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에서 목격자보다 강한 증거는 무엇인가

by별빛바람

학폭위에서 목격자보다 강한 증거는 무엇인가

"본 연재물은 저자의 실제 경험과 법적 대응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에세이 및 실전 매뉴얼입니다. 다만, 관련자들의 개인정보 보호와 원활한 내용 전달을 위해 등장인물의 가명 처리, 직업 및 직바카라, 사건 발생 일시와 일부 정황 등은 특정할 수 없도록 각색되었음을 알립니다. 아울러 본 글은 특정 개인을 비방할 목적이 없으며, 학교폭력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공익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내 아이의 결백에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신들의 변호사 비용을 몇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11살 아이의 무고함을 '분담금'의 가치로 환산하고 있었을 뿐이다."


조사관 면담과 시스템의 불투명함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어느 날 저녁 늦은 시간,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가해 관련 학생으로 지목된 남자아이 중 한 명인 민재(가명)의 아버님이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잠시 얼굴 좀 뵙고 할 이야기가 있다"며 학교 근처의 A 카페(가명)로 저를 불러냈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카페 구석진 자리, 민재 아버지는 이미 도착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민재(가명) 아빠는 본론을 꺼냈습니다.


"스텔라 아버님, 솔직히 여쭤보겠습니다. 스텔라는 이번에 정확히 어떤 가해를 한 건가요? 어차피 가해 관련자로 묶여 있는 상황이면 저희랑 같이 변호사 대응을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수임료 부담도 덜 수 있고요."


지난번 교무실에서 제안했던 '0만 원 입금'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변호사를 선임하더라도 제가 별도로 선임할 예정입니다. CCTV를 확인해 보니, 스텔라는 그 사건 현장에 아예 없었거든요."


그 순간, 민재(가명) 아빠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장에 없었다니요?"


그는 스텔라가 사건 당시 '제3의 장소(팔각정)'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알 필요조차 없었겠지요. 그들에게 스텔라는 지켜줘야 할 아이가 아니라, 자신들의 변호사 비용을 낮추기 위해 머릿수만 채워주면 되는 'n분의 1의 분담금' 혹은 자신들의 추과 수익금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진실을 확인하기보다 제 딸 아이의 이름을 가해자 명단에 올려두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그 지독한 계산기 소리에 저는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당황한 기색을 추스른 민재(가명) 아빠는 한숨을 내쉬며 이 사건에 얽힌 남자아이들의 배경을 털어놓았습니다. 놀랍게도 민재(가명), 호민(가명), 준영(가명) 세 아이와 찬우(가명)는 1학년 때부터 줄곧 같은 반이었던 사이였습니다.


"사실... 찬우(가명)는 예전부터 우리 애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왔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도 그렇고, 호민(가명)이나 준영(가명)이네도 다들 슬롯적 위치가 있지 않습니까. 애들도 아주 어릴 때부터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A 영어 교육원(가명)을 다니며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고요. 우리 애들은 엘리트가 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했던 애들이다 보니, 웬만한 괴롭힘은 그냥 참고 넘기는 게 이기는 거라고 가르쳤습니다."


슬롯적 위치와 체면 때문에 가해자의 횡포를 수년간 견디며 키워온 아이들. 그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한 날이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애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찬우(가명)가 은혜(가명)한테 돌을 던지고 도망가는 걸 봤답니다. 평소처럼 자기네들끼리 잡기 놀이를 하는 줄 알고 애들이 합세한 거죠. 민재(가명)는 그냥 멀리서 쳐다보기만 했고, 호민(가명)이는 팔을 잠깐 잡았다가 놨고, 준영(가명)이는 잡으려고 옷을 좀 잡아당긴 게 전부입니다. 그게 A씨(가명)가 주장하는 '집단 폭행'의 실체예요."


아이들의 행동이 과장되었다는 억울함을 토로하면서도, 민재(가명) 아빠의 결론은 뜻밖이었습니다.


"저희는 이미 가해자로 이름이 올라가 있고, 어떤 식으로든 신체 접촉이 있었던 건 사실이니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전략은 최대한 A씨(가명)를 자극하지 않는 겁니다. 그 여자가 보통 독한 게 아니잖아요. 경찰에 로펌까지 동원했는데, 괜히 결백을 주장하며 맞서다가 아이들 생기부에 큰 줄이라도 그어지면 어떡합니까. 우리 애들은 특목 중학교에 특목 고등학교까지 가야 할 애들입니다."


