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다 괜찮다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보고

by푸른 꽃

영화는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로 시작한다. 가을날 화면 가득한 벚꽃을 보고 있으려니 지나간 봄이 새삼스럽다.


계절은 잘도 지나가는데 나는 제자리인 것 같은 때가 있다.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면 문득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있다.

‘앙’은 앙꼬의 앙으로 팥소를 의미한다. 밀가루와 계란을 반죽해 납작하게 구운 두 장의 빵 사이에 단팥을 넣는다. 일본에서는 도라야키라고 부른다.


도라야키 가게를 운영하는 센타로는 무기력해 보인다. 과거의 실수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손님도 거의 없어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벚꽃이 흐드러진 길을 걸어온 76세의 도쿠에가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던 센타로도 도쿠에가 만든 단팥을 맛보고 마음을 바꾼다.


도쿠에가 팥을 만드는 모습은 조금 특별했다.

팥을 씻고 삶고 단맛을 내는 과정이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팥을 대하는 마음이었다. 그녀는 팥 하나에도 지나온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팥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이 있었을 것이고, 어떤 바람을 맞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그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나는 그 장면에서 멈추었다.


팥은 그냥 팥 아닌가.

씻고 삶고 만들면 그만 아닌가.

살면서 팥의 사정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도쿠에가 만든 단팥 덕분에 가게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무기력하던 센타로에게도 조금씩 생기가 돈다.


그렇게 잘되나 싶었는데 도쿠에가 한센병 환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격리되어 살아온 도쿠에는 결국 가게를 떠난다.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함부로 판단받으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녀는 작은 것 하나도 가볍게 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내 시간을 그렇게 바라본 적은 별로 없었다. 잘한 것과 못한 것,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나누기 바빴다.

도쿠에는 센타로에게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고 듣기 위해 태어났다고.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살아갈 의미가 있다고.

대단해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잘하고 싶었고, 들인 시간만큼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시간은 아까웠다.


마음먹은 대로 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별것 없이 지나가 버린 것 같은 날도 많았다.

도쿠에가 세상을 떠난 뒤 다시 봄이 온다. 벚꽃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에서 센타로는 도라야키를 판다. 예전과 달리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나는 그 장면이 좋았다.


그는 여전히 도라야키를 팔고 있었다. 변한 것은 센타로 자신이었다. 가게 안에 갇혀 있듯 하루를 보내던 사람이 이제는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부른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이다.


지금의 모습만 보고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비 오는 날도 있었고 맑은 날도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다 괜찮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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