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물었다

독립할 즈음, 엄마는 독감을 앓았다

by김만끽

불통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엄마는 전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깨웠다.


우리는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뒤, 에어비앤비 호스트 차를 타고 퀸스타운에 가기 위해 오클랜드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가 남섬 퀸스타운에 내리는 찰나, 해시신루 ¹의 풍경은 밤 중 차단된 모녀의 지난밤 이야기를 잊게 하려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은 영혼마저 달뜨게 하는 울긋불긋 단풍과 어우러진 빛나는 눈 산이 두 여자를 설레게 했다.


두 여자 앞에 보인 신기루는 그저 신기루일 뿐이었음을 말해주는 듯, 우리 여행은 아주 잠시 고요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사라져 후커밸리 트랙 초입에서 다시 한번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만 것이다. 폭발 이후 여행을 떠올리면 후커밸리 트랙에서의 단발의 고성과는 또 다른 종류의 긴장이 가득했다.


후커밸리 트랙에서 엄마가 갤럭시를 빙하로 떠나보내고 생긴 휴대전화를 사이에 둔 긴장이었다. 바로 여행자는 두 명인데 휴대전화는 한 대라는 불편하고 숨 막히는 불안감! 하필 한 대 있는 휴대전화가 아이폰이고, 갤럭시 사용자인 엄마는 아이폰을 쓸 줄 몰라 빌려줄 때마다 알려줘야 하는 의존에 대한 짜증. 앞으로 이렇게 휴대전화 한 대로 한국에 연락도 하고, 사진도 찍고, 뉴스도 봐야 한다는 스트레스.


그렇게 불통과 긴장이 가득했던 여행 어디에도 내가 바란 고독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 경험들은 나를 다짐하게 만들었다. 오롯이 나만의 고독을 찾기로. 내가 꿈에 그리던 집, 나의 첫 번째 고독한 독립처가 될 수영구 광안동 44-16번지에서.





엄마가 물었다.


독립을 다짐했는데 그리 가까이 보이지 않았다. 집을 보는 안목은 높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봐도 먼지 한 톨 나올까 말까 하니, 땡전 한 푼 안 나오는 주머니 대신 부동산 블로그만 탈탈 털어보고 있었다. 한참 블로그를 뒤져보다가 나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내가 꼭 살고 싶었던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였다.


테라스에 텃밭을 일구고, 날 좋을 때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고기를 굽고, 내가 기른 야채에 고기쌈도 싸 먹으면 딱 좋을 법한 꿈의 공간을 찾았다. 말 그대로 꿈의 공간.


무언가에 꽂히면 멈출 줄도 지나칠 줄도 모르는 엄마의 성미를 닮은 내가 나타나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경제사정에 눈이 밝은 똑순이들은 결코 하지 않을 신용대출을 받아 엄마, 아빠에게 말도 없이 덜컥 테라스가 있는 그 집 광안동 44-16번지 2층 중 한 호수를 계약하고야 만 것.


엄마는 꼭 이렇게 급하게 신용대출까지 받아가며 독립을 해야겠냐며 말렸고 아빠는 엄마의 말에 가끔 양념을 치고는 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2017년 12월 16일, 유혈사태 없이 자주독립을 이뤄냈다. 아니, 사실 유혈사태는 엄마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어쩌면 겉으로 쿨하게 보이던 엄마에게는 피고름을 짜내듯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독립하기 일주일 전부터 엄마는 독감으로 한 주 내내 앓아누웠다. 평소에는 받기 힘들었던 딸년의 지극한 간호를 말로는 귀찮아하면서 버텨냈다.


그때 독감이 유행이기는 했지만 엄마의 아픔은 어떤 상실감, 또는 불안과 의문들이 결국 그 유행을 틈타 몸으로 나타난 것 아닐까 혼자 짐작해 본다.


