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퇴임을 기념하며

서툰 솜씨로 새긴 돌도장

by김원진

몇 해 전, 존경하는 분이 교단을 떠나셨다. 교사이자 시인이셨던 그분은, 미뤄둔 시도 쓰고 텃밭도 일구며 인생의 2막을 보내실 거라 하셨다. 제자를 길러내고 교육 운동에 몸을 바친 분, 오랜 세월 부모를 모시면서도 한 아들과 쌍둥이 딸을 건사하신 분, 시인으로서 늘 부지런히 스스로를 담금질해 온 분. 이 지역에서 한 시대의 대들보 하나가 조용히 자리를 내려놓고 떠났다.


언젠가 나는 그분을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내겐 삶의 방향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스승이 계신다. 그분은 평생을 준엄한 산으로 사셨고, 나를 포함한 젊은이들은 그 산그늘에 웅크려 오래도록 사상을 의탁해 왔다.'


그 산이 이제 돌아서서 등을 보인다. 한 세대가 지나면 늘 일어나는 일이건만, 바통을 넘겨받을 준비가 덜 된 후배는 마음이 어수선하다. 보내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꾸 옷자락을 붙잡고 싶어진다.


퇴임에 맞춰, 나는 그분께 드릴 마음의 표시로 돌도장 하나를 새겨드린 적이 있다. 두 시간 남짓, 오로지 그분만 생각하며 칼끝으로 그분의 이름을 팠다. 전각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솜씨라 획은 자꾸 비뚤어지고 돌가루만 서걱서걱 손끝에 묻었다. 그래도 한 자 한 자 파 내려가는 동안, 무언가를 골똘히 새기는 일은 실은 내 마음을 새기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다 새긴 그날로 연락을 드려, 작고 허름한 돌도장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그보다 더 전, 주머니가 궁하던 시절에는 명절 선물로 나무 젓가락 한 쌍을 사다 드린 적이 있다. 보잘것없는 선물이었는데도 그분은 뭐라도 드리고 싶었던 내 마음을 단번에 알아채고 크게 기뻐하셨다.


"젓가락을 받았는데, 커다란 통나무가 굴러들어오네."


그 한마디에 마음이 금세 따뜻해졌다. 돌도장을 받으시던 날도 그분은 꼭 그때처럼 웃으셨다. 살아오신 뜻을 다 잇지는 못했으나 본받으려는 마음만은 변함없다고, 굳이 말로 옮기지 않은 속내를 그분은 그날도 귀신같이 다 읽으셨을 것이다.


그 인연은 지금도 이어진다. 우리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먹고 안부를 나눈다. 얼마 전 그분은 새로 묶은 시집 한 권을 보내오셨다. 《너는 왜 가끔 시가 되느냐》. 제목을 가만히 곱씹는데, 평생 사람을 응시해 온 분다운 물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사물도, 오래 들여다보면 가끔 시가 된다. 내가 돌에 이름을 새기던 그 두 시간도 어쩌면, 어설펐으나 진솔했던 시 한 편이었을 것이다.


시집 출간을 기념한다는 핑계로, 우리는 한여름에 백숙 모임을 열었다. 예약한 식당은 오십 년간 더덕정식을 내 온 곳이었는데, 꼬박 그 자리에서 밥을 지으며 한 세상을 살아오신 할머니가 나의 간청에 못 이겨 이 더위에 백숙을 삶아 오셨다. 그곳에서 평생을 살다 보니 눈앞의 산도 키가 크더라고, 부탁하는 전화 목소리가 참 예쁘게 들려서 이 여름에 닭을 삶지 않을 수 없었노라 하셨다. 젓가락에서 통나무를 보시던 그분처럼, 할머니도 목소리 하나에서 마음을 읽어내신 것이다. 오래 산 이들은 그렇게,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다. 그분이 여태 인연의 한 켠을 내게 내어주시는 것도, 변변찮은 능력 너머의 무언가를 좋게 보아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은퇴하신 2월은 겨울의 끝물이었고, 그해 텃밭에는 새봄이 왔었다. 그리고 지금, 대서가 지나 여름이 한창이다.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뜨끈한 백숙 국물을 들이켜며, 우리는 계절이 몇 번을 바뀌든 이렇게 마주 앉을 것임을 알았다. 약초를 가득 넣은 국물이 몸속 깊은 곳부터 우리를 데웠다.

IMG_4020.JPG어설프기 짝이 없는 돌도장 하나로 그분의 퇴임을 기념했다.

이 글은 사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며 '낡아가는 나'를 적는 산문 연재 《닦아도 중고지만, 매일이 새것 같아서》의 한 편입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한 편씩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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