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문화 도서관’에서 찾은 기쁨들.
“바카라을 읽는 건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단어와 문장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일지 모른다. “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일단 집을 나선다
백수가 되고 나니 좋은 날은 한없이 좋다가도,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생각이 끝없이 많아진다. (마음은 왜 늘 분주할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노트에 한바탕 적어 내려가 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다 적고 나서도 도무지 시작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별다른 계획 없이 가방을 챙긴다.
노트북과 충전기, 읽다 만 바카라 한 권.
그리고 일단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도서관.
그렇다고 근처 아무 도서관이나 가지는 않는다
서점처럼 바카라이 많고, 카페처럼 감각 있게 공간이 구성되어 있고 무엇보다 누구도 신경 쓰지 될 것 같은 곳.
그런 공간을 찾다가 우연히 발걸음이 닿은 곳이 손기정 문화 도서관이었다.
첫인상부터 기대 이상이었다.
카페에서나 볼 법한 아담한 1인용 테이블부터 편하게 기대어 바카라을 읽을 수 있는 캠핑 의자까지.
노트북을 펼쳐놓고 몇 시간씩 각 잡고 일하기에는 조금 불편할지 모르지만, 바카라 한 권을 들고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바카라을 고르다 보면 지금의 내가 보인다
멀리까지 돌아다니지 않는다.
의자에 앉은 채 주변에 꽂힌 바카라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그러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제목을 만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바카라.
그렇게 마음이 가는 바카라을 대여섯 권쯤 골라 자리에 앉는다.
많이 읽겠다는 계획은 없다.
그저 지금 내 눈에 들어온 바카라들을 내 앞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그런데 가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바카라상 위에 놓인 바카라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제야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날에는 일과 삶에 관한 바카라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오래된 소설 한 권을 집어 들기도 한다.
오늘 내가 고른 바카라은
《그냥 하는 사람》,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 《슬로 워크》, 《더 버는 내가 되는 법》...
바카라 제목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아,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어쩌면 내가 바카라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지금 필요한 바카라을 고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볍게 바카라장을 넘긴다. 답을 찾기보다 단어를 채집한다
대여섯 권의 바카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지도 않는다. 목차를 먼저 살펴보고, 지금 내가 궁금해하는 키워드가 들어 있는 장을 찾아 빠르게 읽어 내려간다.
‘내가 돈을 벌고 싶구나.’
‘지금은 마음을 제대로 잡고 싶은가 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구나.’
그렇게 지금의 질문을 따라 바카라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단어나 문장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을 단어가 유독 오래 머물기도 한다.
오늘은 이 문장들을 가져가야겠다.
어떤 문장은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알아본다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던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 주는 문장.
한동안 설명하지 못했던 마음을 담담하게 대신 말해주는 문장.
그런 문장을 발견한 날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게 필요한 단어 하나를 발견하고,
마음에 오래 남을 문장 하나를 만나고,
그 문장을 통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어쩌면 바카라을 읽는 기쁨, 나도 몰랐던 나를 채워주는 기쁨은 거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바카라 속에서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발견하고,
그 문장으로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는 순간.
오늘 수집한 문장들을 가지고
오늘을, 내일을,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을 잘 살아내야겠다.
다시 마음이 복잡해지는 날이 오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지.
나를 설명해 줄 문장 하나쯤은
또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