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보는 손님자리에 앉은 밤
사주를 제대로 접한 지 10년이 되어 간다. 남산에서, 아파트 19층에서, 유튜브에서 배웠다. 어릴 때 서예를 배우며 그림 같은 한자에 빠졌던 사람이라, 천간과 지지의 글자들이 낯설지 않았다. 나무와 불, 쇠와 물, 그리고 그것들을 이어 주는 흙. 처음엔 그 글자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대입해 가며 외웠다. 생년월일시 여덟 글자 속에서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줄줄이 나오는 게 신비로웠다.
그걸 인테리어에 접목시키기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주 속 한난조습을 따지며 오행이 순환하도록 공간을 다시 짰다. 35년 동안 밥줄이었던 인테리어에, 불투명하고 의심스럽지만 삶의 나침반 같은 것 하나가 더 얹혔다. 그러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직접 말해 주고 싶어서, 전화 사주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은 반신반의였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애달픈 넋두리를 듣는 게 낯설었고, 내가 잘할 수 있을지도 자신 없었다. 그렇게 9개월. 상담한 사람이 800명 가까이 되고, 그들이 남긴 피드백도 250개가 넘는다. 짧게, 그러나 정확하게 사주를 전달하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나는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여덟 글자만으로는 안 보이는 것이 있다.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의 디테일 같은 것. 그건 물어봐야 나온다. 그날 저녁에도 그랬다. 30대 여자였고, 재회운을 물었다. 두 사람의 사주팔자를 펼쳤는데 재회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물었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어요.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리고, 헤어질 때 그 사람이 한 말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예요.
그 사람은 잠깐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
"그동안 자기가 많이 참았다고 했어요. 제가 돈을 너무 헤프게 쓰고, 계획적이지도 못하고, 저랑 결혼하면 힘들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사주팔자 여덟 글자가 읽혔다.
"그 사람은 하고 싶은 얘기를 차곡차곡 쌓아 뒀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사람이에요. 다시 만나게 되면, 중간중간 상대 마음을 들여다봐야 해요." 그 사람은 한참 듣더니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내려놓고 나니, 갑자기 내 사주가 궁금해졌다.
몇 년 전, 커다란 대운의 흐름 앞에서 무기력하게 수장되었던 내 운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그래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 사실은 알고 있었다. 궁금했던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사주를 매개로 남의 고민을 풀어 주듯, 다른 상담사는 내 문제를 어떻게 풀어 줄지가 궁금했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 사주를 듣는 건 어떤 것인지, 지금 내 생각이 멈춰 있는 자리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확인하고 싶었다.
폰을 열고 전화 사주 사이트에 들어갔다. 내가 상담자로 등록된 사이트였다. 손님 자리에서 보는 화면은 처음이었다. 목록을 넘겼다. 슈트를 입은 남자. 재킷을 입은 여자. 한복. 또 슈트. 염주를 든 남자도 있었고, 사진 대신 연꽃 그림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다들 비슷했다. 나도 이 목록 어딘가에 비슷하게 있을 거였다.
그 사이에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금발에 러플이 잔뜩 달린 블라우스, 귀에는 큰 귀걸이. 오페라 여주인공 같았다. 사진 아래에는 강남의 대표적인 동네 이름이 적혀 있었다. 후기가 목록에서 제일 많았다. 몇 개 읽어 봤다. 언니 덕분에 살았어요, 너무 감사해요, 하는 것들이었다. 단골이 많은 사람 같았다.
30초에 1,500원. 목록에서 제일 비쌌다. 가장 비싼 사람이 가장 빠르고 정확할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고 나서 웃었다. 내 손님들이 나를 고를 때 하는 생각을, 내가 하고 있었다. 결제 버튼을 눌렀다.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다른 상담 중이라고 했다. 예약을 걸었다. 그 사람의 30초를 사는 사람들이 앞에 몇 명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폰을 식탁에 엎어 놓았다. 설거지를 했다. 컵 두 개와 접시 하나였다. 설거지가 너무 빨리 끝나서 가스레인지도 닦았다. 탄이가 발밑에 와서 누웠다. 탄이는 내가 뭘 기다리는 걸 안다. 늘 발밑에 와서 같이 기다린다.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어떤 게 궁금하셔서 전화하셨어요?"
목소리는 사진과 달리 낮았고, 빨랐다. 생년월일시를 불러 주고, 올해 전체 운에 대해 물었다. 지금 내 대운을 의식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언니는 누가 뭐래도 언니가 하고 싶은 일 하시면 돼요. 누구한테 물어볼 것도 없네요."
나는 물어보려고 전화한 사람이었다.
"언니는 7년마다 운이 반복되니 그것만 기억하고, 조심하시면 돼요."
헌것을 새것으로 만드는 일이 나한테 맞는다고 했다. 인테리어 같은 것. 그런 일이 나에게는 맞는다고 했다.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인테리어 현장에 35년 동안 서 있었다.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내가 사주를 본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언니." 그 사람이 나를 한 번 더 불렀다.
"걱정 마세요, 언니는 잘돼요."
통화는 십 분이 조금 안 됐다. 결제 내역에 이만 칠천 원이 찍혔다.
폰을 내려놓고 한참 식탁에 앉아 있었다. 탄이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무토가 어떻고 대운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잘될 거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그게 사주에서 나온 말이든 아니든.
그날 이후 나는 상담 끝에 항상 이렇게 말한다.
"다 잘될거에요...!" 전화기 너머로 큰 숨소리가 들린다.
그 밤,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만세력이 펼쳐진 모니터를 닫았다. 바카라상 위에는 요즘 배우는 타로카드가 놓여 있었다. 탄이가 발밑에서 기지개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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