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연구하는 사람의 강의를 들었다.
사람은 재미를 추구해야 창의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까지의 성장은 근면과 성실함만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없던 것을 만들어내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잘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 하던 방식대로 열심히만 하다 보면 오히려 틀을 깨기가 어렵다. 뛰어난 생각은 재미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 같았다. 진짜 좋은 생각은 긴장하고 있을 때보다 이완되어 있을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더 알게 된 것은, 사람이 완전히 이완되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린다는 사실이다.
하루 이틀 일을 쉬었다고 해서 머릿속까지 금세 멈추는 것은 아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못한 일,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아간다. 며칠쯤 지나야 그것들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그제야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생각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긴 호흡의 휴식에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
충분히 느슨해질 시간이 생기고, 막혀 있던 곳이 조금씩 뚫린다. 그러다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기도 하고,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것들이 연결되기도 한다.
여름이라는 뜨거운 여행이 끝나고, 10월 초가 되면 파리의 계절도 방향을 바꾼다.
아침에는 해가 조금 늦게 뜨고, 밤 9시가 되기도 전에 어둑어둑해진다. 아침저녁으로 창문을 열면 찬기를 품은 바람이 단번에 집 안으로 들어와 여름 내 묵었던 공기를 갈아낸다.
오늘, 가을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 켜켜히 묵은 것들 중 내버릴 것이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맡고 있으면서 엄마로서의 바카라임감도 다하려고 몇 달을 주말도 없이 무리했다. 욕심이 과한 것도 있었다. 거절을 못하는 괴습관마저 갖고 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쉬 지치는 스스로를 보면서 재미를 잃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오늘 중요도가 낮은 일들을 먼 훗날로 미루거나 중단시켰다. 과감히. 그리고 의도적인 빈 공간을 만들었다. 시간과 물리적 공간의 비움.
잘하고 싶지만 반드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힘들지만 그만두면 이상하게 다시 하고 싶어지는 일. 그런 일 위주로 시간을 다시 짰다.
어쩌면 그것이 그 학자가 말했던 ‘재미’일 것이다.
결국 외력이 아무리 거세도 사람을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은 내력이다.
그리고 내력을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재미있어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들었던 드라마 대사를 나는 종종 떠올린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야 해.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