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갈아타는 기차

byHenry


9월 하순. 여름의 마지막 기운을 짜내듯 햇살은 여전히 뜨겁다. 이마에는 삐질삐질 땀이 솟고, 공기 중에 남은 습기는 마음까지 물먹은 솜처럼 눅눅하게 한다. 다행인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던 매미들의 떼창이 잦아들었다는 것이다. 대신 멀리서 귀뚜라미 소리가 낮게 들려온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활력소 삼아 목청을 높이던 매미들은 기운 꺾인 햇살을 따라 힘을 잃어가고, 종내에는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맑은 햇살 덩이를 곱게 빻아놓은 듯 빛의 가루가 쏟아진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산과 들, 도시의 건물 위로 촘촘히 내려앉으니, 세상은 한층 더 투명해졌다. 여름 끝자락의 태양인들 얼마나 오래 버틸까. 한낮 두어 시간 기세를 부리다가도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금세 힘을 놓는다. 그 틈을 기다렸다는 듯 서늘한 기운이 슬며시 밀려온다.


매주 목요일 오전 7시 11분, 동탄역을 출발한 열차는 거침없이 남녘으로 길머리를 잡는다. 숨이 차면 헉헉거리며 검은 연기를 토해내던 옛 증기기관차와 달리, 지금의 열차는 달리는 소리조차 삼킨 채 철길 위를 미끄러진다.


창밖의 초록은 조금씩 빛을 잃고, 그 속에 숨죽이고 있던 노란색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한여름에는 짙은 초록이 겹겹이 포개져 검게까지 보이던 숲도 이제 한 겹씩 제 속살을 드러낸다. 강을 건널 때면 아침 햇살을 받은 물결이 은빛 비늘처럼 반짝인다. 조용히 미끄러지던 열차도 교량에 올라서면 잠시 덜컹거린다. 그 소리에 놀란 물새 몇 마리가 물가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오른다.


창밖에서는 부지런히 계절을 갈아타는 소리가 들린다. 벼들이 제법 실한 이삭을 맺기 시작하자 들판도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든다.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농가의 텃밭에는 가을배추가 자라고, 하얀 속살을 살짝 내비친 무가 탐스럽다. 산기슭의 감나무에는 주황빛이 짙어가고, 벌어진 밤송이는 가시 사이로 실한 밤알을 내보인다.

천안아산을 지난 열차는 대전까지 속도를 한껏 끌어올려 달린다. 창밖 풍경에서 눈을 돌려 객실 안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출장길인 듯한 샐러리맨 몇몇은 무릎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작업에 몰두한다. 눈을 감고 잠든 몇 사람을 빼면 대부분 작은 화면 하나에 시선을 붙들어 매고 있다. 누군가는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누군가는 가끔 화면을 두드린다. 이어폰을 꽂은 사람은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창밖에는 여름과 가을이 자리를 바꾸느라 부산한데, 사람들은 그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제 열차 안에서 바카라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독서 습관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달리는 열차에서 활자를 읽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좌석 위 전등을 켜고 바카라을 펼쳐 몇 장 읽을 만하면 열차는 어느새 깜깜한 터널로 들어선다. 잠시 뒤 환해지는가 싶다가 다시 어둠으로 들어가고, 때로는 제법 긴 시간 터널 안을 달린다. 전등을 켜놓아도 밝기가 자꾸 달라지니 눈이 피로하고, 오래 읽다 보면 머리까지 어지럽다.


