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스, 늙은 개

오디세이 4

by남궁인숙

바람을 가르며 오디세우스와 함께

사냥하며, 그를 따르던 개가 있었다.

주인이 전쟁터에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아도 묵묵히 스무 해를 기다린 개,

'아르고스'다.


젊은 시절의 아르고스는 누구보다

빠르고 영리한 개였다.

오디세우스가 사냥에 나설 때면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고, 들판과 숲을

함께 누볐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위해

고향 '이타카'를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마침내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변했고,

왕궁의 질서도 변했다.

오디세우스가 없는 왕궁에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남자들이 들어앉아 그의 재산을

먹고 마셨다.

주인이 사라진 집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바빴다.

그 시간 동안 '아르고스'도 늙었다.


한때 들판을 질주하던 사냥개는 이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돌봐 주는 사람도 없었다.

늙고 병든 몸으로 왕궁 밖에 누워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지의 모습을 한 한 남자가 왕궁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르고스는 알아보았다.

스무 해 전 자신과 함께 들판을 달리던

사람,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던 사람,

자신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바로

그 주인이었다.


아르고스는 이제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달려갈 수도 없었고,

주인의 품에 뛰어들 수도 없었다.

그저 귀를 조금 움직이고 아주 천천히

꼬리를 흔들 뿐이다.

아주 힘겹게.


그 작은 움직임 속에 스무 해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오디세우스 역시 아르고스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했다.

왕궁을 차지하고 있는 구혼자들에게

자신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

다가가 안아 줄 수도 없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러 줄 수도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아르고스는 주인을 다시 본 직후

꼬리를 내리고 숨을 거둔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이

끝났다는 듯이.......


나는 이 장면이 가장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아르고스가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그는 전쟁에서 싸우지도 않았고,

주인을 구하지도 않았다.

긴 모험을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기다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사람은 기다리다 지치면 마음을 바꾼다.

약속을 잊기도 하고,

관계를 정리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마저 조금씩

희미해진다.


사람 마음이 어떻게 늘 같을 수 있느냐고

종종 말한다.

아르고스의 마음은 스무 해 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왕궁의 사람들이 주인을 잊어 가는

동안에도, 늙은 개 한 마리만은 자신의

주인을 잊지 않았다.


더 인상적인 것은 오디세우스가

돌아왔을 때였다.

그는 왕의 옷을 입고 돌아오지 않았고,

더욱 화려한 갑옷도 없었다.

누더기를 걸친 늙은 거지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르고스는 주인을 알아보았다.

겉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이 있다.

내가 잘 나갈 때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초라해졌을 때에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

화려한 모습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을 때에도 변함없이

나를 바라보는 사람,

어쩌면 '신의'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조건을 보고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기억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속에서 그의 자리를

함부로 치우지 않는 것,

아르고스는 스무 해 동안 왕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을 기다렸던

것이다.

왕관도 권력도 필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고 따랐던 사람

하나면 충분했다.


그래서 아르고스가 마지막으로 흔든

꼬리가 더욱 애틋했다.

그것은 반가움이고, 안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 참아 온 작별 인사였을

것이다.


‘드디어 돌아왔군요.’


‘이제 나는 괜찮습니다.’


스무 해 동안 기다린 늙은 개는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신의를 지켰다.

사람들이 모두 변한 왕궁에서 끝까지

변하지 않은 존재였다


어쩌면 오디세우스가 진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가장 먼저 증명해 준

존재는 왕궁도, 가족도 아니고

그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늙은 개 한 마리, '아르고스'였을 것 같다.




https://suno.com/s/ooU0hDrrINNmY0zf



스무 해의 기다림, 아르고스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그날

당신의 그림자였던 나, 아르고스

긴 세월 모두 지나가도

한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렸네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

돌아왔군요, 나의 사람

이제야 당신을 알아봅니다

힘없는 꼬리 한 번 흔들며

스무 해 기다림을 내려놓아요

마지막 눈에 당신을 담고

이제는 편히 잠이 듭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