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몇 달 동안 붙들고 있던 '마케팅'
관련 바카라 한 권이 완성되었다.
원고를 다듬고 부족한 내용을 보완하며,
문장을 정교하게 수정하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교정하는
작업까지 마쳤다.
오늘은 드디어 ISBN 등록까지 완료했다.
이번 주부터 개강하는 15주 차 강의
계획서를 만들어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두었다.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앞에 도착했는데 문고리에 뭔가
걸려 있었다.
'아들이 배달 음식을 시켰을까?'
봉투를 열어보니 ‘씨앗젓갈’이라고
쓰여있는 플라스틱 통이 들어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젓갈이름이었다.
뚜껑 안에는 명란과 오징어를 잘게 다진
젓갈과 온갖 씨앗류가 섞여 있다.
호박씨, 흑임자, 들깨, 참깨, 잣 등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씨앗들이 제법 많이 들어
있었다.
잠시 후 문자가 왔다.
같은 아파트 앞동에 사는 우리 직원이
퇴근하면서 우리 집 현관 문고리에
우렁각시처럼 걸어두고 간 음식이었다.
“휴가철에 매년 강원도에 다녀오는데
젓갈 맛집에서 사 오는 음식이에요.
밥에 비벼 드시면 정말 맛있어요.”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냉장고에 넣기 전 작은 종지 하나를 꺼내
조금 덜어서 분리했다.
그냥 맛만 볼 생각으로 젓가락으로 한입
먹어보았다.
그런데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맛은
아니었다.
짭조름한 명란과 오징어의 감칠맛
사이로 고소한 깨와 견과류가 씹혔다.
부드럽다가 오독오독하고, 짭짤하다가
감칠맛이 더해지면서 아주 고소한 게
한 가지 맛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결국에는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다.
햇반 하나를 꺼내 들고 과감히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을 눌렀다.
‘윙―’
그제야 시계를 보았다.
밤 10시 10분.
평소라면 이 시간에 밥을 먹는 것을
망설였을 것이다.
늦은 시간에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느니,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느니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런 계산을 하기 이전에 이미
'씨앗젓갈'이 올려진 한입이 입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얼음을 탄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을
따라 마셨다.
몇 달 동안 매달렸던 바카라 한 권을 끝낸
날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없이 내 현관 문고리에
저녁거리 한 가지를 걸어두고 간
날이었다.
"에이~ 그래 파티하자!"
따뜻하게 데워진 밥 한 젓가락 위에
씨앗젓갈을 올리자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아, 맛있다.”
그 말이 저절로 나왔다.
구부정한 거북목이 되는 줄도 모르고,
거의 매일 저녁 나는 바카라상 위에 앉아
남들 퇴근한 저녁시간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행여 다음 문장을 잊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그것도 주제는 다르지만 바카라 세 권을
동시에 매일매일 가랑비에 옷 적시듯
쓰고 있었다.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닐 때가 많다.
"고생했어요.”
“바카라 완성해서 축하해요.”
누군가 이런 말을 직접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퇴근한 사람의 집 문고리에 조용히 음식
하나를 걸어두는 일.
‘밥에 비벼 먹으면 맛있어요’라고 문자
한 줄 보내는 일.
이 정도면 충분할 때도 있다는 사실.
몇 달 동안 바카라을 쓰면서 수없이 많은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오늘 나를 가장 따뜻하게 만든 문장은
“밥에 비벼 드세요.”라는
아주 짧은 이 문장이었다.
밤 10시 10분.
나는 결국 햇반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늦은 밤 먹은 밥이라 조금 찔리기는
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바카라 한 권을 끝냈다는 안도감과 누군가
나를 생각해 주었다는 작은 고마움이
밥 한 그릇에 함께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씨앗젓갈에는 명란과 오징어와
견과류만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말없이 건네온 사람의 마음의 온도가
조금 더 들어 있었다.
https://suno.com/s/qJ2MBljFd0xCls5
https://suno.com/s/qJ2MBljFd0xCls5U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몇 달을 품어온 한 권의 바카라
오늘에서야 조용히 끝을 맺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문 앞에
누군가의 마음 하나 걸려 있었네
작은 종지에 한 숟갈 덜어
그냥 맛만 보려 했는데
고소한 씨앗 사이 따뜻한 정이
지친 하루 끝에 번져 오네
오오오오오
밤 열 시 십 분, 따뜻한 밥 한 그릇
말없이 건네온 마음을 비벼 먹는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어도
나는 오늘 충분히 위로받는다
오오오오오
문고리에 걸린 작은 마음 하나
긴 하루보다 오래 남는 온기
밤 열 시 십 분, 늦은 저녁이지만
오늘은 참 따뜻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