계약일부터 이사랄 것 없이 차로 야금야금 짐을 옮겼다. 눈에 띄는 것, 그리고 당장 필요한 것 위주로. 살림은 대부분 구입하거나 선물을 받았기에 집에서 큰 짐이 옮겨간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도 나도 크게 실감하지 못했지만, 내가 입주예정일을 정한 후에는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매일 저녁시간을 함께 했다. 더더군다나 엄마가 독감에 걸려 겉으로나마 효녀 노릇을 하기 위해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수요일 즈음 입주를 하려고 했지만 하루 전 화요일에 아픈 엄마를 두고 가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가 거의 나아갈 즈음이 돼서야 나는 다시 내 고독한 독립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독립을 미루면 월세와 관리비지출이 아까울 것 같아 주말에 청소를 하고 돌아와 남은 짐 일부를 싸서 아빠 차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투덜거렸다. 뭐 하러 오밤중에 가느냐고. 나와의 하루를 잡고 싶은 엄마와 결심을 이루겠다는 나. 결국 내 결심이 이겼다. 쫓아다니며 내가 챙겨달라는 것을 챙겨주는 엄마, 투덜거리는 엄마의 사이에서 아빠는 말을 지켰다.


독립을 선포한 후, 엄마 질문은 항상 같았다.

“왜 집을 나가려고 하니?”


나는 그간의 감정을 묻어둔 채, 캥거루족으로 사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이제 나도 독립해야 할 나이라고 얼버무렸다. 내 독립처로 가는 아빠 차 안에서 엄마의 질문은 달랐다.


이번엔

“엄마, 아빠랑 한 집에 있는 게 힘들었어?”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는 약간의 물기가 섞여 있었다. 뜻밖의 질문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어색해서 덤덤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재밌었다고 했다.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내 대답에 엄마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집에 있는 동안 힘들고 행복하지 않은 일들이 더 많았을 텐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고. 그러고는 그녀는 이내 자신의 눈을 비볐다.


독립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누군가 독립하고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나는 출퇴근길의 풍경이라고 했다. 바닷가에 살던 나는 출퇴근길에는 항상 물을 만났었는데, 이사를 한 후부터는 부러 바다를 찾아가지 않고는 한동안 물을 만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꽤나 아쉬웠다. 또, 출근길에는 항상 아빠와 함께 아빠차로 나갔기 때문에 달음박질할 일이 없던 나는 출근 버스를 제시간에 맞춰 타기 위해 전력질주를 해야만 했다. 새롭고도 불편한 일이었다.


퇴근길에는 가끔 겪었던 만원 버스를 매일 겪었다. 이것은 매우 불편했지만 본가로 퇴근할 때처럼 환승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다.


독립하고 나의 삶은 출퇴근길 풍경과 같다. 새롭지만 아쉬우며 불편하기도 하고, 어떤 점은 외롭고 다른 점은 위안이 되는 보통의 삶이다. 좋고 싫음으로 나누기엔 우리가 선택하는 삶들은 너무 복잡하지 않은가? 아기캥거루였던 나의 생활도, 이제 9년 차가 되어가는 독립생활도 불규칙한 감정의 곡선들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독립하고 몇 개월이 지나 엄마는 또 물었다.

“혼자 사니까 좋니?”


나는

“이전처럼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은 삶을 살고 있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 주고 대답을 들어주는 엄마가 있는 것은 아주 좋다고 덧붙이려고 했지만 말할 기회를 뺏겼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든 생각이지만 엄마는 나에게


‘엄마, 아빠랑 떨어져 사는 게 이렇게 불편할지 몰랐어.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어.’


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내 입은 아쉽게도 입 바른 소리를 내뱉는다. 그 후로 엄마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눈치 없이 곧이곧대로 말한 모양이다. 엄마는 섭섭했을까?


솔직히 더운 여름에 샤워하고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맨 몸으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건 너무 편하다. 천국이 따로 없을 정도로. 가끔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허전하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멍하니 TV와 마주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것은 심심하다. 엄마 밥상이 내게 얼마나 큰 만족감을 주는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생각해 보니 좋은 건 좋고, 안 좋은 것은 안 좋은 것도 있다.


나는 내가 독립하면 본가 풍경이 냉랭하거나 아기캥거루를 잃은 상실감에 한동안은 젖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기우였나 보다. 엄마는 지인들과 평소처럼 잘 어울려 지내느라 내가 오랜만에 집에 방문한 날 집에 없었다. 아빠는 딸내미가 있을 때는 누릴 수 없었던 팬티바람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정작 본가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나뿐이었다. 그리고 전화로 현관 비밀번호를 묻는 나를, 곁에 있던 지인과 함께 한껏 딸의 실수를 즐기며 웃는 엄마는 편안해 보였다.






해시신루 ¹

환상을 믿을 수 없다는 뜻으로, ‘신기루’를 달리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