그들의 전략은 '굴복'과 '타협'이었습니다. 진실을 밝혀 아이의 명예를 지키기보다, 권력 앞에 납작 엎드려 적당한 선에서 매를 맞고 끝낸 뒤, 시간이 지나 잊혀지길 바라는 비겁한 보신주의일 뿐이었습니다.


민재(가명) 아빠는 저를 향해 다시 한번 권유했습니다.

스텔라도 적당히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함께 용서를 빌어 사안을 조용히 덮자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길이 '비겁한 생존'이라면, 제가 선택한 길은 '당당한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재(가명) 아버님, 아버님 아이들은 접촉이라도 있었지만 제 딸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오직 증거와 물증으로만 싸우겠습니다."


카페를 나오는 길,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를 찔렀습니다. 목격자라는 아이들의 입을 맞추고, 돈으로 방어벽을 세우려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오직 카메라 센서에 기록된 CCTV 영상만이 유일한 진실의 빛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몰랐습니다.


그들이 말한 '자극하지 않는 전략'이 결국 어떻게 우리 스텔라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될지. 그리고 그들이 쳐놓은 거대한 그물망 속에, 이미 학교와 조사관마저 걸려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민재(가명) 아빠가 제안한 '비겁한 타협'을 단칼에 거절하자,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커피잔을 매만지며 그동안 감춰두었던 이 사건의 진짜 내막, 아니 '어른들의 정치판'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스텔라 아버님, 아버님은 아직 이 학교 분위기를 잘 모르셔서 그러는 모양인데... A씨(가명), 그 여자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름을 들으면 알안한 기업체를 운영하는 A씨(가명)는 학교에 지속적으로 상당한 액수의 발전기금을 내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소위 학교 측에서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VIP 학부모였던 것이죠.


"그럼 대체 왜 우리 아이까지 끌어들여서 이 사달을 만든 겁니까?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이면 남의 집 애는 이렇게 짓밟아도 된답니까?"


저의 쏘아붙임에 민재 아빠는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췄습니다.


"A씨(가명)의 진짜 타깃은 스텔라가 아닙니다. 그 여자의 진짜 목표는 '은혜(가명)'와 '은혜(가명) 엄마'예요."


그제야 퍼즐의 가장 핵심적인 조각이 맞춰졌습니다.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아이, 찬우(가명)가 장난삼아 돌을 던져 맞췄고, 화가 나서 찬우(가명)를 쫓아갔던 바로 그 여자아이. 은혜(가명)의 어머니는 다름 아닌 현재 이 학교의 학부모회 임원이었습니다.


"A씨(가명)와 학부모 임원인 은혜(가명) 엄마 사이에 예전부터 알게 모르게 파워 게임이 좀 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자기 아들(찬우)이 은혜(가명)한테 맞았다고 학교에서 돌아오니, A씨(가명)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던 학부모 임원의 목줄을 쥘 완벽한 기회가 온 겁니다. A씨(가명)은 본인이 학교 운영위원 자리를 차지해서 학교의 모든 행정을 흔들고 싶었던 거 같았습니다."


민재(가명) 아빠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민재(가명) 아빠가 작년까지 학부모회 임원이었으니 그가 이야기 하는 것은 마치 사실인것 처럼 들렸습니다. 마치 A씨(가명)는 이참에 학폭위를 크게 열어 은혜(가명) 엄마를 학부모회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리려는 거대한 복수극을 기획한 것 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은혜(가명) 혼자서 찬우(가명)를 때렸다고 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A씨(가명)는 아들인 찬우(가명)를 다그치고 달래어, 그 자리에 있었던 민재(가명), 호민(가명), 준영(가명)이는 물론이고, 전혀 상관없는 스텔라까지 모조리 엮어 '십 수명의 잔혹한 집단 폭행'이라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대형 로펌을 움직이고 경찰을 동원할 만한 '큰 사건'이 되니까요. 여기까지가 민재(가명) 아빠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납작 엎드리기로 한 겁니다. A씨(가명)의 칼끝은 어차피 은혜(가명) 엄마를 향해 있으니, 우리가 괜히 튀어나와서 A씨(가명)를 자극해 봤자 좋을 게 없어요. 우리 애들 가해 사실 적당히 인정하고, A씨(가명) 비위 맞춰주면서 조치 결과가 제일 약하게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가장 현명한 길입니다."


