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을 설명하기는 의외로 어렵다. 다산초당과 영랑생가가 있고 고려청자와 전라병영성이 있으며, 한정식과 차, 막걸리도 유명하다. 월출산에서 강진만과 마량항까지 자연경관도 빼어나다. 하나하나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들을 하나의 도시 정체성으로 묶는 말은 선명하지 않았다. 내가 강진을 다시 보면서 찾은 단어는 ‘남도성’이다.
남도성은 단순히 전라남도에 있다는 뜻이 아니다. 산과 바다와 농토에서 얻은 재료를 음식과 공예로 만들고, 차와 술과 장을 발효시키며, 자연과 일상을 문학과 예술로 표현해 온 생활문화다. 그런 의미에서 강진만큼 남도의 여러 층위가 한 곳에 겹쳐 있는 지역도 드물다. 강진은 남도문화를 보존하는 도시라기보다 오랫동안 남도문화를 생산해 온 도시다.
그 생산의 역사는 고려청자에서 시작한다. 대구면 용운리·계율리·사당리·수동리 일대에는 고려 전 시기에 걸친 청자 가마가 집중되어 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이 지역에서 확인된 가마가 200여 기로 한반도 청자 가마 유적의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강진은 청자를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고려시대 최고 수준의 공예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전국에 공급했던 생산지였다.
청자의 시대가 지나간 뒤에도 흙을 다루는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칠량면에는 옹기 생산의 전통이 이어졌다. 청자가 왕실과 상류층의 미감을 상징했다면 옹기는 장과 젓갈, 술과 곡식을 담았던 생활의 그릇이었다. 강진에서는 고급 공예와 생활공예, 생산과 음식이 분리되지 않았다. 청자에서 옹기로, 옹기에서 장과 술과 음식으로 이어지는 물질문화가 형성됐다.
여기에 차가 있다. 월출산 남쪽의 백운동과 이한영의 차 문화, 다산이 머물렀던 도암의 차 문화가 강진의 또 다른 축이다. 병영에는 오랜 양조 전통과 석쇠불고기가 있고, 강진읍에는 한정식이 있다. 오늘날에는 쌀귀리와 한우 같은 농산물이 새로운 상품과 브랜드로 변신한다. 청자–옹기–차–장–술–음식은 서로 다른 관광상품의 목록이 아니라 자연을 생활문화로 바꾸어온 강진의 생산방식이다.
2023년 강진에서 만난 에피그램의 ‘강진산바카라’은 이 특징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보여줬다. 청자, 차밭, 다도, 한옥, 음식, 산과 강진만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큐레이션했다. 외부 기업이 강진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힌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강진의 생활문화를 현대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내가 삼세의원을 활용한 오트릿과 쌀귀리 상품에서 가능성을 본 것도 같은 이유다. 강진에는 여전히 지역의 것을 새로운 상품과 생활양식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강진의 지역 중심성은 강진읍보다 병영에서 먼저 시작됐다. 전라병영성은 1417년 설치돼 1895년 폐영될 때까지 전라도 육군의 핵심 지휘부였다. 기록에서는 전라도와 제주도의 53주 6진을 총괄한 곳으로 설명한다. 병마절도사가 주재하면서 군사뿐 아니라 군수물자와 상업, 숙박과 음식이 모였다. 병영이라는 지명 자체가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병영의 흔적은 성곽에만 남아 있지 않다. 하멜 일행이 이곳에서 7년 가까이 생활했고, 한 골목의 돌담과 병영양조장, 음식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진다. 병영은 문화유산 한 곳을 보고 돌아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군사도시에서 형성된 상업과 음식, 주거와 골목의 생활문화가 함께 남은 곳이다. 따라서 병영성 복원만으로 병영을 살리기보다 성곽–한골목–하멜–양조장–석쇠불고기를 걸어서 경험하는 하나의 역사생활지구로 만들어야 한다.
근대로 오면서 중심은 강진읍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1982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강진에 흥미로운 지위를 부여했다. 전국을 5개 대도시생활권, 17개 지방도시생활권, 6개 농촌도시생활권으로 나누면서 강진을 영월·서산·홍성·점촌·거창과 함께 농촌도시생활권의 중심도시로 설정했다. 강진생활권은 강진·장흥·완도 세 군이었다. 반면 해남과 영암은 목포생활권이었다. 농촌도시생활권은 읍급 도시의 기능을 강화하고 주변 농촌에서 중심도시로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강진은 『지역의 질서』에서 다루는 다른 중견도시와 다른 점이 있다. 생활권 중심도시로 지정됐지만 행정 중심도시로 성장하지 못했다. 진주·순천·안동 같은 도시에는 주변 여러 시군을 관할하는 법원·검찰과 특별지방행정기관, 공공기관이 모여 있다. 강진은 그렇지 않다. 법원과 검찰은 오히려 장흥이 강진을 관할한다. 일부 광역 공공서비스는 해남에 중심기관이 있다.
그렇다고 강진의 권역 기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강진읍을 걷다가 발견한 표지판이 흥미로웠다. 상하수도사업소, 한국농어촌공사 강진지사와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 완도강진지사가 표시돼 있었다. 완도와 강진을 하나의 서비스 권역으로 묶는 기관이 강진읍에 있는 것이다. 1982년 강진생활권의 흔적을 오늘날의 공공서비스 공간에서도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의료는 더욱 중요한 앵커다. 도립 강진병원으로 출발한 강진의료원은 1947년 설립됐고 1982년 도립병원 현대화계획에 따라 신축됐다. 현재 24시간 분만센터, 응급실, 인공신장실 등을 운영하는 지역거점 공공의료기관이다. 인구 3만 명대 군 지역이 이런 의료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과거 강진의 지역 중심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강진의 행정 앵커를 없다고 표현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불완전한 중심성이라고 해야 한다. 사법은 장흥, 일부 서남부 광역서비스는 해남, 강진은 완도와 연결되는 일부 공공서비스와 의료 기능을 담당한다. 1982년 계획이 그렸던 강진 중심의 완결된 생활권이 실현됐다기보다 세 도시가 기능을 나누어 가진 셈이다.
