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 독 사이, 키르케

오디세이 3

by남궁인숙

'키르케'는 경계에 서 있는 여신이었다.

신이면서 인간적인 욕망을 품고 있고,

치유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파괴할 수도

있다.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을 얻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순간 오히려 사랑에서

멀어진다.

키르케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 모순 때문일 것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키르케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로

등장한다.

그녀는 아이아이에(Aeaea)라는

섬에서 살아간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이

이 섬에 도착하면서 키르케와 만나게

된다.

키르케의 궁전에 들어간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음식을 대접받는다.

그러나 그 음식에는 약물이 섞여 있었고,.

그것을 먹은 사람들은 돼지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인간의 정신은 그대로인데 몸만 동물로

바뀌어버리는 끔찍한 변신이다.

그녀의 궁전 근처에는 사자, 호랑이, 사슴,

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간다.

동물의 형체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단어가 하나 등장한다.


'파르마콘(pharmakon).'


고대 그리스어 'pharmakon'은

약이나 치료제를 뜻하기도 하지만

독, 약물, 마법적 약제를 가리키기도 한다.

오늘날 영어의 'pharmacy'와

연결되는 어원이다.

하나의 물질이 누군가에게는 약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오래된

인식이 이 단어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파르마콘은 매우 흥미롭다.


치유와 파괴는 서로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물질 안에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사용하는가 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해진다.


키르케가 바로 그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사람을 동물로 만들 수 있지만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었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든 것도 키르케였고, 나중에 그들을

다시 인간으로 회복시킨 것도

키르케였다.


극 중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작에는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의 마법을 견딜

수 있었던 데에는 한 포기의 풀이

등장한다.


헤르메스는 키르케에게 가는

오디세우스에게 신들이

'몰리(moly)'라고 부르는 약초를

건네준다.

『오디세이아』에는 그 식물의 뿌리는

검고 꽃은 우유처럼 희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 풀 덕분에 오디세우스는 키르케가

준비한 약물을 마시고도 동물로 변하지

않는다.

거대한 힘이 언제나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휘둘러 바다를

뒤흔들어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키르케의 힘은 작은 잔 속에

담겨 있었다.

허브 몇 잎, 뿔 뿌리 하나, 작은 사발 속의

액체가 한 인간의 모습을 바꾸어버린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키르케의 마법은

더 은밀하게 느껴진다.

힘은 반드시 큰 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때로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무엇이다.


그러나,

힘을 가졌다고 외로움까지 전부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키르케는 무서운 마녀라기

보다 외로운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키르케의 어두운 면을 알 수 있다.

바다의 신 '글라우코스'가 '스킬라'를

사랑하자 키르케는 글라우코스에게

마음을 품는다.

그러나 그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질투심에

사로잡혀 약초와 주문으로 '스킬라'를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또 '피쿠스'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 역시 '새'로 변신시킨다.


여기서 키르케는 비극이 시작된다.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사랑을

통제하려는 욕망으로 변하게 된다.

사랑은 마법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인데,

키르케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사랑을 해결하려고 했다.

마음을 얻지 못하자 몸을 변화시켰고,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상대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녀에게는 사람의 모습을 바꿀 능력은 있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바꿀 능력은

없었다.

그 차이를 깨닫기까지 키르케는 수많은

경계를 넘는다.


약과 독 사이를 넘고,

인간과 동물 사이를 넘고,

신성과 인간성 사이를 넘는다.

사랑과 소유의 경계도 넘는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마법을 가진

존재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있었다.

바로 '타인의 마음'이었다.


키르케를 생각하면 결국, '파르마콘'

이라는 단어로 돌아가게 된다.

같은 것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힘도 그렇다.

사랑도 그렇다.

관계도 그렇다.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은 사랑이지만,

그 사람을 내 뜻대로 바꾸려는 순간

그 사랑은 독이 될 수 있다.


어쩌면 키르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오래된 마법은 사람을 동물로 변하게

하는 주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감정이

어떻게 하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키르케의 이야기를 다시 읽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고대인에게 바다는 미지의 세계였다.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익숙한

질서를 떠나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바로 그 바다 위를

떠돌았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한 척의 배에

부하들을 태우고 고향 이타카를

향했지만, 그의 귀환은 곧 수많은

낯선 존재와의 만남이 되었다.

그 시대에 낯선 이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중요한 질서였다.


어제 이야기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손님을 맞는 환대의 관습이

‘크세니아(xenia)’였다.

낯선 이가 찾아오면 먼저 자리를 내어주고,

음식을 내고, 술을 따랐다.

이름과 목적을 묻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여행자가 누구인지 알기 전에 먼저

인간으로 대접하는 것,

그것이 환대의 기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디세이아』에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낯선 이를 우리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키르케의 섬, 아이아이에(Aeaea)에서도

그 질문은 이어진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숲 속에서

키르케의 궁전을 발견하고,

키르케는 그들을 안으로 불러들인다.

자리를 내어주고 음식과 술을 준다.

겉으로만 보면 완벽한 환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음식에는 약물이 섞여 있었다.

부하들이 그것을 먹자 키르케는 지팡이로 그들을 건드리고 돼지로 변하게 한다.

몸은 짐승으로 변했지만 정신은

인간인 채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키르케는 왜 자신을 찾아온 인간들을

짐승으로 만들었을까.


호메로스는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상상해야 한다.

어쩌면 키르케는 오랜 시간 혼자 자신의

세계를 지키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이 곧 위험을

받아들이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궁전에 들어온 사람을 먼저

무력하게 만들어야 안심할 수 있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키르케의 마법은 '공격'이라기보다 '방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은 때때로

누군가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먼저

거리를 만든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상대를

밀어내고,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의심한다.


키르케에게는 마법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경계심은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상대의 모습을 바꾸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키르케의 궁전에 들어간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단 한 사람에게는 그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바로 '오디세우스'였다.

헤르메스가 건네준 신비한 약초 몰리를

지닌 오디세우스는 키르케가 건넨 약물을

마시고도 돼지로 변하지 않는다.

키르케는 늘 자신이 지배하던 방식이

처음으로 실패하는 순간을 맞는다.


아마도 키르케에게 가장 놀라운 것은

오디세우스가 강한 전사라는 사실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법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키르케는 상대를 바꿈으로써

관계의 주도권을 가졌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바뀌지 않았다.

도망가지도 않았고,

짐승이 되지도 않았다.

키르케와 같은 모습으로,

인간의 모습 그대로 그녀 앞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진다.


한쪽이 상대를 지배하는 관계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관계로 바뀐다.

키르케는 결국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오디세우스 일행은 그녀의 섬에

머무르게 된다.


나는 이 장면이 흥미로웠다.

누군가를 내 방식으로 바꾸어야

안심되는 관계가 있고,

상대가 나와 다른 모습 그대로 존재해도

견딜 수 있는 관계가 있다.


키르케는 사람을 짐승으로 바꾸는

마법보다 더 어려운 일을 오디세우스를

통해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상대를 바꾸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낯선 이를 낯선 사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오디세이아』의 긴 항해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 질문도 그것일

것이다.


바다는 늘 낯선 사람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문을 여는 사람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그를 적으로 만들 것인가.

짐승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맞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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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통히지 않는 사람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미지의 바다 끝 작은 섬 하나

낯선 발걸음 문 앞에 멈추고

음식과 술잔 건네던 그 손에

감춰둔 상처가 마법이 되었네



사람의 모습은 바꿀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바꿀 수 없었네

단 한 사람, 변하지 않은 그 앞에서

키르케는 처음 사랑을 배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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