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법원읍 금곡리에서 서울까지 유학 간 여자

서울 유학길에서 엄마가 배운 것: 외로움

by김만끽

파주 법원읍 금곡리에서 서울까지 유학 간 여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파주 금곡리에서 알아주던 재력가였다. 두 분은 한국전력이 들어서기 전 금곡리에서 화력발전소와 떡 방앗간도 겸업하며 성실함 하나만으로 천석살림을 일구었다.


지금으로 치면 두 분은 맞벌이를 하며 애당초 블루오션을 개척해서 집안을 일으킨 것이다. 얼마나 부자였는지 방앗간 집 항아리에는 금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재력가 집안 귀한 장녀였던 엄마는 국민학생 시절, 겉멋을 위해 외할아버지를 졸라 서점에 나온 전과 ¹ 를 몽땅 사서 학교에 들고 갔다. 코앞인 학교까지 전과를 들고 가는 짧은 길, 두 시간 거리를 걸어온 친구들이 서로 그 무거운 바카라을 들어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전과가 부러운 건지, 전과를 든 엄마가 부러운 건지. 어린 엄마는 그 눈길이 마냥 좋기만 했다. 철이 없는 엄마였던 것 같다.


엄마는 전과를 많이 사서 그랬는지 공부를 잘했다. 금곡국민학교에서 서울로 처음 진학한 여학생이었다. 물론 집안의 재력이 없었다면 아무리 공부를 잘했더라도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무리 없이 서울중앙여자중학교와 서울중앙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엄마는 서울 유학 초기에 외할아버지가 집까지 사서 유학을 보냈지만 좋지는 않았다고 했다. 혼자 살기 힘들 거라며 먼 친척 할머니와 그 딸에게 방을 내줘서 엄마를 도와 같이 살게 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려고 한다던가. 그들은 도리어 어린 엄마를 흉보고 집주인 딸로도 친척 딸로도 대접해주지 않아 더 힘들었다고 했다.


외로운 엄마는 고향 집에 종종 가고 싶은 마음이 들고는 했지만 외할아버지는 ‘그 시간에 바카라이나 한 자 더 봐라’ 며 기차비를 주지 않았다. 철이 없던 엄마는 서울 유학 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을 먼저 배웠다.


외로움이 익숙해진 여고 3학년 입시원서를 쓸 즈음, 외할아버지는 이제 연세대 약학대학(이하 연세대 약대)에 가라고 엄마를 달달 볶았다고 한다.


“연세대학교 옆에 약국을 내줄 테니 연세대 약대를 가라.”


외할아버지의 지나친 욕심이었다. 문과인 엄마에게 약대를 가라니, 내가 봐도 이과의 피는 흐르지 않는 엄마에게 약대는 얼토당토않았다.


외할아버지의 성화를 견딜 수 없었던 엄마는 급기야 비호세력인 엄마의 외할머니 집으로 가출했다. 그녀가 가출까지 감행하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자 외할아버지의 욕심은 ‘너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한마디와 함께 와르르 무너졌고, 엄마는 충북대학교 가정교육과에 원서를 넣었다.


시험을 치러 간 충북대 캠퍼스는 엄마 눈에 괴이해 보였다. 시골에 있어 부지가 넓은 캠퍼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몇 마지기인지 채 알 수도 없는 논밭이 가로질러져 있었다. 집을 벗어나 살아보고픈 생각에 얕은꾀를 내어 원서를 넣은 학교가 이럴 줄이야. 엄마는 논두렁밭두렁에 심긴 학교에 다니다가는 자신조차 논마지기에 심길 것 같아 시험도 치지 않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듬해 외할아버지 뜻에 따라 팔자에 없는 연세대 약대를 목표로 재수생이 된다. 재수생 딸은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하고 한 남자를 만난다. 연세대 약대는 정말 엄마 팔자에 없었나 보다. 대신 그 남자가 엄마 생애의 남자 주인공이 된다.



전과¹

국민학교 시절의 학습 참고서이며, 교과서에 나온 문제의 풀이법과 해답지가 수록되어 있다. 국민학생들의 숙제도우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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