민재(가명) 아빠는 그것이 마치 대단한 생존 전략이라도 되는 양, 자조 섞인 목소리로 정당화했습니다. 슬롯적 지위와 체면을 중시한다는 엘리트 자녀를 만들기위한 부모들의 진짜 민낯은, 결국 돈과 권력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계산적인 속물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이 더러운 정치질에 영문도 모른 채 휩쓸려 들어온 11살 스텔라의 억울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자신들의 아이들도 가해자로 처벌받을 테니, 억울하든 말든 스텔라 역시 가해자로 얌전히 남아주어 자신들의 '변호사비 n분의 1'을 덜어주며 자신들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수고까지 들였으니 수고비까지 바랐을 뿐입니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민재(가명) 아버님과 저는 가야 할 길이 완전히 다른 것 같군요."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가해를 한 아이들의 부모는 권력자에게 무릎을 꿇고 선처를 구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인 제 딸은 무릎 꿇을 이유도, 타협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스텔라는 그 시간에 벚꽃 정자(팔각정)에 있었다는 명백한 사실. 저들의 추악한 정치질과 거짓말의 사슬을 끊어낼 유일한 무기는 오직 그 '물증'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저런 비겁한 어른들과 말을 섞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당장 다음날로 예정된 '학폭 전담 조사관과의 면담'에서 CCTV라는 가장 강력한 창을 휘둘러 이 미친 연극을 끝내야만 했습니다.


카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저는 민재(가명) 아빠가 늘어놓았던 긴 이야기를 차분히 복기해 보았습니다.


과연 그의 말이 100% 진실일까요? "우리 아이들은 그저 쳐다만 봤다, 옷깃만 살짝 잡았다"는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너무 많았습니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아이들의 가담 정도가 그토록 미미했다면, 굳이 그 비싼 수임료를 들여 대형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고 A씨(가명)에게 납작 엎드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자, 문득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하나의 끔찍한 가설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CCTV 영상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 아닐까?'


작년까지 학부모회 임원을 지냈던 민재(가명) 아빠를 비롯해, 나름 슬롯 지도층이라는 그 남자아이들의 부모들은 학교 내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그날 운동장의 진실이 담긴 CCTV가 온전히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스텔라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결백이 증명됨과 동시에, 당시 현장에 있었던 그들의 자녀들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역시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교무실에서 내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스텔라의 동선만 뚫어지게 확인했을 뿐, 다른 아이들의 행동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비싼 수임료를 내면서까지 납작 엎드리고 CCTV 공개를 꺼리는 듯한 태도를 본 순간,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옷깃만 살짝 잡았다"는 그들의 변명조차, 영상 앞에서는 산산조각 날 거짓말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 말입니다.

그제야 며칠 전 학폭 전담 조사관과의 면담에서 겪었던 기막힌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학교에 CCTV가 있었습니까?"라며 금시초문이라는 듯 되묻던 조사관. 그리고 "학교 자체 판단으로 넘기지 않았다"던 교감 선생님의 핑계. 경찰조차 압수해 간 그 결정적인 객관적 물증이 정작 학폭 조사관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던 기괴한 행정 누락의 이면에는, CCTV가 절대 수면 위로 올라와서는 안 되는 누군가의 강력한 '압력'이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CCTV를 비공개로 하기 위한 전략을 그들이 취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A씨(가명)가 CCTV 비공개 요청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민재(가명)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제가 얻어낸 확실한 수확도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 아이들을 방어하기 위해 늘어놓은 변명 속에, 우리 스텔라를 지켜낼 결정적인 진실 두 가지가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건의 '정확한 위치'를 그들 스스로 교차 검증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은혜(가명)를 따라 찬우(가명)를 쫓아간 곳이 운동장 한복판이라고 실토했습니다. 이는 스텔라가 춤을 추고 있던 '팔각정'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장소입니다. 가해 관련자로 지목된 그들 스스로가 스텔라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준 셈입니다.


둘째, 그들이 왜 그토록 스텔라를 자기들 무리로 끌어들이려 했는지, 그 '추악한 목적'을 확인했습니다.

사건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가장 무고한 스텔라. 그들은 왜 스텔라를 자신들의 공동 대응 방어막 안에 어떻게든 밀어 넣으려 했을까요? 단순히 변호사 비용을 n분의 1로 나누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가해의 희석(물타기)'이었습니다. 명백히 폭력에 가담한 자신들의 아이들 틈에, 누가 봐도 아무 죄가 없는 순수한 아이(스텔라)를 억지로 섞어 놓으면 사건의 본질이 흐려집니다. '일진 무리의 집단 폭행'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까지 우르르 휩쓸린 단순한 오해나 장난'으로 사건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무고한 아이의 피를 희석제 삼아 자신들의 죄를 씻어내려 했던 것입니다.