목요일과 금요일이면 경산의 대학에서 강의가 있다. 아침에 동탄역에서 열차를 타면 9시 못 미쳐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바카라을 읽을 요량으로 꼭 한 권씩 챙겨가지만, 펼쳐서 한두 장을 넘기다 보면 금세 잠이 든다. 그러다 보니 천안아산을 지날 때까지 어찌어찌 가을이 오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동대구역이 가까워질 무렵 눈을 떠 아직 늦여름을 쳐다본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글을 읽는 일은 스스로 피로를 불러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열차 안에서 읽는 분량이 부쩍 늘었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시동이 걸린 열차 안 글 읽기가 이문구의 《관촌수필》에 이르러 제법 자리를 잡았다. 두 작품 모두 작가의 고향과 유년 시절을 되살린 자전적 성장 서사다. 박완서의 문장은 부드럽고 섬세하며, 이문구의 문장은 질펀한 충청도 사투리로 끊어질 듯하다가 길게 이어진다. 싱아는 박완서가 어린 시절 고향 들길에서 꺾어 먹던 풀이다. 요즘은 보기 어려운 그 풀 이름이 바카라 제목이 되었다. 이문구는 관촌 사람들의 말을 표준어로 다듬지 않고 그대로 부려 쓴다. 이제는 터널에 들어가 바카라장이 어두워져도 읽던 줄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천안아산을 지나도, 대전을 지나도 눈을 감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동대구역에 도착하면 다시 경산으로 가는 대경선으로 갈아탄다. 짧은 환승 시간에도 바카라을 펼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두 작가의 빼어난 글솜씨가 나를 붙들어 바카라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만든다.


구미와 경산을 오가는 대경선 열차는 참 편안하다. 도심을 통과한 열차는 아파트 군락과 조금씩 거리를 벌리며 들판 사이를 달린다. 대도시에서 뜻밖에 만나는 시골 풍경이다. 전국에서도 학군 좋기로 이름난 수성구의 끝자락에 이처럼 넓은 들판이 남아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다. 그 들길을 따라 느린 열차로 달리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경산역에서 내리면 대개 곧장 대학으로 향한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버스를 타고, 그렇지 않으면 택시를 탄다. 거리가 멀지 않아 어느 쪽을 선택해도 부담이 없다.


택시는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하천의 둑길을 달린다. 넓게 정비된 물길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다. 양쪽 둑길에는 벚나무가 줄지어 있다. 지난봄 흐드러진 꽃으로 터널을 이루었던 나무에도 이제 조금씩 가을빛이 번진다. 붐비지 않는 천변을 따라 달리는 아침길은 느긋하다. 짧은 여유를 누리다 보면 어느새 대학에 도착한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금요일 오후 강의를 마치면, 동료의 도움을 받아 다시 경산역으로 돌아온다. 목요일 아침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역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여유가 없지만, 한 주의 강의를 모두 끝낸 금요일 오후에는 잠시 쉬어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역 주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적산가옥이 눈에 띄고, 오래된 주택도 더러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관사 터를 정비해 만든 역전마을 커뮤니티센터에는 골목의 역사를 기록한 전시 공간도 있다. 옛 건물과 새 건물이 한 공간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시간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이 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경산역은 시골 간이역이라 하기에는 제법 규모가 크다. 대경선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이고 누리로와 ITX 열차도 자주 정차한다. 경산에는 여러 대학이 모여 있어 평일이면 통학하는 학생들의 발길도 잦다. 그렇다고 대도시의 역처럼 번잡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역 앞 광장보다 한적한 뒤편 마을 쪽을 자주 찾는다.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고, 철로 경계 울타리 아래에는 이름 모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시간이 남으면 역 뒤편의 작은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테이블은 다섯 개뿐이고, 회색빛 노출 콘크리트 벽에는 그림 몇 점이 걸려 있다. 장식이 많지 않은 단정한 내부가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바카라을 읽거나 그저 멍하니 앉아 있어도 눈치 보일 일이 없다. 카페 사장님에게는 반갑지 않은 말이겠지만, 이방인이 조용히 쉬어가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커피를 마시며 다시 바카라을 펼친다. 바카라 속에서 나는 개성(開城)에서 남서쪽으로 이십 리가량 떨어진 박완서의 고향 박적골과, 대천해수욕장으로 이름난 보령에 자리한 이문구의 고향 관촌(冠村)을 오간다. 그러다 보면 낯선 경산의 오후도 아득한 고향처럼 느껴진다. 바카라장을 넘기는 사이 동대구로 돌아갈 대경선 열차가 들어올 시간이 다가온다. 바카라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경산역 플랫폼으로 향한다. 역 앞 아파트 창마다 불빛이 하나둘 들어온다. 사람들이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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