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가리는 음식이 있네?
엄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야 시나브로 그녀를 본다. 마치 한 번도 엄마를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엄마를 마주한다. 마냥 생소하지만은 않다. 엄마는 여전히 내 엄마이기도 또 그녀 자신이기도 하다.
본가에서 토마토야채스튜를 먹던 어느 날, 엄마가 토마토야채스튜에 있던 당근을 몰래 골라내다가 나에게 딱 걸렸다. 헐, 내가 카레 등에 든 당근을 빼고 먹으면 매서운 눈초리로 회초리를 대신하더니 엄마가 어린애처럼 당근을 골라낼 줄이야.
적잖은 충격이다. 엄마가 당근을 빼고 먹는 것을 본 것도, 엄마가 당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나 자신도. 엄마는 익은 당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싫다기보다 맛이 없단다. 그게 그 말이지 뭐. 그런데 당근케이크는 좋아한다. 나는 당근케이크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다. 아무튼 호불호의 경계는 알 수 없지만 자신만의 호불호는 명확한 특이한 엄마.
하루는 엄마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실은 ‘마지막’이라는 말을 빌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를 듣고 싶었다. 이렇게 돌려 물은 이유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보통 잘 대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엄마는 나의 질문을 매우 귀찮아하며 소갈비라고 답했다. 왜 소갈비를 마지막으로 먹고 싶냐 묻는 질문에 엄마는 ‘그거 꽤 귀찮게 하네.’ 하고 내 입을 막았다.
우연인지 엄마의 바람을 이루려 했던 것인지, 우리는 그 주 토요일에 소갈비를 먹었다. 결국 난 소갈비를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먹는 소갈비는 부드럽고 맛있었다.
어쩌면 엄마는 내가 질문한 당시 그때 먹고 싶은 음식이 소갈비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그런 식으로, 내가 궁금해하는 것의 반쯤만 보여준다. 왜 그렇게 답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것은 나도 가끔 저렇게 반응할 때가 있지 않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당근 안 먹는 엄마의 언어습관을 닮은 당근 안 먹는 딸일까?
나는 엄마보다 당근도 잘 먹고 내 의사표현을 다정하게 잘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해마다 나의 센스쟁이 아빠는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카드나 생일카드를 줬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공주에게’ 혹은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 카드에는 항상 ‘사랑하는 나의 유진’이라고 썼다. 오빠에게는 카드를 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사실 관심이 없다).
평상시 아빠는 엄마를 ‘유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엄마 본명 또한 ‘유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를 지칭하는 유진이라는 이름은 두 분의 연애시절 애칭 혹은 펜팔 이름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꽤 로맨틱하지 않은가?
엄마에게 왜 유진이라고 하는가 물어보니 유진이었으니까 유진이라고 한다는 성의 없는 답변에 부끄러워서 저렇게 말하는 건가 싶었다.
아빠에게 물어보니 나의 로맨틱한 상상 어쩌면 바람과는 달리 엄마가 아빠와 결혼하기 전, 학창 시절에 집에서 개명하려고 불렸던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와의 첫 만남에 자신을 ‘장유진’이라고 소개했고 아빠는 그 이름을 해마다 카드에 쓰는 거라고. 그저 엄마 말대로 유진이라서 유진이라고 불린 것뿐이다.
펜팔의 로맨틱함은 없지만 처음 만났을 때 불렀던 이름을 카드에서나마 불러보며 함께 한 세월을 톺아보는 애틋함이 두 분 사이에 있는가 보다. 지금 앞서 가는 엄마에게 “장유진 씨!”라고 부른다면 엄마는 뒤돌아볼까? 엄마를 ‘엄마’ 대신 ‘장유진’ 혹은 본명으로 불러 보는 상상만으로도, 내가 알지 못했던 어떤 시간이 슬쩍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다.
나는 원래 옥수수를 즐겨 먹지 않는다.
나와 반대로 엄마는 옥수수 덕후 같다. 매년 여름 옥수수가 집에 끊이질 않았다. 난 엄마가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까서 여러 알을 손에 쥐어주면 그것을 입에 홀라당 털어 넣고, 또 건네주면 손사래를 치다가도 자꾸 권하는 바람에 톡 털어 넣고를 네댓 번 반복하고 만다.
내 기억엔 서른다섯 살 전에 한 번도 스스로 옥수수 한 개를 다 먹어본 적이 없다. 한때 유행했던 마약옥수수도 그다지 찾아먹지 않았다. 먹는다 해도 마약가루 맛 때문에 먹지 옥수수가 좋아서 먹는 것은 아니다.
반면 엄마는 2018년 제주여행에서 우연히 본 ‘초당옥수수 팝니다!’ 팻말을 본 후에 초당옥수수를 사 먹고야 말겠다며 제주도 하나로마트마다 전화를 걸어 초당옥수수 나왔냐고 물어 찾아내서 사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옥수수에 시큰둥한 내 반응이 못마땅한지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는지 이해를 못 하겠단다. 정작 엄마는 어릴 때, 외할머니가 까주던 옥수수를 먹지 않았다면서 말이다.
엄마아빠는 자신에게 맛있는 걸, 나와 오빠도 꼭 맛있다고 공감해 주길 바란다. 외할머니가 맛있다 하시던 옥수수의 맛을 늦게 깨달은 아쉬움이, 엄마의 그 욕심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와 함께 제주도 하나로마트를 뒤지며 찾아낸 초당옥수수를 먹은 뒤로는 달콤함이 톡톡 터지는 초당옥수수 예찬만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아주 조금은. 찰옥수수는 아직 내겐 너무 조금 먼 옥수수지만.
난 옥수수 말고 포슬포슬하게 찐 부드러운 감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어릴 때, 찐 감자는커녕 감자반찬 자체를 먹은 기억이 거의 나질 않는다. 다른 집에서는 흔히 먹을 법한 감자볶음도 가끔씩 먹었다. 감자샐러드나 찐 감자는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했다.
엄마가 반찬 뭐해줄까 물으면 나는 주로 감자볶음을 해달라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감자를 좋아하지?’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제야 내가 어릴 적, 감자 반찬을 잘 먹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단지 엄마가 감자를 싫어했었던 것.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주로 밥상에 올려놓는데, 나 어릴 적만 해도 아빠 좋아하는 반찬이 주로 밥상에 올랐다고 한다. 그렇지만 감자 반찬은 아이들 기본 반찬이 아닌가 싶은데, 엄마가 감자를 싫어해서 감자 반찬 구경이 힘들었다는 것은 역시 엄마의 호불호를 보여준다.
이쯤에서 엄마의 호불호는 음식에 특히 강하게 작용하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에 대해 조금 더. 엄마의 호불호가 무엇인지 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