누군가는 권력자를 향한 복수심 때문에, 또 누군가는 내 자식의 죄를 덮기 위한 인간 방패로. 어른들의 그 지독하고 이기적인 욕망 한가운데에 아무것도 모르는 11살 스텔라가 던져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입을 맞추고, 학교에 압력을 넣어 서류를 누락시키고, 진실을 희석하려 해도, "스텔라는 그 자리에 없었다"는 절대 변하지 않는 '물증'이 우리 손에 있었으니까요.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이 필사적으로 덮으려 하는 그 CCTV 영상을 기어이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조작된 모래성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뿐이라 여겨졌습니다.


전담 조사관이 CCTV의 존재조차 모른 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가해 관련 남학생 부모와의 이야기를 나눈 직후, 다시 학교에 전화를 걸어 CCTV를 요청했습니다.


"학교 자체 판단으로 조사관에게 영상을 넘기지 않으셨다고 하니, 그럼 그 CCTV 영상을 허가해 주십시오. 개인의 정보가 담겨 문제라면 우리 아이의 모습만 나오게 편집을 하든, 아니면 제가 직접 들고 가서 조사관에게만 확인시키겠습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대답은, 대한민국 모든 기관이 바카라임을 회피할 때 꺼내 드는 전가의 보도, 바로 '개인정보 보호법'이었습니다.


"아버님, 그건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절대 반출이 불가합니다. 다른 아이들의 동의 없이 영상을 내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스텔라가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조사 과정에서 분명 결백이 증명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백이 증명될 거라고?

유일한 물증을 자신들의 캐비닛에 가둬두고서 대체 어떻게 결백이 증명된단 말입니까. 저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마지막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좋습니다. 영상 반출이 법적으로 정 안 된다고 치죠. 그럼 어제 영상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신 담임 선생님께서 스텔라가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있었다고 조사관님께 구두로라도 한마디만 전해주십시오. 직접 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건 법에 어긋나지 않지 않습니까."


최소한의 상식적인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학교 측의 답변은 제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담임 교사가 특정 학생의 편을 들어 조사에 개입하게 되면 '공정성'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공정성(公正性).

살면서 그 단어가 이토록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들린 적은 없었습니다. 결백한 11살 아이가 어른들의 정치질에 휘말려 가해자로 낙인찍힐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 진실을 빤히 알고 있는 어른(교사)이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는 것이 과연 학교가 말하는 공정성입니까?

그들이 말하는 '공정성'과 '중립'은 결국, 어느 학부모에게도 항의받지 않고 절차적 하자를 남기지 않겠다는 '지독한 바카라임 회피'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습니다. 학교는 더 이상 아이들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매뉴얼 뒤에 숨어 안전하게 월급을 받는 거대한 행정 기계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경찰은 CCTV 원본을 가져갔고, 학교는 입을 다물었으며, 상대는 대형 로펌을 앞세워 십 수명의 조작된 시나리오를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직접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CCTV라는 기계적 물증이 저들의 법과 규정에 묶여 있다면, CCTV를 대체할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 날 점심시간, 모두가 미쳐 돌아가던 그 운동장 중앙에서 멀찍이 떨어진 벚꽃 정자(팔각정)에서 다리를 절뚝이던 스텔라와 함께 르세라핌 춤을 추고 있었던 단 한 사람. 오직 스텔라의 동선만을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스텔라의 단짝 친구, '세아(가명)'였습니다.


학교의 기계적 중립이 내 아이를 버렸다면, 이제 제가 나서서 살아있는 목격자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야 할 차례였습니다. 제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세아(가명)를 만나 그날의 진실을 문서로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학교의 기계적 중립이 내 아이를 버렸다면, 이제 제가 나서서 살아있는 목격자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야 할 차례였습니다. 저는 당장 세아 부모님께 연락을 취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 또한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상 가해 관련자로 조사를 받는 스텔라의 상황은 '민감 정보'에 해당하여, 다른 학부모와 학생에게 사건의 구체적인 내막을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습니다.


"세아(가명) 어머님, 스텔라가 좀 억울한 일에 휘말렸는데... 그날 점심시간에 세아(가명)랑 춤 연습을 했다는 사실 확인서 한 장만 적어주실 수 있을까요?"


