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

by구기리

왜 계속 만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이보다 나은 선택지가 있을까 싶어서라고 말하기엔 너무 비겁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다. 나이 드는 것이 무서워서,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 두려움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도, 이런 시간 낭비를 자신과 상대 모두를 위해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멈추지 못한 것은 어느새 시간이 상대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말 오전에 오는 연락, 밥을 먹고 어딘가를 걷는 일, 헤어질 때 도착하는 "잘 들어가요"라는 문자. 그 습관들이 관계를 붙들고 있었고, 붙들고 있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이제는 모르겠다, 어떤 게 사랑인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충분했고, 그렇다고 이것이 최선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망설여졌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행복하다고 하기도 어려운 이 모순을 설명하려면 언제나 부연이 뒤따랐기 때문에, 태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해 봤자 정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지나갔다.


수많은 소개팅 끝에 태민은 결국 한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좋아하지 않아도 만나 보기로 한 것이다. 설레지 않아도 괜찮다고, 좋아지면 된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시작했다. 그런데 만날수록 마음에 와닿지 않는 부분이 도드라졌다. 처음에는 티끌만 했지만 티끌은 자꾸 눈앞에 들어오면 커지는 법이어서, 식사 자리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방식이나 웃음이 터지는 지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처럼 혼자였다면 지나쳤을 것들이 둘이 되자 보였고, 한번 보이고 나면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만난 것은 어차피 시간은 흐르기 때문이었다. 괜찮은 구석이 있으면 일단 만나 보고 결정하는 편이 낫다고, 그러지 않으면 속절없이 시간만 가고 여전히 혼자인 자신이 불현듯 떠오를 것 같았다. 어느덧 석 달이 되었다. 쌓인 추억은 많지 않았지만 태민도 상대도 나름대로 노력했고, 그 노력의 시간에서 얻은 것은 더 큰 애매함이었다. 만나다 보면 좋아진다는 말을 믿었는데 그 말에서 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 계속 만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이보다 나은 선택지가 있을까 싶어서라고 말하기엔 너무 비겁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다. 나이 드는 것이 무서워서,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 두려움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도, 이런 시간 낭비를 자신과 상대 모두를 위해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멈추지 못한 것은 어느새 시간이 상대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말 오전에 오는 연락, 밥을 먹고 어딘가를 걷는 일, 헤어질 때 도착하는 "잘 들어가요"라는 문자. 그 습관들이 관계를 붙들고 있었고, 붙들고 있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상대를 떠올려도 여전히 애매했다. 좋으면서도 아니었다. 나를 위해 맞춰 주려는 노력이 고마웠지만 그것이 감동인지 동정인지 알 수 없었고, 못난 나를 위해 기꺼이 함께 걸으려는 마음이 고마워서 생긴 감정인지, 그 헌신이 미안해서 붙들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좋았다가 어느 날은 이제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애매함과 단호함 사이를 진자처럼 끝없이 오갔다.

솔직히 나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단호함이 손을 들었을 것이다. 스물다섯이었다면, 스물여덟이었다면 주저 없이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태민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이렇게까지 못난 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물음이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관계를 붙들고 있었고,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놓지 못했다.


시간은 결정을 기다려 주지 않고 먼저 앞으로 가고 있었다. 태민이 멈춰 선 사이, 애매하다고 망설이는 사이에 계절이 바뀌고 나이가 한 살 더 붙고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하나씩 늘었다. 결정을 미룰수록 미루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되어 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국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 되는 것처럼. 어쩌면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아닌 줄 알면서 두려움과 계산과 습관으로 붙드는 것이 문제인지도 몰랐다. 그것이 상대에게 공평한 일인가. 태민은 그 물음 앞에서 오래 멈췄다. 대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상대였다. "오늘 어떻게 지냈어요." 짧은 문자를 태민은 오래 들여다보았다.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것만은 사실이었고,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도 알았다. 다만 태민의 마음이 그 진심에 닿지 않았다. 닿으려 했는데 닿지 않았고, 노력했는데 되지 않았다. 그는 "잘 지냈어요"라고 답을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진짜 대답은 아직 보내지 못했고, 아마 한동안은 보내지 못할 것이었다.


불을 끄자 핸드폰 화면만 희미하게 빛났다. 상대의 문자가 거기 남아 있었다. 그 문장이 다정해서 오히려 아팠다. 이 다정함을 받을 자격이 내게 있을까, 합당한 마음을 돌려주지 못하면서 받기만 하는 것이 옳을까.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이 다정함을 놓으면 그다음은 없을 것 같았고,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애매한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태민은 자신이 얼마나 비겁한지를 알았다.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끝낼 용기도 계속할 확신도 없이 시간에 떠밀려, 두려움에 붙들려 흘러가고 있었다. 내일도 연락이 올 것이었다. 태민은 또 짧게 답하고, 만나고, 밥을 먹고, 어딘가를 걷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애매해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시간은 어딘가로 가고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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