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금은 꼬박꼬박 내라고 했잖아
어느 햇살 좋은 날, 주식거래를 하던 토스를 열어보니 계좌가 압류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내 눈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나는 순간, 숨을 쉬기 힘들었다. 이것이 신종 피싱방법인지 고민했다. 화면에 관할 세무서 담당자 번호가 있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물었다. 담당자가 말하기를, 예전에 내가 대표로 이름을 올렸던 회사의 세금 체납으로 내 주식계좌가 압류됐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또 조각조각 나 버렸다.
그제야 얼마 전 국세청에서 받았던 압류예고장이 떠올랐다. 예고장을 받았을 때 아빠에게 물었었다. 그때 아빠는 세금이 밀린 건 맞지만, 너는 지금 대표가 아니니 상관없다고 말했다. 나는 혹시 모르니 체납된 세금을 조금씩이라도 갚아 달라고 누차 당부했다. 나는 아빠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눈앞의 압류 메시지가 그 믿음을 깨뜨렸다.
그 계좌에는 복지도우미로 일하며 조금씩 사 모은 주식이 고스란히 있었다. 그 돈을 모으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24년 3월 정보보안마스터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교육을 들을 때만 해도 수급비와 훈련수당이 따박따박 나와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정보보안 일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업의 문을 두드릴 생각도 못 했다.
훈련수당은 교육이 끝나자마자 끊겼다. 조건부 수급자인 나는 곧바로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급 혜택조차 못 받고 수급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제 어쩌나, 빌빌거리고 있던 5월, 다행히 입에 거미줄 치라는 법은 없었나 보다. 나는 가까스로 자활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복지도우미로 일하게 된 것이다. 자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삶을 다져 보려고 희망저축계좌Ⅰ에 가입하고, 매주 조금씩 소액주식투자도 시작했다.
세금이 불어난 사정은 이랬다. 내가 대표로 있던 법인이 번 돈은 그 법인의 세금을 내는 데 먼저 써야 했다. 그런데 아빠는 그 돈을 다른 법인으로 옮겨, 수원 찜질방의 세금을 메꾸거나 수리하는 데 썼다. 장부에는 우리 법인의 매출로 잡혔지만 돈은 이미 우리 통장을 떠난 뒤였다. 그러니 그 매출에 붙는 부가세와 결산 후 나온 법인세를 낼 돈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차라리 내 법인에서 찜질방 쪽으로 투자하는 형식의 약정서라도 만들어 두었다면, 돈이 흘러간 길이라도 명확히 남았을 텐데. 결국 원래 세금에 연체액까지 더해져 세금 산을 이루었다.
아빠는 그 와중에도 법인 차는 팔아서 아들내미 중고차 렌트는 해 줬을지언정, 체납 세금은 한 푼도 해결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순간에도 내 주식을 지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선 세무서에 내 사정을 말하고 10만~20만 원씩 갚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담당자는 체납 세금이 1,800만 원에 달하기 때문에 그 정도 금액을 분할 납부한다고 압류가 풀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나는 말 그대로 빡 돌아버렸다. 도무지 나를 추스를 수 없었던 나는 가족에게 불화살을 쏘았다. 차라리 오늘 당장 죽겠노라고 했다. 내가 뒤져야 이 일에서 해방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이제는 아무 희망이 없었다. 이제 겨우 빛을 보는가 했는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정말 죽는 게 낫겠다 싶었지만 나는 짊어짐을 택했다. 현재 명목상 이름만 빌려주고 법인 대표로 있는 엄마 친구분에게까지 해를 끼칠 수는 없고, 내 부모는 당장 체납 세금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내가 죽음을 마구마구 이야기하자 엄마 아빠는 그제야 사태가 심각하단 것을 안 것인지 넋이 빠진 것인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엄마는 본인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은 게 있는데, 지금 병이 있는 것 같으니 3개월 후에 진단받아 보험금을 타면 그 돈으로 세금부터 갚겠다고 했다. 아빠는 부동산 시장이 어려워지는 판국에, 겨울이 되면 일이 새롭게 시작될 테니 그때 돈이 들어오면 세금을 갚겠노라고 했다. 그들은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닌 불투명한 계획만을 이야기했다. 나는 두 사람의 말을 이번에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연을 끊었다.