세아(가명) 어머니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하셨지만, 진짜 문제는 당사자인 11살 세아(가명)의 '기억'이었습니다. 어른들에게야 아이의 인생이 걸린 끔찍한 사건의 날이었지만, 11살 세아(가명)에게 그 날 점심시간은 그저 밥 먹고 친구랑 아이돌 춤을 따라 추던 평범하고 지루한 수많은 날 중 하루였을 뿐입니다. 수 일이 훌쩍 넘어버린 시점에서, 아이가 그날 몇 시 몇 분에 정확히 누구를 만났고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시계처럼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게다가 세아(가명)의 머릿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점심시간의 평화로운 춤 연습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 바닐라 공원 놀이터에서 갑자기 나타난 무서운 아줌마(A씨)가 자신의 단짝 스텔라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윽박지르던, 그 충격적인 '아동학대'의 순간이 아이의 뇌리를 온통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스텔라랑 춤 연습한 건 맞는데... 시간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찬우(가명) 엄마가 스텔라한테 소리 지른 게 너무 무서웠어요."


이것이 세아(가명)가 해줄 수 있는 증언의 전부였습니다. 세아(가명)의 진술서는 분명 스텔라가 사건 현장에 없었다는 소중한 정황 증거였지만, 교묘하게 짜인 A씨의 '십 수명의 집단 폭행' 프레임을 완전히 부숴버리기에는 시간의 퍼즐 조각이 조금 헐거웠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경찰과 대형 로펌을 대동하고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는 A씨(가명)를 상대하려면, 우리 역시 이 사건의 전체 판을 꿰뚫어 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세아(가명)의 반쪽짜리 기억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생각 끝에 저는 무거운 결심을 내렸습니다. 이 미친 연극이 시작된 진짜 이유, 민재(가명) 아빠가 귀띔해주었던 A씨(가명)의 진짜 타깃. 바로 '은혜(가명) 어머니'를 직접 만나야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어려운 발걸음이었습니다. 은혜(가명) 역시 A씨(가명)의 아들 찬우(가명)가 던진 돌에 맞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찬우(가명)를 쫓아간 탓에 가해 관련자로 얽혀있는 복잡한 처지였습니다. 누구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 속에 있을 은혜(가명) 어머니에게 연락해 만남을 청하는 것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날 찬우(가명)가 돌을 던졌던 시발점, 폭풍의 눈 한가운데 있었던 은혜(가명)의 이야기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정중한 부탁 끝에, 마침내 저는 은혜(가명) 어머니와 마주 앉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 힘드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스텔라는 그날 춤 연습을 하느라 사건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가해자로 묶여버렸습니다. 대체 그날 운동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은혜(가명)의 입장에서 본 진실을 꼭 듣고 싶습니다."


수척해진 얼굴의 은혜(가명) 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며 아이에게 들은 그날의 상황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은혜(가명) 어머니 입을 통해 전해진 그날 운동장의 진짜 이야기는, 제 상식을 또 한 번 산산조각 내는 '황당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려운 발걸음 끝에 마주 앉은 은혜(가명) 어머니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모든 사달의 원흉인 '찬우(가명)'라는 아이의 기이한 성향부터 짚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11살, 아직 어리다면 한없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찬우(가명)는 매우 파괴적인 성향과 비정상적인 지배욕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찬우(가명)의 패턴은 항상 같았습니다. 자신이 보고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가 생기면 어떻게든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강한 집착을 보였습니다. 다가가서 사귀자고 고백을 하고, 만약 여자아이가 이를 거절하면 그때부터 그 아이를 향한 '끊임없는 폭력과 괴롭힘'이 시작되는 것이 찬우의 일상이었습니다.


