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를 먹다가 겨울

관자놀이가 찡, 하던 오후에 담요를 꺼낸 밤

by운채




편의점까지는 걸어서 5분이다.

그 5분에 등이 다 젖었다. 냉동고 앞에 서서 얼굴을 잠깐 들이대고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메로나, 죠스바, 바밤바 한 개 사면 한 개가 함께 오는 세일 중이다. 가끔 먹는 편의점 팥빙수도 1+1이었다. 두 개를 집었다.


낮에도 카페에서 망고빙수를 먹었다. 일 얘기 때문이었는지 망고의 달콤함과 눈꽃 같은 얼음 빙수는 이미 매장을 가득 채운 냉기로 특별하지 않았다. 입에서 사르륵 녹는 눈꽃 같은 얼음도 편의점 빙수처럼 혀를 마비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와자작! 돌덩이 같은 얼음을 입안에서 깨먹는 맛은 편의점 팥빙수만의 매력이다.


집에 오자마자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를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 바람세기를 3단으로 올리고 빙수 뚜껑을 열었다. 얼음이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숟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부었다. 락토프리 우유. 유당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나의 소장에게 내가 항상 냉장고에 채워둔 우유였다. 탄이가 어느새 발치에 와 앉아 있었다. 밥그릇에 우유를 조금 따라 주었다.


얼음이 우유에 녹으면서 사각거렸다. 작은 조각얼음 아래로 가라앉은 팥앙금을 뚜껑에 부착된 작은 수저로 휘저었다. 팥앙금이 우유와 섞이며 달콤하고 고소한 우유빙수가 되었다. 몇 번 휘저어서 국물부터 들이켰다. 달고 차가운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그다음, 큰 숟갈로 얼음째 퍼서 입에 넣었다. 얼음이 깨지며 남은 파편의 물방울이 목구멍에서 머리로 불꽃처럼 퍼졌다.


관자놀이가 찡, 했다.


숟가락을 든 채로 눈을 감았다. 온몸의 신경이 머리 어딘가에 잠깐 멈췄다. 그 몇 초 동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위도, 선풍기 소리도, 창밖 매미도. 눈을 뜨니 다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용기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팥앙금과 찹쌀떡 조각을 한 숟가락 크게 떴다. 쫄깃한 찹쌀떡이 입안에서 맴돈다. 얼음이 녹으며 나온 달콤한 우유를 마셨다. 몇 숟가락 먹다 보니 바닥을 보인다. 어느새 팔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에어컨 리모컨 숫자를 확인했다. 26도. 탄이가 있는 우리 집의 여름 온도다. 겉옷을 걸칠까 하다가 그냥 침대로 갔다.



침대에는 작년부터 냉감패드를 깔았다. 빙수로 식은 몸을 그 위에 올리자 찬 기운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손끝과 발끝이 시렸다. 일어나서 옷장을 열었다. 맨 아래 칸, 봄가을에 덮는 담요를 꺼냈다. 팔월에 담요를 꺼내는 손이 잠깐 낯설었다.


담요를 목까지 끌어올리고 누웠다. 냉감 베개커버의 찬 기운이 뺨에 닿았다. 차기운 패드 위 담요의 포근함이 느껴졌다. 담요 속은 아직 차갑다. 탄이를 불렀다. 이럴 때, 탄이는 간이 난로가 된다. 이름을 듣고 탄이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어슬렁 거리며 침대옆 계단으로 올라온다. 엉덩이를 밀며 담요 위에 자리를 잡는다. 무릎께가 묵직해졌다. 실외기 소리가 멀어졌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무릎이 가벼웠다. 탄이가 없었다. 화장실 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들여다보니 탄이가 타일 바닥에 배를 깔고 앞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어제 잠결에 에어컨 스위치를 끈 모양이다. 아침 침실공기가 후텁지근하다.


나는 담요를 걷고 일어나 빈 빙수 그릇을 치웠다. 오늘도 더위가 온다. 냉동고에 겨울이 아직 한 개 남아 있었다.


#열대야 #편의점팥빙수 #팥빙수#반려견에어컨온도 #냉감패드 #여름밤 #여름에세이 #일상에세이 #반려견

#에세이


월요일 연재
이전 15화애견동반 온라인카지노카페에서, 나를 키우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