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오피스텔 근처에 단골 김밥집이 생겼다.
참기름도 윤기 흐르게 줄줄 잘 바르고 깨도 듬뿍 쳐준다. 무엇보다 한 입 베어물고 씹을 수록 감칠맛이 우러난다. 3~4일 연속 아침에 김밥만 먹어도 다음날 또 생각나게 만드는 맛이다. 김밥 형태는 충무김밥 스타일의 꼬마 김밥이다. 거기에 길게 단무지와 계란을 덧 댄 것처럼 넣어서 아주 얇지도 일반 김밥처럼 두껍지도 않게 적당한 두께로 5줄을 제공한다.
한 번은 그 김밥집에 들러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할 때는 웬만하면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듣는 편이라 딱히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따라 문득 고개를 돌리다 눈길이 가는 것이 있었다.
외상장부였다.
바로 근처에 관공서가 있어서 수북이 적혀있는 외상장부.
참 오랜만이다. 요즘은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공무원들은 장부를 두고, 부서이름을 적고 월 단위로 외상을 한다는 표시였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외상하면 작은 아버지가 생각난다.
작은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하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혀에 침 묻혀가며 허공에 오른쪽부터 왼쪽 하향으로 사선 작대기를 긋던 제스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카페에서 휴대폰, 지갑, 노트북을 다 놓고 가도 누가 훔쳐가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랜다는 유튜브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카페에서의 행동이나 외상장부 모두 '신뢰'를 품고 있는 우리 문화다.
저 장부를 두고 부서 사람들과 김밥집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실랑이가 벌어졌을까?
'지난달 김주임이 금요일 점심에도 주문을 하고 기록을 누락해서 주인과 한 바탕 논쟁을 하던 일..'
'작년 최 과장 퇴임때 정산을 안 하고 가서 난리 쳤는데, 가게 사장님이 퇴직 기념으로 빚 탕진해 준일..'
'세 패키지 주문했던 것이 다섯 패키지로 둔갑해서 횡재라고 난리쳤던 일..'
등등 구청 공무원들의 그 난리를 두고도 결국 월말에는 고스란히 내역 그대로 외상을 갚아야 했던 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딩동' 소리와 함께 주문한 음식을 받아 들고 김밥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