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극혐러가 여름의 중심으로 가기로 결심한 이유
“각자의 방식으로 계곡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만
봐도 에너지가 채워졌다.
어쩌면 여름을 싫어했던 건 여름을 즐기는 법을
몰라서이지 않을까 “
여름을 피하던 내가 계곡으로 향한 이유
갑자기 계곡이 가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푹푹 찌는 뜨거운 햇볕도, 인파로 북적이는 휴가지도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히는 나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나와보자고, 그냥 나를 밖으로 끌고 나가고 싶었다. 나는 늘 여름휴가 대신 집에서 안전하게 피서를 즐겼다. 진짜 휴가는 겨울로 미뤄두곤 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피하지 말고 여름의 한가운데로 가보자.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계곡으로
수락산역 1번 출구로 나와 10분쯤 걸었을까.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물소리가 졸졸 흐르는 벽운계곡이 나타났다. 수락산 자락길에 접어든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시원한 물줄기를 마주한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등산길도 생각보다 수월했다. 등산 초보인 나에게 데크로 잘 정비된 수락산 길은 걷기에 부담스럽지 않았고, 초록이 가득한 길을 걸으며 주변의 상쾌함을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등산로를 조금 더 즐겨보고 싶어 치유의 숲 방향으로 걸었다. 등줄기와 이마에는 연신 땀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견딜 만했다. 무섭기만 했던 39도의 폭염에서 고작 몇 도 내려갔을 뿐인데, 더위가 묘하게 참을 만했다. 곧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땀을 흘린 뒤 시원함이 기다린다는 것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은 덥고 힘들어도 이 과정이 지나면 시원한 바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을 안다면, 지금의 어려움도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힘든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을 지나 다음의 좋은 순간을 더 깊이 즐기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의 휴식기 뒤에는 분명 좋은 날이 올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이 땀방울마저 기분 좋게 즐겨보자고 다짐했다. 목표가 정상 정복이 아니니 나는 가볍게 40분 정도 걷고 다시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내려왔다.
계곡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알려준 것
하산을 하며 발을 담그고 쉬기 좋은 자리를 찾아보았다. 사람이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곳. 그늘이 드리워져 서늘함을 오래 품고 있었을 것 같은 자리에 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오랫동안 서늘함을 머금고 있던 물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등줄기에 맺혀 있던 땀이 시원하게 식어갔다. 얕은 물속에서는 송사리 떼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의 작은 움직임에도 떼를 지어 방향을 바꾸는 모습이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물멍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계곡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가만히 바카라을 읽는 사람. 풍경을 그리는 사람. 바위 위에 돗자리를 펴고 달콤한 낮잠에 빠진 할아버지.
옥수수와 고구마 같은 주전부리를 나누어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아주머니들.
서로에게 물을 튀기며 깔깔대는 체격 좋은 청년들까지.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좋아졌다.
각자의 방식으로 계곡을 누리는 그 활기찬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나는 여름을 싫어했던 게 아니라, 여름을 즐기는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닐까.
동네 목욕탕에서 여름을 마무리하다
두 시간 남짓 계곡에 앉아 바카라을 읽고 물멍을 즐긴 뒤,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 동네 목욕탕에 들렀다.
땀에 젖은 몸을 씻어내고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데는 따뜻한 온수 목욕만 한 것이 없었다.
따뜻한 탕 속에 몸을 담그니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몸이 두 배쯤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시원한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는데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여름을 피하려 했던 건, 어쩌면 여름이 싫어서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름을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법을 몰랐던 것이 아닐까
여름의 모든 것을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여름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순간을 하나씩 찾아내면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여름 극혐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좋아하지 않는 계절에도 내가 좋아할 순간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