쪽에 무게로 내려앉았다. 노모의 문제는 누구에게도 온전히 나눌 수 없는, 결국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었다.
외로움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 모른다. 마음을 터놓고 말하고 싶지만, 그 무게까지 건넬 수는 없다. 오늘 하늘이 참 맑았다고, 바람이 서늘해졌다고, 그래서 마음이 조금 처연해졌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랬군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었다. 오래 묵은 감정은 가슴 밑바닥에서 발효되어 언젠가 문장이 된다. 사람에게 차마 건네지 못한 말은 그렇게 글이 된다.
금요일 저녁. 내가 대구에서 강의하는 것을 핑계로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이 만들어졌다.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오랜 세월 함께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순배 막걸리가 오갔다. 불콰한 얼굴만큼 열정이 들끓었다. 뿌리치기 어려운 금요일 밤의 유혹을 뒤로하고 동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모처럼 새벽이슬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컴퓨터를 켰다. 아직 남아 있는 취기를 빌려 이틀을 이렇게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