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비밀을 몰랐다

by유림

한 보직 교수가 그 자리에서 잘렸다.


D-1.

저녁 8시쯤 왓츠앱이 울렸다. 몇몇 여교수들이 학교 돌아가는 이야기나 재미있는 일들을 공유하는 방이다. 동료 중 한 명인 A가 메시지를 남겼다.

“야, 들었어? N 잘렸대. 지금 학교는 웬만하면 변화를 주지 않으려는 분위기인데, 이게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어서 그 연유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한때 N이 부학장이 될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반면 소수인종 출신이라 그 자리까지는 가기 어려울 거라는 뒷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 보직을 맡은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물러난다니, 갑자기 학교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D-0.

그가 해당 보직에서 물러나며, 후임자가 올 때까지는 업무를 계속하고 이후에는 평교수로 돌아간다는 전체 이메일이 왔다.

보통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라면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한다’, ‘그의 리더십 덕분에 학교가 발전했다’ 같은 미사여구가 따라붙는다. 이번 메일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사실만 담백하게 적혀 있었다.

평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던 사이라 걱정도 되고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마침 몹시 바쁜 시기였고, 나는 곧 다시 내 일에 파묻혔다.


D+1.

수업이 있어 학교에 갔다가 우연히 N을 만났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위로해야 하나. 아니면 “이제 업무도 많이 줄었으니 좀 여유 있게 지내겠네”라고 가볍게 넘겨야 하나.

아주 짧은 순간에 여러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다행히 N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인사만 하고 다시 갈 길을 갔다.


D+2.

파리의 금요일 저녁은 사랑스럽고 활기차다. 특히 가을밤은 단연코 최고라고 생각한다.

동료 서넛과 노트르담을 바로 뒤에 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의 야외 자리에 앉아 노닥거렸다.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프랑스 요리를 먹다가 자연스럽게 N이 잘린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하루아침에 잘린 셈이라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이 흔치 않다고도 했다. 직원이 조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절차가 오래 걸릴 뿐 아니라 개인에게 유리하게 결론 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면서도 몇 년에 한 번씩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곧 승진 심사를 앞둔 동료 B는 누가 후임이 될지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학교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설마 안 될 것이고, 저 사람은 역량이 부족하고...

누가 그 자리에 지원할지는 본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우니 셈법은 복잡했다. 그래도 B는 알고 싶어 했다. 이번에 승진 심사에서 또 누락될 수는 없으니, 가능한 한 미리 판세를 읽고 대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그러다 B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그런데 N이 잘리기 전날, A는 어떻게 그걸 먼저 알았지?”


물론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소수인종이고 불어도 잘하지 못하니 학교 보직 같은 것은 애초에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연구 성과를 내는 일개미 역할에 비교적 충실한 편이다. 그런 면에서는 주제 파악도 잘하고, 그래서 과한 욕심도 관심도 없다.


그러자 C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N은 원래 인성 안 좋기로 유명했는데 어떻게 그런 보직을 맡았나 모르겠어. 이제 학교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회사나 학교나, 그 어디든 조직은 비슷한 생리를 갖고 있다. 특히 권력이라는 면에서 보면 더 그렇다.

한 사람이 권력을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밀려난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적어도 내가 하려는 일을 방해받지 않는다. 내 편이 백 명이어도 가장 힘이 센 한 사람이 적이라면, 주먹을 꽉 쥐고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나 역시 파워 게임의 링 위에 수시로 올라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위치가 바뀌고 나니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몇 가지 보이기 시작했다.



진정한 위로나 사과는 상대방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가짜 위로나 사과는 결국 자신의 불편함을 덜기 위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누군가가 잘렸다는 사실을 비밀스럽게 먼저 공유하는 행위에는, 때로 ‘나는 이런 정보를 벌써 알고 있다’는 과시가 섞여 있다.

A가 N의 일을 우연히 남들보다 먼저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이유를 알 리 없어 보이는 몇몇 친한 동료들에게 굳이 “무슨 일인지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에는 정보 탐색 이상의 것이 들어 있을 수 있다.

나는 이 일을 너희보다 먼저 알았다.


그러니 이런 ‘고급 정보’를 일찍 알려줬다는 사실에 특별히 감동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꼭 친밀함의 증거인 것도 아니다. 비밀을 조금 먼저 알았다고 해서, 소수만 은밀히 공유하는 이야기에 끼었다고 해서 우쭐할 일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일은 대부분 드러난다. 반대로 끝내 알 수 없는 실체적 진실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알고 싶어 한다.

왜 잘렸는지.

누가 다음 자리에 갈지.
그 사람이 올라가면 나는 유리한지 불리한지.


결국 많은 관심은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빨리 계산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다.



말에는 축복과 저주가 함께 들어 있다.

남의 불행에 가짜 위로를 전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남의 불행을 은근히 기뻐하는 내 안의 어두운 마음을 굳이 말로 꺼내어 다른 사람에게 건넬 필요도 없다.


같이 흥분하고, 같이 욕하고, 같이 누군가를 배척해야 소속감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이기심만으로 묶인 집단에서는 따뜻한 소속감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위기가 닥쳤을 때 서로를 지탱하고, 변화에 적응하며, 끝까지 곁에 남는 사람들은 결국 강한 정서적 유대를 쌓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할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조직의 모든 비밀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내는 것도 아니고, 권력의 흐름을 하루라도 빨리 읽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려울 때 불행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을 사람.
그 사람이 어려울 때 나 역시 계산부터 하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그들과 연대를 만들고,
오래 지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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