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일까

by유림

덴마크 오덴세에 가면 안데르센 박물관이 있다.

수많은 아름다운 동화를 쓴 이 세계적인 작가는 사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랐고, 참으로 못생겼으며, 오래 지속된 관계가 없어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어두운 면을 갖고 있었다.


그는 《미운 오리 새끼》, 《엄지 공주》처럼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아이들과 함께 동상을 세우는 일에는 역정을 내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들은 대부분 거부했다. 원래 그의 꿈은 극작가였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드라마는 대부분 실패했고,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현대 동화를 정립한 인물이 되고야 말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어공주》처럼 아름답고 희생이 가득한 사랑 이야기를 썼고, 실제로도 금방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고, 못생겼다는 콤플렉스에 평생 짓눌려 살았다고 한다. 피붙이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그의 장례식에는 조문객도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어머니가 《성냥팔이 소녀》의 모델이었을 만큼 극심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성공한 뒤에는 여왕과 코코아를 마시는 관계가 되었다. "지금은 볼품없지만 곧 어미처럼 멋진 백조가 되겠지"라고 독백을 내뱉는 미운 오리 새끼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다. 그렇게 복잡하고 외로우며 모순덩어리였던 안데르센의 삶을 알고 나면, 그의 이야기는 비로소 다르게 읽힌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스스로의 업적을 기리는 자서전을 3권이나 남겼다. 하지만 작고 왜소하고 조용하며 가난한 환경에서 생겨난 열등감은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 백조가 되었지만, 그는 열등감과 자만심 사이를 늘 오가는 정신세계를 보였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나는 안데르센 박물관에서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의외성은 이렇다. 그의 다면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면들을 아름답게 '전시'해놓아서, 그것을 추하다고 느낄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연애편지부터 각종 기록과 작품들을, 오디오와 예술 작품, 체험 공간으로 구성해두었다. 인생과 문학 작품을 박물관으로 꾸미면 뻔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은 그 가벼운 예상을 보기 좋게 깨는, 기대 이상의 공간이었다.


또 다른 의외성은 정반대에 있다. 전시 방식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정작 그 안의 내용은 조금도 미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덴마크의 자랑인 인물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다 까발려 놓다니. 설득의 세 요소는 에토스(인격), 로고스(이성), 파토스(공감)인데, 이 중 으뜸은 에토스라고 한다.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은 먼저 본인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도 한다.



안데르센의 삶과 작품을 둘러보고 나니, 그 '좋은 삶'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탄하고 무탈하게 어진 마음을 갖고 사는 삶만이 좋은 삶일까.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결핍을 어떻게든 메워나가려고 한 그의 마음과 태도는 좋은 삶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일까.

어긋난 관계들과 목표한 분야에서의 실패, 문득문득 떠오르는 지독한 가난의 기억.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하지만, 짜증을 내면서도 꾸역꾸역 아름다운 언어와 이야기로 승화시킨 그의 노력을 좋은 삶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일까.



아름답게 재해석된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니, 무엇이 추하고 무엇이 아름다운지 경계가 모호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양극단을 오가는 복잡한 마음과 그로 인한 모순된 행동을 보였던 안데르센에게서 내 모습도 보았다. 나 역시 그처럼, 치졸하다가도 때로는 관대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이따위 인생인가 싶어 좌절하기도 한다. 가엾기도 하지만 기특하기도 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칭찬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날아갈 것 같기도 하다.


복잡하고 모순되고 못생긴 사람. 하지만 그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꺼내놓으려고 백조처럼 발버둥치는 사람. 꽤 좋은 삶이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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