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의 레시피〉를 보고
무언가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면 주변 사람들에게 답을 구하곤 했다. 어떤 게 더 맞는지, 혼자 몇 번씩 생각해 보고도 굳이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상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마지막에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그래도 네가 결정해야지.”
맞는 말이지만 맥 빠지는 말이기도 했다. 그걸 몰라서 물은 게 아니었으니까. 조언보다 정답이 간절했다. 그건 네게 맞지 않는다거나, 다음 기회를 기다려 보라거나.
영화 〈사랑의 레시피〉를 보다가 케이트가 정신과 의사에게 하는 말에 솔깃했다. 인생에도 요리바카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레시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케이트는 요리사다. 주방에서는 망설일 일이 거의 없다. 재료와 순서, 불의 세기와 시간을 정확히 안다.
하지만 주방 밖에서는 다르다. 사고로 언니를 잃고 어린 조카를 돌보게 되지만, 아이에게 무얼 먹여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헤맨다. 자신과는 영 다른 방식의 요리사 닉과도 부딪힌다.
나도 그런 바카라이라면 한 권 사고 싶다. 아니, 한 권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종이 한 장이면 된다.
요리는 그나마 친절하다. 파스타 봉지에는 몇 분 삶으라고 쓰여 있다. 오븐에도 시간이 있고, 고기도 너무 오래 익히면 질겨진다. 때를 놓치면 맛이 달라진다.
삶에도 때가 있다고들 했다. 대학도, 취업도, 결혼과 출산도. 나는 그 시간표에서 자주 늦는 쪽이었다.
스무 살에 공무원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 그 뒤로 일과 공부를 병행했고, 대학 공부를 마친 스물일곱 무렵 다시 시험을 볼까 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늦은 줄 알았다.
그 무렵 엄마가 어디선가 점을 보고 왔다.
“너 국가고시 보면 무조건 합격이래.”
이보다 더 확실한 말도 없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답이 아닌가.
그런데도 시험을 보지 않았다. 스물일곱이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다고 여겼다.
지금 돌아보면 스물일곱이 뭐가 그렇게 늦었을까 싶다. 그때 다시 시험을 봤다면 어땠을까. 엄마가 받아온 점괘대로라면 붙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확인할 길은 없다.
그때 한 번 더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은 남아 있다.
인생의 레시피가 정말 있다면 나는 여전히 받아볼 생각이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적어주면 좋겠다. 하지 말아야 할 건 형광펜이라도 쳐주고.
다만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는 적지 않아도 좋겠다.
언제가 적당한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