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정도는 걸어 다녀야 건강에도 좋지' 한 계단 한 계단 정성스레 밟고 3층 안과에 도착한다.
녹내장 진단받은 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3개월에 한 번씩 방문하니 계절마다 진료를 보게 되는 셈이다. 접수 직원이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고는 키보드를 두들긴다. 이번 달에는 5~6가지 안압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전달한다. 지난번 검사 때 오후 늦게 왔더니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다리는 내내 계속 영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몇 년 지난 영상이지만 낯익은 의사 선생님들이 아프리카 오지에서 평생 의료 혜택을 못 받아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동영상이 벽걸이 TV에서 계속 상영되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시청한 영상이지만 볼 때마다 웃음 짓게 한다.
기다리고 진료받는 것에는 불편함이 없다. 다만, 어르신들이 많아서 검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이었다. 오히려 서울 근무 시에는 회사와 거리가 300m 밖에 되지 않아 편했다. 그러던 것이 올해 초 대전 발령 이후에는 별도로 금요일 휴가를 내서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이름이 불린다.
따라가면 멀리 빨간색 지붕이 보이는 검사. 안구에 바람 불어넣는 검사. 파란색 십자가 초점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을 응시해야 하는 검사 등을 진행한다. 검사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그만큼 기술이 발달했지만 점점 눈이 안 좋아지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난다.
이번에는 특이한 작업을 진행했다. 복합렌즈를 하긴 했으나 렌즈의 아랫부분으로 바카라을 읽을 때마다 보기가 조금씩 힘들어진다. 불편 사항을 이야기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바카라 읽기 전용으로 '근거리 안경'을 맞추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응? 근거리 안경?
단어가 참 근사했다.
단어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나도 안다. 그 단어가 '돋보기'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의사 선생님이 환자의 Mind care를 하느라 근사하게 표현했다는 것을.
평상시 워낙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다양한 솔루션을 잘 제시해 주는 분이었다.
그 순간은 선생님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단어였다. 그날따라 유난히 그 단어에 마음이 갔다.
시력 검사 후 처방에 따른 '근거리 안경'은 예상대로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안경을 쓰고 바카라을 펼쳤다. 문득 지난겨울, 벽난로 앞에서 아내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처럼, 편안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 새벽 다시 대전행 KTX에 몸을 실었다. 좌석에 앉기 전 가방에서 바카라과 안경집을 꺼내어 접이식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안경을 바꿔 쓰고 어제 읽다 만 페이지를 펼친다. 미간을 찌푸릴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