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윗 프랑세즈>를 보고
나에게는 그런 음악이 없다.
몇 소절만 들어도 오래전 어느 날로 돌아가게 하고, 잊고 있던 사람의 얼굴과 그날의 공기까지 되살리는 음악.
가을이라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초콜릿 하나쯤 입에 넣은 것처럼 단맛이 남았으면 했다. 그렇게 고른 영화가 <스윗 프랑세즈>였다.
1940년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의 작은 마을 뷔시.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시어머니와 살아가던 루실의 집에 독일 장교 브루노가 머물게 된다. 적군이니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매일 밤 그의 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브루노는 군인이기 전에 작곡가였다. 전쟁에 지친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이 만든 곡을 연주했고, 음악을 공부했던 루실은 그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둘 사이에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었지만, 음악에는 그런 선이 없는 듯했다.
정원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웃는다. 루실은 남편에게 결혼 전부터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마음에 브루노가 들어온다.
브루노가 루실에게 춤을 청한다. 전쟁도 남편도 제복도 잊고 두 사람이 그저 남자와 여자로만 있을 수 있을까.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독일 장교를 살해하고 쫓기게 된 소작농 브누아를 루실이 숨겨준다. 브루노는 이 사실을 알고도 루실을 붙잡는 대신 떠날 수 있도록 돕는다.
두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헤어진다. 멀어지는 루실을 바라보던 브루노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우린 서로의 감정을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한마디조차도.”
달콤한 사랑을 기대하고 골랐는데, 두 사람의 사랑은 맛도 보지 못한 초콜릿 같았다. 포장을 뜯어놓고 한입 베어 물기도 전에 끝나버린 사랑이라니.
아쉬움은 두 사람의 평범한 하루를 상상하게 했다. 브루노에게 제복이 없고 루실에게 기다려야 할 남편도 없다.
저녁이면 브루노가 피아노를 치고, 루실은 바카라을 읽는 척하다가 자꾸 같은 페이지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연주가 멈추면 기다렸다는 듯 “왜 멈췄어요?” 하고 묻고, 브루노는 다시 건반에 손을 올려 이번에는 루실이 좋아하는 부분을 조금 더 길게 연주했을 것이다.
어떤 날에는 사소한 일로 다투었을 테고, 먼저 말을 걸기 싫어 둘 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밤이 되면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렇게 사랑했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에 한 번쯤 다시 만나지 않을까. 전쟁이 끝난 어느 날 제복을 벗은 브루노가 루실 앞에 나타나는 장면을 기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루실은 파리로 가 레지스탕스에 합류했고, 전쟁은 그 후로도 4년 동안 계속되었다. 루실은 브루노가 살아남았기를 바란다.
그들이 다시 만난 곳은 삶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브루노가 만든 ‘스윗 프랑세즈’가 흐르면 루실은 그에게로 간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사람, 정원에서 함께 웃었던 사람, 마지막 순간 자신을 보내주던 그 사람에게로.
음악은 참 이상하다.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잊어도, 몇 소절이 들리는 순간 마음은 먼저 그때로 가버린다. 듣던 장소와 계절, 곁에 있던 사람까지 하나씩 따라온다.
음악은 그 사람뿐 아니라 그를 좋아하던 때의 나까지 데려온다. ‘스윗 프랑세즈’가 흐를 때마다 루실도 잠시 그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나에게는 아직 그런 음악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