내 딴엔 삶을 다시 빛잔치로 만들어 보려던 숭고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빚잔치가 시작되었다. 나는 모든 삶을 잃었다. 그렇지만 꾸역꾸역 토하듯이 체납 세금을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떼내어 갔다. 그 시간들은 내 장기를 갉아 내는 것 같았다. 모진 세월을 겪고도 여전한 아빠의 주먹호구식 경영관과, 엄마의 자기도 모르는 겨레붙이 편애가 체납 세금이 주는 충격만큼 컸다.
그렇게 여름이 통째로 날아갔다. 세금은 갚고는 있었지만 완납하려면 최소 5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건 그냥 ‘못 갚는 돈’이라고 단정해 버렸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9월 말쯤, 호또기라는 별명을 가진 동네 친구를 사귀었다. 그 친구는 마음이 완전히 꺼져 있던 나에게 다시 스위치를 켜 주었다. 덕분에 나는 ‘못 갚는 돈’이라고 단정했던 걸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은 갚아 볼 수 있는 돈’으로 다시 보게 됐다.
그 뒤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세금을 갚아 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세무서에 주식을 팔아 세금 일부를 납부할 테니 압류를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세무서가 압류를 풀어 준 뒤, 약속대로 주식을 처분해 삼분의 일 정도의 세금을 납부했다. 그러다 예전에 다른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다. 그 돈이 숨통이 되어 남은 체납 세금을 해결할 수 있었다.
체납 세금 사건이 있고 엄마는 나에게 종종 카톡을 보내곤 했다. 내용은 부모가 돼서 해 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거나 잘 있냐는 것이었다. 이전처럼 엄마가 위험한 결정을 할까 두려움이 일지는 않았다. 엄마의 카톡을 무심하게 씹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사과가 아니었다. 저번처럼 얼렁뚱땅 사과하고 유야무야 이번 일을 마무리 짓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12월쯤이었을까.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카톡과 달리 전화는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 받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엄마는 목소리로 분명하게 사과를 전했다.
“만끽아, 엄마가 여러 가지로 부족해서 미안해. 니가 좀 이해를 해 줘.”
나는 뭐가 부족하냐고 물었다.
“아니, 난 너하고 오빠를 똑같이 대한다고,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만히 돌이켜보니까 현이가 걸핏하면 엄마 찾고 아버지 찾고 뭐 이러는 거 그런 게... 넌 그래도 나름대로 어려워도 독립해서 니 단도리를 하잖아. 근데 어휴...”
나는 그제야 엄마가 겨레붙이를 편애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엄마의 입으로부터. 엄마의 사과는 정직했고 정확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고백은 생선 내장의 씁쓸한 맛이 났다.
그 후로 나는 엄마를 용서했지만, 예전처럼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때로부터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 지나며 날카로움이 조금 무뎌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전화를 해서 수다를 떠는 일도 줄어들었고, 서로의 힘듦을 알아주는 일도 줄어들었다. 우리에게는 ‘애정’보다는 ‘애증’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엄마와 아빠에 대한 글을 쓰지만, 그들에게 마음을 내어 다가가는 일에서는 멀어졌다.
엄마의 사과가 있기 전, 그해 11월 교회에서 악인과 의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우리 집의 경우, 아빠가 법의 심판도 받았는데도 아직 어떤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끔 가족 중 누군가가 악인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게 나일 수도 있고’ 하는 흑백논리를 늘어놓았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아무도 모르되 하나님만 아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러자 모임지기가 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힘든 일들을 십여 년간 겪어 오면서 사는데, 힘이 나요?”
나는 힘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앞에 닥쳐온 일들을 해내야 하기에 그저 분투하는 삶을 사노라 했다.
그는 “그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삶 또한 의인의 삶이 아닐까.”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의 말에 ‘내가 의인인지 아닌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힘이 나지 않는 삶 속에서 나를 이런저런 모습으로 위로해 주고 다정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위안을 얻는다. 그것이 감사해 그나마 삶을 걸어가노라’고 말을 맺었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과 당신들에게 다시 마음을 내는 것은 너무 다른 일이었다. 과연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아니 나는 다시 힘을 내어 ‘당신을 알아가는 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때가 너무 먼 날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오늘 저녁 8시에 이 글의 마지막화인 『에필로그』우리 마음이 더 이상 늦지 않기를이 연이어 연재됩니다.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