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8년 전쯤부터다. 자유독립만세를 외치며 원가정으로부터 나만의 삶을 꾸려나가면서 엄마에 대한, 더 나아가서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과 질문들이 조금씩 생겨났기 때문에 글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글은 쉬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우리는 그동안 또 다른 사건들을 마주하며 서로 생채기를 주고받는 일이 생겼다. 생채기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원가정과의 절연을 선언하기도 했다. 원가정과 나는 본디 살갑거나 가깝진 않았지만, 그들과의 불화는 내게 인생의 큰 파도를 일으키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글을 쓰면서 엄마·아빠의 시간을 되뇌고 그들의 시간을 물으며 그들을 알아가고, 그 속에서 나를 찾아간다. 아직 그들을 다 알지 못한다. 아주 단편적인 모습만 보았던지, 혹은 여전히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있는지. 그럼에도 부단히 당신을 알아가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엄마가 그렇게도 말하던 ‘부모죽고나서후회론’ 때문이다.
나는 가끔 아빠의 노후를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따라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끝내 빈곤한 노후를 맞았다는 것이 불쌍하다. 아빠는 장남으로서의 바카라임을 막중하게 느끼던 사람이었다. 아빠는 결정만 하면 되는 사람처럼 살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하면 되지’가 기본값이었고,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법을 잘 몰랐다. 그런 아빠의 결정이 내 삶에 남긴 일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화가 나지만, 이제는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그 결정들을 해왔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올여름, 아빠와 마주 앉아 우리가 가진 담보대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아빠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지 이성에 감정을 더해 호소했다. 그동안 이 대출이 내게 어떤 마음으로 남아 있는지도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전과 다르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그날의 대화로 담보대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빠와 내가 서로의 말을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후커밸리에서 내가 지른 고함도 분노를 동반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갤럭시를 찾겠다고 급류 앞에 쪼그려 앉아 물을 휘젓던 엄마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나는 사실 그 뒷모습이 사라질까 봐 무서웠나 보다. 많은 순간, 나의 분노와 두려움은 고함으로 질러졌다. 이제는 고함이 아닌 말을 고민하고 있다.
엄마와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지내고 있다. 엄마의 사과 이후 시간이 흐르며, 내 응어리진 마음은 전보다는 얕아졌다. 예전의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는 없어도 서로를 마주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 부드러워졌다. 나는 그 변화가 반갑다. 동시에 그 변화만으로 지나온 일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언젠가 ‘밥블레스유’에서 이영자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부모님이랑 싸우고 나면 딸은 두 번 죽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후회가 남기 때문에 그렇다고 패널들이 이야기했다. 나는 아직 그 단계를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 말의 뜻을 다 헤아리기는 어렵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한다. 관계를 더 이상 개선할 기회가 없을 때 우리는 후회한다는 말을 한다. 특히 죽음 뒤에 남는 후회는 반성하고 다시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언젠가 부모님이 갑자기 아무런 예고 없이 내 곁을 떠나버리면, 그날 이후에는 어떤 말도, 어떤 시도도 더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나를 덮친다. 아직 할 수 있는 말이 남아 있는데,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 있는데, 죽음이 그것을 삽시간에 끝내버릴까 봐 두렵다.
내 부모는 늙어 이제 오래된 사건들을 다시 꺼내 들고 감당할 힘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 나름대로 나에게 빚만큼은 지우고 가지 않으려고 애쓴다. 엉덩이를 불태우며 공부했고 집 안을 위해 헌신한 엄마, 가끔 소통이 안 되긴 했지만 그 나름대로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아빠. 그런 부모의 애씀과 동시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 눈물 나게 슬프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너무 먼 길을 돌아가는 그들의 삶이 서글프다. 또 그들에게 쏟아냈던 내 말들이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론 지금도 이해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 아빠는 아직 내게 집 한 채 못 사준 것, 차 한 대 못 사준 것을 만회하려고 사방팔방 일을 알아보며 노력하고 있다. 사실 내게 필요한 건 집 한 채와 차 한 대가 아니라 아빠의 진심 어린 사과였음을 아빠는 모른다.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아예 모르는 건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끝까지 서로를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금은 예전보다 서로의 말을 조금 더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너무 큰 화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닿을 수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속도로 당신들을 알아가기를 바란다. 우리 마음이 더 이상 늦지 않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