"스텔라 아버님, 찬우(가명)가 여자애들 때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은혜(가명)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 찬우(가명)는 자신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2학년 여자아이의 복부를 주먹으로 강타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동급생 여자아이를 발로 차서 바닥에 밀어버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소름 돋는 것은 폭행 직후 벌어지는 그들 모자의 대응 방식이었습니다. 명백히 자신이 먼저 여자아이들을 폭행해 놓고도, 찬우는 항상 사건의 끝에 가서 "내가 쟤한테 맞았다, 내가 피해자다"라며 거짓으로 학폭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찬우의 엄마 A씨(가명)가 나서서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선임해, 진짜 피해자인 여자아이들을 오히려 학폭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적반하장의 짓을 반복해 왔던 것입니다. 돈과 권력으로 진실을 찍어 누르며 가짜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괴물 같은 아이가 탄생한 진짜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 역시 그 끔찍한 패턴의 반복이었습니다. 얼마 전 찬우(가명)는 은혜(가명)에게 사귀자고 고백을 했고, 은혜(가명)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은혜(가명)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사건 당일인 그 날 점심시간에도 찬우(가명)는 운동장에서 은혜(가명)를 향해 돌을 던지며 시비를 걸었고, 참다못해 폭발한 은혜(가명)가 찬우(가명)를 잡기 위해 쫓아간 것이 이 '운동장 추격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CCTV 화면에 잡힌, 은혜(가명)의 뒤를 맹목적으로 쫓아가던 다른 여자아이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은혜(가명)한테 물어보니, 자기도 그 아이들이 왜 자기를 따라 뛰어왔는지 전혀 모른대요. 그냥 자기가 뛰니까 무슨 놀이인 줄 알고 우르르 따라 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은혜(가명) 어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진 그날 운동장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찬우(가명)라는 아이와 그 엄마 A씨(가명)를 둘러싼 과거의 소문들은 제 상식을 산산조각 내는 황당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찬우(가명)가 과거에도 여자아이들을 괴롭힌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A씨(가명)가 로펌을 동원해 오히려 상대방을 압박해 왔다는 기막힌 이야기들이 학부모들 사이에 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민재(가멍)나 호민(가명)이 같은 남자아이들도 사실은 평소 찬우(가명)와 갈등이 있었고, 그날 은혜(가명)가 쫓아가는 것을 보고 핑계 김에 합세해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소문도 덧붙여졌습니다.


"어머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복잡한 사연과 소문들은 제가 직접 본 것이 아니니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은혜(가명) 엄마가 들려준 과거의 이야기나, 민재(가멍) 아빠가 늘어놓았던 자기 자식들의 핑계가 100%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구 하나 결백하지 않은 흙탕물 같은 관계 속에서, 확실한 것은 오직 '우리 아이가 그 진흙탕 싸움에 단 1초도 끼어들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뿐이었습니다.

저들이 서로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거짓 소문을 덧칠하고 화려한 변명 뒤로 숨으려 할 때, 저는 오직 CCTV라는 단 하나의 명백한 팩트만을 쥐고 싸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세아(가명)의 삐뚤빼뚤한 진술서를 손에 쥐고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결정적인 순간에 함께 있었던 '목격자'라 할지라도,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릿해지고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민재(가명) 아빠가 카페에서 전해준 소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진실의 파편이 섞여 있을지언정, 그것을 100% 진실이라고 믿어선 안 됩니다. 학폭 사건이라는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은, 특히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로 얽힌 상황에서는 철저하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말을 바꾸고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법이니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의 입'이나 '소문'에 100%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확실한 무기는 언제나 CCTV나 녹음 같은 변하지 않는 '객관적 물증'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오직 '목격자의 진술'에 내 아이의 운명을 걸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부모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1. 목격자의 진술은 절대 익명이나 가명으로 받지 마라

간혹 후환이 두려워 '익명의 제보자' 형태로 진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지 특정할 수 없는 진술은 심의 과정에서 그 명확성을 확인할 길이 없기에 증거로서의 효력이 매우 떨어집니다. 진술의 주체가 명백하게 실명으로 드러나야만 그 내용도 힘을 얻습니다.


2. 목격자는 반드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어야 한다

종종 부모님들이 조급한 마음에 "그 아이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평소 행실이 바르고 착합니다"라는 식의 주변 친구나 학부모들의 '평판 조회 성격'의 진술서를 잔뜩 모아 제출하기도 합니다. 이는 감정에 호소할 뿐,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진술의 신빙성만 떨어뜨립니다. 진술서는 오직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팩트를 본 사람'에게만 받아야 합니다.


3. 진술의 '객관성'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라

목격자의 객관적 진술을 받았다면, 작성자의 정확한 인적 사항을 함께 받아 두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학생증 사본을 첨부하게 하거나, 담임 선생님 등 제3의 어른 입회하에 '해당 학생이 이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자필로 작성했음'을 확인받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스템의 벽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쏟아내는 교묘한 소문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우리 가족이 굳건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스텔라가 직접 겪은 '팩트'뿐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 팩트를 단단한 방패 삼아, 다음 단계인 '조사관의 사안 조사 보고서'와 '학폭위'라는 진짜 전쟁터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