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보고
수필 수업에 신입 회원이 들어왔다. 수업은 각자의 글을 차례로 낭독한 뒤 회원들이 합평하는 방식이었다. 첫날이라 그녀는 글을 써오지 않았다.
신입 회원이 들어오면 나는 종종 같은 말을 해주곤 했다.
“가늘고 길게, 꾸준히 가요.”
나 역시 그렇게 13년째,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쓰고 싶은 마음만큼은 늘 간절했다.
그날도 내 순서가 되어 글을 읽었다. 신입 회원이 합평을 했다. 그녀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짚어가며 글을 헤집었다. 이 표현은 어떻고, 이 부분은 이해가 안 된다, 왜 이렇게 썼느냐는 말이 이어졌다. 그녀는 글쓰기 수업이 처음이라고 했다.
내 글이 아니라 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속에서는 다른 말도 올라왔다.
아니, 본인은 글도 안 써왔으면서.
물론 오래 썼다고 내 글이 비평에서 비켜날 이유는 없다. 회원들이나 선생님의 지적이 유난히 매서운 날이면 며칠씩 앓곤 했다. 심지어 몇 달씩 수업에 나가지 않기도 했다.
이렇게 쓰면 뭐라고 할까. 이 문장은 모호하다 하지 않을까. 또 혼잣말 같다고 하면 어쩌지. 모진 합평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검열이 계속되고 있었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칼 캐스퍼는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레스토랑 주인은 손님들이 익숙해하는 메뉴를 요구한다. 음식 평론가가 찾아온 날에도 칼은 늘 하던 음식을 내놓고 혹평을 받는다. 평론가와 충돌한 그는 결국 레스토랑까지 그만둔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 셰프가 추락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는 칼이 레스토랑을 나온 뒤부터 오히려 신이 난다.
칼은 마이애미에서 낡은 푸드트럭 한 대를 얻는다. 아들과 친구와 함께 트럭을 닦고 고친다. 번듯한 주방도, 유명 레스토랑의 간판도 없다. 메뉴도 단출하다.
그 작은 공간에서 칼은 쿠바 샌드위치를 만든다. 음악을 틀어놓고 몸을 움직이며 요리하고, 아들과 함께 도시를 옮겨 다닌다. 뜨거운 철판 위에서는 고기가 익고 치즈가 녹는다. 사람들이 트럭 앞에 줄을 선다. 레스토랑에서 요리하던 때와는 달리 얼굴이 훨씬 즐거워 보였다.
그가 레스토랑을 나온 것이 내심 통쾌했고 나까지 신이 났다.
문득 온라인카지노에서 글을 쓰는 내가 떠올랐다.
쓰고 싶은 것을 그냥 쓴다.
영화를 보고 오래전 내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별것 아닌 물건 하나를 붙들고 기억을 더듬는다. 무거운 이야기에 지치면 가벼운 이야기도 써본다. 전에는 굳이 글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글이 된다.
물론 온라인카지노라고 남의 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면 누가 읽었는지 궁금하고, 반응에 따라 기분이 엇갈린다. 올린 다음에도 한 단어씩 빼고 넣기를 반복한다.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다만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말에서 답을 찾았다면, 지금은 내가 써보고 싶은 것을 먼저 써본다.
새로 들어온 회원들에게 하던 그 말은 지금의 나에게도 유효하다.
가늘고 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