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미처 자라지 않은 수염으로 새파란 인중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읽을 만한 문자가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누군가 읽기를 원치 않았는지, 아니면 적을 만한 공간이 부족했는지 몇 번이고 덧쓰인 글자. 그 위에서 양녕의 눈도 어지럽게 흔들렸다.
다음 장도, 그 다음 장도 마찬가지였다. 세차게 바카라장을 넘겨도 붓과 검은 먹이 남긴 흔적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사냥이 끝난 뒤 남은 발자국처럼. 술잔 끝에 맺혀 떨어지지 않는 청주 한 방울을 탐하듯, 양녕은 몇 번이고 먹지에 가까운 종이들을 넘겼다.
그리고 무언가 걸린 것처럼 손끝이 허공에 멈춰 섰다.
“성상께서 괴이갑사에 하교하시길…….”
글을 읽은 사람은 다름 아닌 효령이었다.
“흉물을 본 자가 없도록 하라.”
-저 흉물의 사지를 끊어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번뜩였다.
목덜미가 꺾인 사슴처럼 제례악이 끊긴 종묘. 자신에게 달려들던 괴인. 햇빛을 받은 칼날과 퍼덕이는 팔과 다리. 영혼이 다리에서 스멀스멀 빠져나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무명천 같은 양녕을, 효령이 붙잡아 세웠다.
동생의 목소리가 범종처럼 울려 도무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양녕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왜 이런 걸 여기에 감춘 거지?”
혼잣말인지 물음인지 알 수 없는 말에 효령이 대답했다. 서바카라 한 장을 넘길 만큼의 정적이 지나고 나서야.
“할아버님께서 무너뜨린 나라의 임금을 모신 사당입니다. 누가 찾아온다면 의심을 사기 좋겠죠.”
양녕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자신들도 밤 그늘에 몸을 감춰 숨어든 장소였다. 모두가 가까이하길 꺼리는 장소를 구태여 찾아올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영정에 그려진 공민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효령이 말한 대로 그저 서바카라을 감추기 좋은 공간일 뿐일까. 아니, 애초에 종묘 안에 신당을 세운 이유가 이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바카라을 감추기 위해서.
“괴이갑사는.”
마지막으로 남겨진 몇 개의 문자. 다음은 없었다. 휘갈겨 쓴 문체는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채 끝맺지 못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공백. 서바카라을 덮을 때까지 먹 한 방울조차 찍혀 있지 않았다.
그리고 괴이갑사, 몇 번이나 기록된 이름. 양녕이 기억하는 한 의흥삼군부 갑사 가운데 이런 자들은 없었다.
“형님, 누가 이런 바카라을…….”
문득 양녕이 동생의 입을 막았다. 눈썹을 치켜올린 효령이 무색하게 정적이 공기 중으로 스며들었다.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두루마리를 천천히 펴는 소리. 그것을 닮은 마찰음이 달에 물든 창호지 너머에서 아득히 들려왔다.
규칙적이면서도 이따금 멈춤이 있었다. 하나가 나아갔고 다른 하나는 끌려왔다. 발걸음, 사람의 소리였다.
“우리 말고 누군가 또 있어.”
양녕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형태가 선명해지는 인기척을 따라 효령의 낯빛에서 붉은 기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듯한 야밤. 죽은 왕 씨를 위한 공간. 이 모두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존재한다면…… 둘 중 하나였다. 공민왕을 그리워하거나, 서바카라을 찾으러 왔거나.
어떤 연유에서도 마주쳐서는 안 될 이였다.
이제 막 기판 위에 얹힌 바둑알, 그 진동만큼이나 양녕의 눈꼬리가 떨렸다. 신당은 작았다. 형제가 마음 놓고 움직일 수도 없는 크기. 사방이 막힌 방 안에서 몸을 가릴 만한 틈이라고는 제단 밑 한 뼘 어둠이 전부였다.
발걸음이 나아가고 끌려오기를 반복했다. 양녕은 그제야 자신이 숨을 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떨구자 서바카라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감추기에 좋은 공간. 효령은 그리 말했다. 아니, 처음부터 감추기 위해서였다면. 과연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종이 뭉치 하나를 위해 신당을 세웠을까. 양녕의 시선이 서바카라에서 불상으로, 불상에서 제단으로 옮겨졌다.
“형님.”
이내 영정을 더듬는 제 형을 효령이 숨죽여 불렀다. 상황이 이런데도 쓸데없이 그림이나 감상하고 있다니. 모래를 삼킨 듯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손에 들 만한 물건도 마땅치 않았다.
