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빠듯한 월급으로 아이 서넛을 키우며 젊은 날을 보낸 엄마는 아껴 쓰는 일에 집착했다. 무엇이든 모으는 종교가 있다면 엄마는 아마 꽤 높은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열 살 무렵이었을까. 연습장 살 돈도 아껴야 했기에 엄마는 아빠가 검토했던 판결문의 이면지를 내 연습장으로 주었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던 터라 바카라상 앞에 앉은 나는 그 이면지를 읽으며 시간을 주로 보냈다.
아빠는 민사와 형사 사건을 오가며 판결을 했고, 사건은 다양했다. 강도, 사기, 절도. 그보다 더 강력한 사건은 기억에 없는데, 엄마가 나름대로 골라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판결문에는 사건이 놀라울 만큼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강도 사건이라면 범인이 왜 그 집을 선택했는지, 그 지역까지 어떻게 갔는지, 2층에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창문이나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그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차례차례 나왔다. 어떤 판결문은 결정적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설명이 너무 길어서, 나는 핵심 먼저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범죄를 ‘읽으며’ 자랐다.
걱정이 많은 성격이 된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한 가지 질문은 아주 일찍부터 갖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은 세대와 나라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계속 일어나는가.
수많은 이론이 있겠지만, 아마추어의 언어로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그 밑바닥에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돈을 잃을까 봐, 관계를 잃을까 봐, 사랑을 빼앗길까 봐, 내 몫을 다른 사람이 가져갈까 봐. 돈과 관계를 둘러싼 두려움은 사람을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곳까지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무서운 일을 피하며 사는 방법에 몰두했었다.
헌데,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서운 것을 피하지 못해서만은 아니었다. 잃을까봐 너무 많은 것을 붙들고 있는 일도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집 가득 쌓여 있던 물건들을 한국에 머무는 짧은 시간 안에 혼자 처리할 수 없어서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았다. 무려 여덟 명이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하루 종일 한 일은 오직 버리는 일이었다.
버린 물건 중에는 실소가 나오는 것들도 많았다.
너무 낡아 구멍이 난 속옷. 초등학생 때 가족 여행을 가서 주워 온 조개껍데기. 음식점에서 하나둘 가져온 일회용 물티슈는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몇 장을 뜯어보니 이미 바싹 말라 있었다.
엄마는 박람회 다니는 것도 좋아했다. 그곳에서 받은 브로셔와 팸플릿, 조악한 부채만 해도 사과 상자로 두 박스가 나왔다. 신문 스크랩도 한 상자가 넘었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일부는 디지털로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이든 몇 초 안에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그것이 종이든 파일이든 계속 보관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대부분 쓰레기 집하장으로 갔다.
그날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던 것은 말라빠진 물티슈 더미였다.
엄마는 평생 아끼라고 말했다. 식당에 가면 일부러 쓰지 않은 냅킨이나 물티슈를 가방에 넣어 왔다. 정작 집에는 새 티슈가 수십 개가 있었는데 말이다.
쓰고 싶은 데 다 써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쓸 만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계속 아꼈다. 그러고 보면, 절약이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다시는 부족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마음.
버리고 나서 후회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
엄마도 결핍을 뼈속부터 두려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가을이면 프랑스 곳곳에서 브로칸테(벼룩 시장)가 열린다. 시민들과 일부 업자들이 거리로 나와 쓰던 물건들을 판다. 드물게 귀한 물건도 나온다고 한다. 지인은 파리의 브로칸테에서 본인 회사의 1920년대 종이 주식을 사서 액자에 넣어 걸어두었고, 친구는 어느 참전용사가 쓰던 낡았지만 멋스러운 가죽 가방을 샀다. 유명 식기 브랜드 크리스토플의 스푼과 포크 세트처럼 새 제품은 수천 유로 하는 물건이 몇백 유로에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브로칸테를 걷다 보면 처음에는 보물을 찾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오래 걷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든다.
누군가 한때는 돈을 주고 샀고, 좋아했고, 귀하게 보관했던 수많은 물건이 이제 길바닥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은식기도 있고, 옷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누군가의 여행 기념품도 있다. 쓸모를 다해 골칫거리가 된 채로 다시 집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이 평생 얼마나 많은 것을 집 안으로 들이며 사는지 새삼스럽게 보인다.
엄마의 집을 힘들게 비우고 나서, 이전보다 물건을 쉽게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종종 생각한다.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정말 좋아서인지,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잃을까 봐, 부족할까 봐, 언젠가 필요할까봐 붙들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고 무조건 적게 갖고 사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예쁜 것을 여전히 좋아하고, 쓸데없는 것도 산다.
다만 물건의 ‘끝’을 생각하며 사게 되었다. 이것을 다 쓰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사 때 마다 이고지고 다니다가 결국 누군가가 나 대신 버려줘야 할 물건인지.
사람이 두려움 때문에 붙잡는 것은 물건만이 아닐 것이다.
돈도, 관계도, 지나간 일도 그렇다. 한때 내 것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짊어지고 가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나를 행복하게 해주거나,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붙잡고 있느라 무엇을 정말 지켜야 하는지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엄마가 평생 모은 것들을 버리고 돌아온 뒤에야 조금 알게 되었다.
소중한 것만 지키면 된다.
그 많은 물건들 사이에서, 낡아 빠져 종이가 삭기 직전이었는데도 차마 버릴 수 없어 프랑스의 우리 집까지 모셔 온 것이 있다.
엄마의 일기장이다.
1970년대, 엄마가 고등학생일 때 쓴 것이었다.
거기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가 있었다.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 때문에 속상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했는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아직 누구의 엄마도 아니었던 한 소녀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몰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래전부터 알고 싶었던 사람 같았다.
하루 종일 버렸던 수많은 물건들 가운데 이것만은 남길 만한 것이었다. 위탁조차 하지 않고 기내에 실어 고이 데리고 왔다.
비싼 것도 아니고, 멋진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것도 아니었다. 종이는 누렇게 변했고 가장자리는 부스러지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엄마가 있었다.
수많은 가짜들을 걷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하나를 건져 올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많이 남기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지 아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본질이 아니라면, 놓아도 된다.
놓아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