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 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고 그 쓴맛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나아감"이 꼭 이를 악물고 애쓰는 모양이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어 단어 중, nonchalance란 단어를 좋아한다. 의도적으로 힘을 뺀 태도, 자기 확신에서 나오는 무심함 정도로 번역한다. 럭셔리 브랜드가 이를 표방한다고 생각이 들어, 수업 때 이 문장을 칠판에 쓰며 학생들에게 설명하니 꽤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적었다.
True nonchalance is built on rigorous preparation. (진정한 무심함은 철저한 준비 위에 세워진다.)
그러니까 nonchalance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다 해놓고도, 다 안 한 것처럼 보이는 여유다. 그런데 나는 그 반대로 살아왔다.
90년대 중고등학생 시절, 성실의 가치에 대해 귀따갑게 들었고 체화되어 있다. 가령, 기어서라도 학교에 매일 가야 한다, 1인분의 몫을 해내야 한다, 약속에 늦지 말아야 한다, 같은 것 말이다.
지난 해 겨울, 파리 서부·노르망디 지역에 10시부터 1시까지 실로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다. 하늘이 회색이었고 흰색 차선은 눈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오후 수업이 있어 눈이 내리기 전에 도착해야겠다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하지만 이런 바쁜 날, 둘째는 꼭 호두 껍질을 까서 먹고 유치원에 가야 한다며 칭얼대고, 먹고 나서도 안 가겠다고 갖은 떼를 써댔다.
일찍 출발하려 했지만, 말 그대로 눈이 펑펑 내릴 때 운전을 해야 했고, 빙판길에 차가 헛돌았다. 순식간이었다. 가드레일을 박았고, 핸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했다.
다행히 크게 부딪히진 않았다. 조금 찌그러졌군, 괜찮아 하면서 간신히 학교에 도착했는데, bad weather로 인해 모든 수업을 줌으로 진행한다는 공지가 와 있었다. 일찍 알았으면 집에서 안 나왔을 텐데, 아쉬워하며 오후 수업을 하고, 여전히 날씨가 좋지 않고 블랙 아이스 걱정도 되어, 내일은 맑다고 하여 학교 근처 숙소를 잡아 배달 스시를 먹고 있었다. 6시 반경, 이번 주 수업은 모두 온라인이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갑자기, 오늘 학교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었지, 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눈이 오니 학생들은 그냥 하루 빠져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고, 교수들은 눈치껏 온라인으로 돌려볼까,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식하고 무식한 나는,
어떻게든 잘 도착해보겠다고 일찍 서두르고, 차가 뱅그르르 돌아도 다친 곳 없으니 주차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교실에 간다는 생각을 하고 실행했다. 이러한 성실이 성과와는 인과관계도 없을 것 같은데, 이런 막무가내식 규범이 나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드레일에 부딪힌 그 순간, 나는 nonchalance와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었다.
준비가 되어 있어서 힘을 뺀 게 아니라, 애초에 "힘을 빼도 되는지"를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채 무작정 힘을 주고 달렸던 것이다. 진짜 무심함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게 아니라, 무엇에 힘을 쏟고 무엇은 그냥 흘려보내도 되는지를 분별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눈이 이렇게 내리는 날, 안전을 우선시하는 학교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한 번 생각했다면, 혹은 하루쯤은 쉽게 가도 된다고 여유있는 생각을 했다면, 나는 가드레일 대신 창밖의 눈을 구경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일에 이유를 다 찾고,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대비하려 들지 않아도 괜찮다.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삶은 가끔 아무 설명 없이 살아도 된다. 힘을 빼고, 쓸데없는 걱정일랑 내려두고, 그냥 오늘 하루를 흘러가는 대로 두어도 괜찮은 날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철저한 준비 끝에 다다르는 게 아니라, 준비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가려낼 줄 아는, 또 다른 종류의 성실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