양녕은 모든 신경을 손끝으로 몰아붙였다. 작은 차이, 미세한 감각이라도 잡히기를 바라며. 감정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사이에서 채색의 질감조차 사뭇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편액 가장자리에서 느껴지는 실바람.
나무틀을 왼쪽으로 젖혔다. 뒤에 있던 건 벽이 아니었다. 완벽한 어둠. 똬리를 튼 구덩이가 양녕에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아……. 탄식이 작게 흘러나왔다. 구덩이를 사이에 두고 세워진 두 개의 벽. 신당 바깥보다 내부가 좁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형제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입을 벌린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동생. 양녕은 구덩이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를 막아선 건 옷자락을 낚아챈 효령의 손아귀였다.
“거기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아가리에 삼켜지듯 양녕은 밑으로 쑥 꺼져 더는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효령에게 느껴지는 건 오래된 습기와 돌에 낀 이끼 냄새뿐이었다.
마침내 발걸음이 뚝 멎었다.
문살에 짙은 형상이 맺혀 있었다. 상현달 사이에 서서 창호를 검게 물들이는 모습은 불상만큼이나 그것은 미동이 없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효령은 질끈 깨문 입술로 두 눈을 감았다.
양녕이 했던 대로 영정이 걸려 있던 자리 너머로 몸을 던졌다.
뒤이어 벌컥 열리는 문. 신당은 고요했다. 사라진 서바카라, 자리가 옮겨진 편액, 바깥으로 드러난 구덩이. 하지만 형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형상은 말이 없었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에서 거친 흙이 버석거렸다. 그을음처럼 눌어붙은 열감. 효령은 지금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 건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볼 수 있는 모든 공간에 서늘하고 축축한 어둠이 스며들어 있었다.
“언제까지 앓는 소리를 낼 것이냐?”
허리춤에 동여맨 술띠가 뒤로 당겨졌다. 그 힘에 이끌려 몸을 일으킨 효령은 자신을 부축하려는 양녕을 거칠게 뿌리쳤다. 아무리 품행이 방자하다지만 이렇게까지 무모할 줄이야.
언젠가 용상에 앉을 세자도, 임금의 두 번째 아들도 여기에 없었다. 그저 치기 가득한 형제만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뛰어내리신 겁니까!”
목소리에 힘이 실리자, 효령은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렸다. 문 앞에 다다른 형상. 그것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시선도, 인기척도. 그리고…… 되돌아갈 방법도.
명주실 같은 한숨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그럼에도 양녕으로부터 돌아온 건 실소였다.
“아바마마께서는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꿈에도 모르시겠지. 그 꼴이 우습게 되었어. 그토록 감추려 했던 노력이, 행여 드러나지는 않을까 숨죽였을 모든 시간이 무색해져 버렸으니.”
죽어서도 다시 일어난 나인. 그녀와 똑같이 변해버린 내금위. 기이한 변고 속에서 아버지는 의문을 허락하지 않았고 임금은 침묵을 강요했다. 그에 대한 자신의 답이 바로 이것이었다.
궁궐 안 모든 게 명백하다고 여겼었는데.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눈앞이 가장 선명하다는 사실을 양녕은 알고 있었다.
“왜 그리도…….”
효령은 끓는 가래를 억지로 되삼켰다.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이 분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언젠가 방탕한 천성을 끊어낼 것을 믿기에, 애써 이해하려 했던 혈육. 그럼에도 용상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도 짊어지지 않는 세자. 아바마마와 수많은 대신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후계자.
“왜 그리도 어긋나려 하십니까. 왜 그리 아바마마와 척을 지려 하십니까.”
차마 던지지 못했던 질문이 타래처럼 풀어지기 시작했다. 마주 보고 있음에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지 않는 공간 속에서 비로소.
효령은 앞에서 서걱거리는 발소리에 맞춰 제 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아바마마와 달라.”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셔도 되는 것 아닙니까.”
감히 누구도, 어쩌면 태종과 원경왕후조차 묻지 못할 질문을 효령이 던지고 있었다. 그저 옆에서 듣기만 해도 놀라 손사래 칠 불경한 질문을.
벽을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양녕. 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말아 올라갔다.
“아바마마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리시는 분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내일보다 오늘이 중하고, 모레보다 내일이 우선이지. 마치 할아버님처럼. 아바마마는 그게 거북하신 게야. 내가 그 분 같은 왕이 될까 봐. 아내에 눈이 멀어 순리를 거스르는…… 정에 휘둘리는 왕이 될까 봐.”
효령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토록 마음의 밑바닥을 이야기하는 형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를 등진 채 앞으로 걸어 나가는 양녕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리 이성적이라는 분이 이복동생과 공신을 죽이고 용상을 빼앗았다. 너도 알지 않느냐. 허나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왕이 될 거다. 자신을 버리고 임금이 된 아버지와 다르게, 나는 온전히 내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야.”