문제는 이런 중심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약해졌다는 것이다. 장흥은 독자적인 행정·사법 기능을 갖고 있고 완도는 해양수산과 관광을 기반으로 자기 정체성을 강화했다. 해남 역시 서남부의 독립적인 중심지로 성장했다. 영암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삼호와 대불산단은 목포와 밀접하고, 영암읍권은 나주·광주 방향과 연결된다. 강진이 과거처럼 주변 군을 하나의 배후지로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역설적으로 교통여건은 어느 때보다 좋아지고 있다. 2025년 9월 보성–목포 철도가 개통하면서 강진에는 처음으로 철도역이 생겼다. 남해선은 장흥–강진–해남–영암–목포를 직접 연결하고 동쪽으로는 순천·부산 방향과 이어진다. 오랫동안 철도에서 소외됐던 강진의 공간적 위치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2026년 12월에는 광주–강진 고속도로도 개통할 예정이다. 광주에서 강진까지 자동차 이동시간이 30분대로 줄어든다. 접근성이 좋아진다고 자동으로 강진이 중심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광주의 소비·의료·교육 기능을 이용하기 쉬워져 오히려 강진의 기능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 철도와 고속도로를 강진으로 들어오는 길로 만들 것인가, 강진에서 빠져나가는 길로 만들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다.
산업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강진군은 2026년 전남도와 민간기업 등과 성전면 일대 AI 데이터센터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계획 규모는 약 3조 3000억 원이며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아직 협약 단계의 사업이므로 실제 투자와 고용 효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농업과 관광 중심이었던 강진 산업구조에 새로운 가능성이 등장했다는 의미는 있다.
강진 관광의 가장 큰 약점은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잘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백운동, 청자촌, 가우도, 마량항, 병영성, 월출산을 자동차로 하나씩 찾아가면 강진읍에 들어올 이유가 많지 않다. 나는 이를 ‘외곽 관광지를 자동차로 찍고 가는 관광’, 줄여서 ‘외자찍’이라고 불러왔다.
그래서 새로운 강진의 중심성은 강진읍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군청과 시장, 중앙로, 영랑생가, 동성리 한옥지역을 하나의 보행권으로 연결하고, 삼세의원처럼 도시재생을 통해 확보한 건물과 빈 점포에 로컬 브랜드와 음식, 공예, 숙박, 교육 기능을 채워야 한다. 도시재생의 목표도 건물을 고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강진 전체의 생산자와 방문객이 만나는 원도심 경제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동성리에서 보았던 가능성도 여기에 있다. 향교와 미술관, 한옥과 작은 골목이 있지만 상업이 연속되지 않고 강력한 앵커가 부족하다. 에피그램이 한옥과 지역상품을 묶어 보여준 실험, 오트릿이 쌀귀리를 브랜드로 바꾼 실험을 한 기업의 사례로 끝내지 말고 다음 세대의 로컬 기업이 계속 나오는 생태계로 만들어야 한다.
강진의 모든 기능을 읍내에 모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강진읍을 허브로 하고 각 지역의 생산문화를 전문화하는 다거점 구조가 강진답다. 병영은 병영성과 골목, 하멜, 양조와 음식의 역사생활문화 거점이 될 수 있다. 대구와 칠량은 고려청자와 옹기를 연결하는 공예생산지, 도암은 다산과 학문의 거점, 성전은 월출산·백운동·차문화에 철도역과 새로운 산업이 더해지는 관문, 마량은 바다와 수산문화의 거점이다.
이 거점들을 연결하는 것은 관광버스만이 아니다. 상품과 사람, 교육과 창업이 오가야 한다. 청자와 옹기를 현대 생활용품으로 만들고, 옹기에 장과 발효음식을 연결하며, 차와 전통주를 새로운 브랜드로 키울 수 있다. 강진읍의 로컬스쿨과 창업공간이 각 면의 생산자와 청년을 연결한다면 남도성은 문화유산에서 산업으로 확장된다.
강진·해남·영암이 함께 시작한 강해영도 같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세 지역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들려 하기보다 서로 다른 자원을 가진 도시들이 공동시장을 만드는 네트워크로 발전시켜야 한다. 음식에서 시작한 협력을 여행 동선, 숙박, 로컬상품 유통과 공동 브랜드로 넓히는 것이다. 과거의 배후지를 되찾으려 하기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이웃 도시와 연결되는 편이 현실적이다.
강진에는 다른 도시가 쉽게 만들 수 없는 중심성이 있다. 고려청자에서 칠량옹기, 차와 장, 술과 남도음식, 다산과 영랑에 이르기까지 남도의 생활문화를 생산해 온 능력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남도성을 박물관에 보존하는 일이 아니다. 강진읍을 허브로 다시 세우고 병영·대구·칠량·도암·성전·마량의 생산문화를 연결해 새로운 기업과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다. 행정의 중심성이 약하다면 문화와 산업의 중심성을 만들면 된다. 그것이 강진이 다시 지역의 중심이 되는 방법이다.