문득 멈춰 서는 발소리. 양녕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눈에 담기지도 않는 효령을. 분명 동생은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습한 바람이 콧등을 쓰다듬으며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이유입니까. 어떤 군왕이 될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임금이 되고자 임금이 되려는 것입니까.”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무겁고도 눅진한 정적.
양녕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만 했다.
완만하게 내리막을 그리는 비탈길.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 넉넉했던 너비는 어느새 한 명의 어깨에 닿을 정도로 비좁아지고 있었다. 이따금 발끝에 차이는 자갈에 걸음을 멈칫했을 뿐 대화는 더 이상 오가지 않았다.
들이마시기 힘들 정도로 공기가 질어진 건, 가지처럼 갈라져 나온 모퉁이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두 개로 나뉜 길 앞에 서서 형제는 같은 방향을 응시했다. 불빛. 간신히 고개를 내밀어 흔들리는 불빛. 그리고 아련하게 귓가를 적시는 흐느낌, 혹은 짐승의 울음. 어쩌면…… 주지승이 말했던 그 소리.
양녕은 동생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효령은 떨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낚시가 하고 싶어 얼어붙은 강을 깨던 자신을 말릴 때처럼.
“형님.”
낮게 속삭이는 효령은 발을 떼는 제 형을 멈춰 세웠다.
월식처럼 어두워진 양녕의 얼굴은 그림자에 뭉개져 있었다. 하지만 장남은 말이 없었다. 잡고 있던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서는, 그를 뒤로 물린 채 갈림길의 끝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묽은 빛을 따라 걷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양녕 너머로 펼쳐지는 공간을 마주했을 때 몸속 모든 피가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강물에 빠진 듯 무겁게 내려앉는 감각.
등활, 중합, 규환……. 효령이 불경에서 보았던 그 어떤 지옥에도 빗댈 수 없는 풍경이 거기에 있었다. 아니, 지옥보다는 옥사에 가까웠다.
나무로 길게 드리워진 창살.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살덩어리. 거친 숨소리와 낮은 신음. 달착지근하면서도 무언가 푹 익은 듯한 냄새가 아지랑이같이 코끝에서 어른거렸다.
“나무아미…… 우욱.”
염불을 채 외우지 못하고 효령은 이내 시큰한 물을 입 밖으로 게워 냈다. 바닥으로 쏟아지는 오물. 하지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기에, 그는 더럽혀지는 옷자락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머리끝을 쓰다듬는 불길함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생기 없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죽은 생선을 삶았을 때처럼 탁하게 흐린 시선이 어느새 효령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벌어진 입술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불빛에 익숙해질수록 웅크리고 있던 것들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쪽 팔이 뜯겨나간 몸뚱이, 무릎이 뒤로 꺾인 채 바닥을 기는 형체, 짓이겨진 머리로 버둥거리는 육신. 사람이라고 부르지 못할 것들이었다. 살아 있을 수 없는 존재. 그럼에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진물이 말라붙은 피부로. 근육을 뚫고 나온 뼈로. 검게 곯은 살점으로.
“그렇다면 종묘에서 보았던 괴인도…….”
차마 주저앉지도 못하고서 양녕이 중얼거렸다. 술에 절어 비틀대던 때만큼이나 아득한 표정. 하지만 몸은 포식자를 앞에 둔 사슴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아무리 세자라 해도, 사냥으로 수많은 살생을 저질렀다 해도 그 역시 약관을 갓 넘긴 사내에 불과했다.
종묘, 승하한 임금들을 위해 지어진 왕조의 신성한 공간. 그 아래 삶과 죽음의 섭리를 부정하는 불경한 존재.
“……망생자.”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자 보다 짙은 어둠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닳고 닳은 손끝이 벽을 벅벅 긁었고 모자란 신체가 창살에 부딪혔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소리들은 절망인지 분노인지 모를 괴성에 뒤섞여 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듯 양녕이 고개를 돌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시선 끝으로 보이는 낡은 탁자.
비스듬히 기울어져 위태로워 보였다. 그 위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종이가 양녕을 부르고 있었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효령도 뒤로한 채, 양녕은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결이 살아 있어 빳빳했다. 누렇게 뜨지도, 습기를 머금지도 않았다.
선비처럼 정갈하게 쓰인 문장. 하지만 그것을 읽어나갈수록 어깨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몸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어느 한 구절에서 멎은 눈동자.
-발병하는 괴질의 종류는 같으나, 왕실의 핏줄에게서 보이는 병증은 여느 백성과는 자못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MY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